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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악구 국립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시 관악구 국립 서울대학교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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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국립대 재정회계법안'을 확정 발표하였다. 5월의 시안에 대한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공청회 및 간담회 등의 방식으로 수렴한 후, 이번에 확정한 것이다.

물론 교과부의 의견수렴에 대한 교수·학생·직원들의 시선은 차갑다. 자신들이 낸 의견 중에서 반영된 부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뒷걸음친 부분도 눈에 띈다. 아니, 정확하게는 국립대 운영자들의 의견에 따라 시안에도 없던 내용이 갑자기 등장하였다.

국립대-사립대 차이 해소해 준 교과부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적립금으로, 법안 제23조 제1항에서 "국립대학의 장은 결산상 잉여금 중 세출이월금을 공제한 금액을 다음 각 호의 적립금으로 적립할 수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국립대도 사립대처럼 적립금을 쌓아둘 수 있다. 2007년 현재 4년제 사립대들이 5조5천억원에 이르는 돈을 챙겨두고 있는데, 이제는 국립대도 사립대처럼 학생이 낸 등록금을 조금만 쓰고 남은 돈을 적립할 수 있다. 당연히 국립대 학생은 사립대 학생들처럼 '등록금은 계속 오르는데 혜택은 별로'라는 감정과 의구심을 갖게 된다.

교과부의 공로가 아닐 수 없다. 국립대와 사립대의 차이를 해소하고자, 국립대를 사립대처럼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쁜 걸 좋게 고친 것이 아니라 좋은 걸 끌어내린 결과이긴 하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일이지만, 대학 운영자 입장에서는 든든하다. 저축을 많이 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하지 않은가. 더구나 적립금은 대학운영자의 '내 돈'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라는 '남의 돈'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더 재미있는 부분은 법안 제34조다. 금융시장이 들썩거리고 부동산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어서 금 이외에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면, 이젠 국립대다.

제34조(외부자본유치)
①국립대학의 장은 현금 등의 외부자본을 유치하여 대학의 교지 내에 대학발전에 필요한 건물 및 그 밖의 영구 시설물을 축조할 수 있다.
②국립대학의 장은 제1항 규정에 의한 건물 및 그 밖의 영구 시설물 축조에 자본을 투자한 자에 대하여 무상으로 건물 및 그 밖의 영구 시설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국립대를 이윤 획득의 장으로 삼을 수 있었다. 부산대에 BTO 방식으로 세워지고 있는 '효원 굿플러스'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국립대 재정회계법안은 이를 능가한다. 위의 제2항에 '일정 기간'이란 표현이 아예 없다. 즉 국립대 안에 지은 건물 등에서 각종 수익 사업을 영구히 할 수 있다. 부산대 효원 굿플러스가 고작 30년인데, 이건 껌값이다.

국립대로 장사하기 비법

그러니 부자들이여, 국립대에 투자하라. 국립대 부지 안에 건물을 지은 다음에 장사를 하라. '자본의 대학 침투'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으나, 10억원 정도의 발전기금으로 무마할 수 있다. 아니면 서울대 투썸플레이스, 고려대 스타벅스, 연세대 그라지 커피숍 등의 전례를 들어도 좋다.

또는 한 8층짜리 건물을 지어놓고, 그 중 한두 층을 대학에 주어서 평생교육원으로 이용하게 해도 된다. 그럼, 투자자도 각종 영리행위나 임대수익으로 돈을 벌고, 대학도 '부동산 경매' '재테크의 실제' '대입 논술' 강좌 등으로 돈을 버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는가.

교수나 학생의 반발이 있겠지만, 그거야 소비자본주의의 단맛에 빠지게 하면 그만이다. 참, 학생은 확실한 고객일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미만으로도 부려먹을 수 있는 저임금 노동력(알바)이란 사실도 잊지 말자.

돈이 많으면 아예 국립대 투자회사를 설립해서 건설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도 좋겠다. 돈이 약간 부족해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자금을 끌어다 쓰면 된다. 물론 PF 부실 논란이 일부 나오긴 하나, 지역상권 중심인 국립대의 '확실한 수익'을 약간 뻥튀기해서 강조하면 얼마든지 비켜갈 수 있다.

돈이 많이 없어도 문제될 게 없다. 건물을 지어 분양수익을 거둬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상가를 분양받아 영업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분양받는데 그래도 돈이 조금이나마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구닥다리처럼 굴지 말자. 부산대 효원 굿플러스가 적은 돈으로도 확실한 수익을 보장한다고 이미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국내 최초의 환급형 임대분양으로 투자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으며, 국책사업의 일환인 BTO방식으로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했으며 분양대금의 60%를 임대보증금, 40%를 임대료(연 8%로 매월) 형식으로 납부할 수 있고 임대보증금 전액을 30년 후 환급받을 수 있어 확실한 투자가치를 자랑합니다. 부산대 고정고객 3만여명 독점! 1일 유동인구 20만여 명의 핵심 동선을 잡았습니다!"

이게 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다

모든 게 교과부의 노고다. 실용주의와 '경제살리기'에 전념한 이명박 정부의 은공이다. 그러니 부자들이여, 이명박 대통령과 교과부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 다음, 블루오션 국립대로 시선을 돌리자. 국립대 재정 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신장시키기 위한 국립대 재정회계법안이 '국립대 운영자와 투자자'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임을 되새기고, 국립대에 투자하자.

단 하나, 개그맨 신봉선의 유행어만 주의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나 촛불을 만나면 그 즉시 교과부와 함께 모습을 감추는 게 상책이다.

"머라 쳐 씨부릿쌓노."
"확 함 쥐어 터질라꼬 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송경원 기자는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



태그:#국립대재정회계법안, #국립대 적립금, #국립대투자, #부산대 굿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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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고 지금은 정의당 정책위원회에 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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