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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아내와 두 아이를 둔 38세 남편은 침대보까지 팔아서 어렵게 구한 자전거로 겨우 전단지 붙이는 직장을 구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작업 도중 자전거를 도둑맞고 그 후 몇날 며칠을 아들과 함께 찾아 헤맸지만 허사였다. 급기야 비슷한 자전거를 하나 훔치기로 결심하고 시도했지만 그마저 실패하고 붙잡혀 구타와 멸시를 당한다. 경찰에 끌려가기 직전, 그래도 딱한 사정을 자전거 주인이 알아줘서 끌려가진 않는다. 풀려나면서 그 남편은 아들을 껴안고 서럽게 울면서 영화는 끝난다.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 내용이다.

자전거 도난을 소재로 한 영화 <자전거 도둑>
 자전거 도난을 소재로 한 영화 <자전거 도둑>
ⓒ 자전거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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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와 지금 내 사정은 그대로 오버랩된다. 2008년 현재 아내와 한 아이를 둔 38세 대학원생. 유가상승으로 타고 다니는 경차마저 기름값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공부할 건 많고 운동할 시간은 없다. 등하교시간에 운동하자는 마음에, 급기야 월수입의 반을 털어 28만원이나 하는 자전거를 사서 등하교를 시작했다.

몸도 건강해지고 기름값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2008년 2학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퇴근하기 위해 자전거 거취대로 갔지만 그 자전거는 흔적이 없다. 난 커다란 망치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착하게 살고 싶지만, 세상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만약에 내 자전거를 훔친 사람이 정말 가난한데 자전거는 꼭 있어야 해서 그랬다면, 난 흔쾌히 도둑맞을 용의가 있다. 하지만 비교적 고가인 내 자전거를 그것도 자물쇠까지 끊고 가져간 것이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름까지 유성매직으로 써 놓았으니, 자기가 타고 다니기도 껄끄러울 테고 스프레이로 덧칠해서 중고로 팔 가능성이 높다. 결국 주인이 그 자전거를 찾는다 해도 그 땐 이미 중고구입자라는 또다른 피해자가 생긴 상태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좀 오버를 하고 싶다. 경제학 전공자로서 본, 경제학적 오버다. 이런 자전거 중고시장에서처럼 시장은 내버려 두면 야만이 판친다. 그리고 이 야만은 확대재생산 된다. 자전거를 한번 도난당한 사람이 보복심리로 자전거를 훔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규제되지 않은 시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근자의 미국 투자은행 도산이 잘 보여준다.

애초 규제되지 않거나 탈규제된 금융시장의 결과는 여러 사람에게 비극으로 다가간다. 규제되지 않는 자전거 중고시장의 결과는 자전거 소유자에게 불안과 슬픔으로 다가간다. 마음 같아선 경찰에 고발해서 자전거 도둑이 재미로 할 수 있는 젊은 날의 객기가 아니라 도둑질임을 각인시키도록 행정 규제를 이용하고 싶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또 이 사건에만 한정되는 개별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우리끼리라도 규제를 한 번 해보자. 거창할 것 없다. 시장도 어차피 사람이 만든 제도이고 관습인바, 우리가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아주 단순하긴 하지만 효과적이라 생각되는 데, 일단 이름과 연락처를 좀 촌스럽지만 여러 군데 적어 놓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고 자전거 거래에서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에게 자전거의 간단한 내역과 함께 소속과 연락처를 요구하는 것이다.

만일 도난 자전거여서 주인이 나타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꼼꼼히 따지는 것이다. 자전거를 그냥 재미로 훔쳐서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중고로 팔아 수익을 올리려는 사람이라면 쉽게 팔 수 없게 하는 것도 자전거 도난을 방지하는 좋은 규제가 될 것이다. 그냥 양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관심을 가지고 규제하자.

홈피에 자전거 도난 게시판을 만들어 자전거를 사면 디카로 찍어 놓았다가 혹시 분실하면 여기에 연락처와 함께 게재하고, 중고 자전거를 샀는데, 비슷한 게 있으면 연락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지 방법일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태그:#자전거도둑, #자전거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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