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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슬방울을 머금은 물봉선이 싱그럽다.
▲ 노랑물봉선 이슬방울을 머금은 물봉선이 싱그럽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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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단풍이 들기 전, 보랏빛 혹은 노란빛 혹은 순백의 빛깔로 습지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보랏빛 꽃이 가장 많고, 노란색과 흰색의 꽃은 조금 귀한 편에 들기도 하는 꽃, 그 이름은 '물봉선'입니다.

원예종으로 예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봉선화의 친척이지요. 손톱에 봉선화물을 들이고는 첫 눈이 올 때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으면 첫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에 손톱에 물을 들이는 순간부터 행복했지요.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첫 눈이 온 뒤에야 생각이 나 손톱을 보면 이미 봉선화물을 들인 흔적일랑 남지 않았으면 얼마나 서운하던지.

어쩌면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봉선화 들인 손톱을 첫 눈이 올 때까지 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를 보는 듯 하다.
▲ 물봉선 물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를 보는 듯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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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피어나는 꽃이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도 이내 관심밖으로 멀어지는 들꽃 중 하나인 물봉선, 그들은 마치 이 땅의 범부 혹은 민중을 보는 듯 합니다.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풍성하게 피어나는 꽃, 잘 익은 씨앗을 살짝이라도 건들라치면 사방팔방으로 씨앗을 날립니다. 그래서 꽃말도 '나를 건들지 마세요'입니다.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가만 살펴보면 한 송이 한 송이 그렇게 예쁩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꽃, 속내를 봅니다. 그들은 다름을 통해 더 아름답게 들판을 가꿔가는 비결을 아는 꽃인 듯합니다.

물봉선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밭에 들어가면 이미 떨어진 꽃들도 있고, 피어나는 꽃들도 있고, 시들어가는 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꽃들이 어우러져 물봉선 동산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떨어진 꽃이라고, 시들어가는 꽃이라고, 한창을 뽐내는 꽃이라고, 혹은 피어나는 꽃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도 그 어느 순간을 살아왔고, 살아갈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봉선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가을들판
▲ 물봉선 물봉선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가을들판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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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가을들판에서 쌩뚱맞게도 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같은 물봉선이라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어우러져 아름답게 피어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들은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싶더군요.

성적, 시험, 입시, 사교육, 특목고, 국제중, 서열화, 8학군, 고3 매니저, 일류대, 경쟁…. 이런 단어들만 연상이 됩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폭력적인 단어들에 둘러싸여 경쟁을 강요당하면서도 여전히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자식들과 부모와 학교가 다 죽는 길인데도 오로지 영재교육을 외치며 일류를 외치며 아이들을 경쟁구도의 대열로 몰아넣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일류대를 나왔고, 일등만 했고, 성적표에는 수만 가득했던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공부를 못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입안해서 아이들을 경쟁의 구도 속에 몰아넣고, 그 다양한 아이들의 꿈을 획일화시켜버리니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교육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무엇을 닮았는지요?
▲ 물봉선의 속내 무엇을 닮았는지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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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다 보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간혹 돋보기나 접사렌즈로 꽃을 들여다보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오밀조밀한 것들이 어우러져 한 송이 꽃을 이루는 것이구나 생각하면 신비롭습니다. 물론 속내를 세세하세 본다고 그 꽃을 다 본 것이 아닙니다.

그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땅, 그의 생태, 피고 지는 모습 등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연결을 시킬 수 있는 심안 혹은 영안이 뜨이면 비로소 꽃을 제대로 보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제대로 들꽃을 만난 사람들은 아무리 예쁘고 희귀한 꽃이라도 그 곳이 그들이 자라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눈 맞춤을 하는 것만으로, 그들이 그 곳에 피어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 가져가 키울 수 없는 것들까지도 소유하려고만 합니다. 결국 그는 꽃을 죽이고, 기껏 잘해야 들꽃을 화분에 가둬두는 것이지요.

이파리에 맺힌 이슬에 목을 축이는 물봉선
▲ 물봉선의 빛깔을 담은 이슬 이파리에 맺힌 이슬에 목을 축이는 물봉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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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손길을 마다하고 자라는 야생화, 때가 되면 피어나는 우리 꽃, 그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했을까요?

요즘 가을들판에 나가면 왕씀배, 고마리, 물봉선, 쑥부쟁이, 벌개미취, 진득찰, 도깨비풀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조금 발품을 팔면  물매화, 투구꽃, 구절초, 용담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정성을 기울이면 사철란같은 신비스러운 꽃이나 익어가는 가을열매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심성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아니, 살다보면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회복될 수 없는 상처 혹은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타인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울밑에서 선 봉선화보다 더 예쁜 물봉선, 그 물봉선이 들판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이번 가을에 그 꽃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당신의 삶 어딘가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 가혹한가요? 그런데 사실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올 가을에 피어있는 들꽃에 눈길 주는 날 하루 잡아보시면 들꽃들이 여러분에게 다가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거나 삶의 에너지를 선물로 줄 것입니다.


태그:#물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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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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