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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대선은 여러 모로 대조를 보이고 있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조셉 바이든과 공화당의 존 매케인-사라 페일린 간의 승부로 압축되어, 어느 때보다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안팎에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해온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심판과 함께, '부시 이후의 미국'에 대한 기대감도 깔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시 이후의 미국'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세계 경찰'을 자임하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의 대선은 결코 한 나라의 선거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세계질서가 격동하는 시점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2008년 대선 결과는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미래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이에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외정책을 분야별로 심층적으로 비교·분석·전망함으로써 '부시 이후의 미국과 세계'의 그림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와 최고령 대통령에 도전하는 존 매케인. 이들은 백악관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차기 미국 대통령은 고난의 행군이 불가피하다. 백악관으로 들어갈 때에는 미국 국민들의 환호 속에 레드카펫을 밟겠지만, 집권 이후 가시밭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요리를 해보려는 의욕이 넘치겠지만, 막상 백악관에 들어가보면 부엌에 넘쳐난 설거지거리에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장 리처드 홀브루크는 "다음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례가 없었던 국제적 도전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다음 세기: 다른 강대국이 부상하는 시대에 미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니나 해치지안과 모나 수트펜은 "2009년 1월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집권 시기에 비교할 때, 근본적이고 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미국에서 이른바 '설거지론'이 뜨고 있는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차기 미국 정부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시대의 미국을 이끌어야 한다. 세계체제론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임마뉴엘 월러스타인은 지정학적으로나, 세계경제 차원에서 미국 패권의 쇠퇴와 다극 체제로의 이행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고 장담한다.  

 

부시가 낸 빚, 감당할 수 있을까

 

잘 알려진 것처럼, 부시는 일방주의의 상징이었다. 마치 하느님으로부터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시키는 임무를 받은 것처럼 기독교근본주의 행태를 보였고, 미국의 힘에 대한 과신은 이를 뒷받침하는 주관적인 근거였다.

 

그러나 제국을 꿈꿨던 부시 행정부는 오히려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고 말았다. 그리고 차기 미국 정부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남기고 백악관을 떠날 처지에 몰리고 있다. 석유·군사패권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탐욕은 '이라크 수렁'을 불렀다.

 

이라크는 다음 대통령이 걷게 될 가시밭길을 상징한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유혈사태와 저항세력의 공격이 줄어들었다지만, 이라크의 안정화와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 이라크가 정말 민주화된다면, 반미정권의 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의 핵개발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미국 대외정책의 오랜 숙제이자 중동 평화의 키워드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탈레반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핵보유국이자 테러집단의 은신처로 거론되어온 파키스탄의 정치 불안에 이르기까지, 차기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의 1순위는 역시 중동과 그 인근 지역으로 모아진다.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차기 미국 정부의 큰 부담이다. 나토의 확대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체제(MD) 배치 계획, 그리고 최근 그루지야 사태 등이 잇따르면서 미러관계는 '제2의 냉전'이 거론될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미국의 대러관계는 러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계속 틀어질 경우, 이란 핵문제에서부터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전쟁, 핵무기 감축과 비확산체제 강화, 그리고 북핵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차기 정부의 숨통을 틔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북핵 문제도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더 악화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미소 냉전 해체 이후 워싱턴을 지배해왔던 근본 질문인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도 차기 미국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미국도 '주범' 대열에 있는 지구온난화와 전지구적 식량 위기에 대한 대비책도 시급하다. 그러나 이는 정책결정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자본분파와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 조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인의 석유 중독증' 치유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풀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고유가와 달러 가치 하락, 그리고 금융위기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역시 만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차기 미국 대통령이 직면하게 될 현실은 '낯선 세계와 힘빠진 미국의 조합'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부시 이후의 미국'을 이끌어나갈 다음 대통령에 대한 희망과 냉소가 교차하고 있다. '적어도 부시보다는 낫겠지'라는 희망섞인 냉소에서부터 실추된 미국의 명성과 영향력을 재건할 수 있다는 최대치까지 다양하다. 

 

 

[경제살리기] '석유 중독증' 치유가 핵심

 

홀브루크를 비롯한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회복해 여러 가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는 경제 살리기이다. 경제는 국내 이슈인 동시에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 토대이기 때문에 국가안보 이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명성의 회복이다. 명성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미국 지도력의 정당성과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기 미국 대통령이 두 가지 조건을 조속히 해결할 수 있을 지는 극히 미지수이다.

 

우선 경제 회복과 관련해, 미국 경제위기는 주기성을 띠기보다는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석유경제가 주목을 끈다. 19~20세기 초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국의 풍부한 석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석유중독증은 미국 부의 '해외 이전'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전문가인 다네일 예르진에 따르면 2008년 미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은 2천만 배럴이고 이 가운데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석유 수출국에 연간 4750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이 수치는 2008년 초 통계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최근 석유가격이 배럴당 100~150달러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액수는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석유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중국과 유럽연합·일본·인도·한국 등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석유 수입에 의한 '부의 이전'이 미국 안보에도 도전적인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유가 시대에 석유 수입이 크게 늘어난 국가들 가운데에는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 등이 포함된다.

 

사우디는 친미국가로 분류되지만, 막대한 오일머니의 일부가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집단에게 흘러가고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러시아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제정치 무대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이란은 핵문제에 석유를 지렛대로 삼아 대한 서방세계 압력을 버티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보다 5배나 많은 해외원조를 중남미 국가들에게 제공하면서 중남미의 반미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석유 중독증이 경제는 물론 대외정책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면서 미국 정부는 다름대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바이오에탄올이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는 세계 곡물가격 상승과 직결되어 있다. 핵발전소를 크게 늘리겠다고 하지만, 이는 환경문제와 함께 핵비확산 문제가 걸려 있다. 더구나 미국이 석유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정책에 성공하더라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최소한 10~20년이 걸린다. 이 사이에 세계는 미국 단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의 이행이 거의 마무리될 것이 확실하다.

 

[명예회복] 오바마 효과는 얼마나 갈까

 

부시는 미국을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나라로 만들었다. BBC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국제사회의 미국의 지지도는 40%(2005년), 36%(2006년), 29%(2007년)로 계속 하향 추세에 있다. 미국의 국제여론조사 사이트 월드오피니언(Worldopinion.org)가 지난 6월에 조사한 것에서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도는 23%로 중국의 후진타오(28%), 러시아의 푸틴(32%)보다도 훨씬 낮게 나왔다.

 

국제사회의 부시에 대한 반감은 야당인 민주당의 오바마에 대한 호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 7월 조사한 것에 따르면, 조사대상국 23개국 가운데 미국만 "국제문제에 있어서 매케인이 오바마보다 낫다"고 답했고, 다른 22개국에서는 압도적으로 오바마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에, 국제사회 여론이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 그러나 대선 이후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그 자체로도 미국에 대한 이미지의 개선 효과가 있는 반면, 매케인이 되면 부시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공산이 크다. 이는 상대적으로 오바마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을 회복하는 데 더 유리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오바마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는 미지수이다. 오바마 집권시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호적인 여론은 대외정책 수행의 '양날의 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존중하면 힘이 되겠지만 때때로 이는 미국 국내여론 및 미국의 이익과 상반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반면 국제사회 여론보다 미국 여론이나 이익을 중시할 경우, 오바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심리는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오바마도 할 수 없군'이라는 체념적 정서를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글: 국가안보는 공화당이 강하다?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오바마, #매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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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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