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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펀드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판매직원들이 유럽펀드, 차이나펀드, 일본펀드와 같은 해외펀드를 묻지마식으로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자료사진)
 해외펀드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판매직원들이 유럽펀드, 차이나펀드, 일본펀드와 같은 해외펀드를 묻지마식으로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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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된 중국펀드도 최근에 마이너스로 돌아섰어요. 지난 달까지만 해도 4% 정도는 수익이 유지되고 있었거든요. 작년에 가입한 것도 마이너스 40%가 넘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그냥 수업료 냈다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환매하는 것이 나을까요? 계속 신경이 쓰여서 속만 상하고 작년에 적당히 팔아치울 걸 하는 후회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게다가 더 떨어질까봐 겁도 나고 다른 주식형 펀드도 적립식이니까 괜찮다고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가 않습니다."

예·적금 하나 없이 펀드에 '올인'하던 어느 고객 이야기다. 2년 전 아는 컨설턴트의 권유로 펀드투자를 시작했는데 지난 몇 년간의 주식시장 활황으로 수익률이 상당히 크게 난 것이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예금통장의 일부만을 펀드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 펀드가 고수익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재미'를 본 것이다.

예금 잔액을 전부 인출해서 중국 펀드와 브릭스 펀드, 국내 주식형 펀드 등 4가지 상품에 나눠 가입했다. 또 저축도 적금을 깨고 적립식 펀드로 갈아탔다. 지난 해까지는 연일 오르는 수익에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주식시장의 하락폭이 커지면서 금융자산이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공포심마저 든다고 하소연한다.

"믿습니까?" 포교식 영업이 낳은 '반토막 공포'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투자는 상승과 하락의 가능성 두 가지를 다 전제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투기는 오를 것만 가정한 채 하락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투자는 신중해지고 냉철할 수밖에 없고 투기는 흥분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는 흥분과 부러움, 소외감을 경험했다. 조금 일찍 펀드투자를 시작한 사람들이 엄청난 고수익을 실현하면서 흥분했고 그 사람들의 흥분된 성공사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부러움과 동시에 자신만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외감을 느낀 것이다. 부러움과 소외감으로 뒤늦게 투자한 사람들은 무모해지기 쉽다.

열차가 떠나기 전에 올라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무모하게 뒤늦은 투자를 시작하고 그것이 상승만을 전제로 하는 '투기'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무모한 투자바람 중에는 전문가들이 부추긴 것이 상당하다.

지난해 어느 금융회사의 PB(Private Banking)가 고객에게 "예금의 상당 부분을 펀드로 갈아타라"고 추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 무리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냐고 물었다가 펀드가 수익이 좋은데 당연한 것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전문가조차 "펀드는 무조건 예금보다 수익률이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주식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그 고객이 하락을 인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전문가조차 투자에서 하락의 가능성을 '설마'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장밋빛 전망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전문가에게 "하락세로 돌아서면?"이란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되돌아온 답은 더 황당한 것이었다. "믿음을 갖고 투자하셔야죠." 이 정도면 투자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에 가깝다. 상당히 많은 금융회사 종사자들은 투자를 권유한 것이 아니라 포교 활동에 가까운 영업을 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보통 사람들은 이 열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적금 가입하러 갔던 고객들이 직원의 확신에 가까운 권유에 단기에 쓸 자금까지 펀드에 '올인'하고 돌아온 사례도 있다. 자신도 가입했다며 내민 직원 자신의 통장을 보며 '정말 좋은 건가 보다'하는 생각이 적금을 펀드로 돌린 이유라는 것이다.

하락을 가정한다면 펀드에 '올인'한 자산 운용을 할 리가 없다. 투자를 하더라도 수익을 기대하지만 반대로 하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확정 이자를 주는 예적금 통장을 투자의 안전장치로 유지했을 것이다. 반토막 나는 펀드를 보며 '다시 오르겠지'하는 막연한 믿음만으로는 안된다. 이제라도 투자란 상승의 달콤함도 있지만 하락을 통제하는 인내심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한 때다.

'묻지마 투자'도 나쁘지만 '묻지마 투매'도 금물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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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의 토론방에 보면 '펀드무용론', '무조건 펀드환매론'이 인기글로 등극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9월 들어 위기론까지 가세하면서 종합주가가 1000포인트까지도 떨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심도 나돈다.

물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는 흥분을 동반한 과열을 지나 공포를 동반한 폭락을 거치고 다시 휴지기를 지나 서서히 낙관론이 우세해지면서 조금씩 반등하는 과정으로 순환해 왔다. 이 순환구조에서 현재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과열을 지나 시장이 요동치고 압박을 받으며 폭락의 장으로 이동하는 중일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동시에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가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시기에 더 떨어질까 봐 하는 공포심으로 무조건 팔아치우는 것은 '묻지마 투자'와 마찬가지로 '묻지마 투매'일 뿐이다.

묻지마 투자와 투매를 반복하는 것은 오를 때 사고 떨어질 때 파는 실패 공식에 그대로 갇혀 버리는 일이다. 투자는 흥분과 공포심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시작한 투자라면 공포심을 통제하는 일이 필요한 때다. 무조건 팔아치우기보다 냉철한 자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펀드 투자에 '올인'한 것이라면 조정을 통해 안전자산을 확보하고 인내할 수 있는 하락의 폭을 스스로 정해보자.

특히 비상금 하나 없이 거치식으로 펀드투자에 '올인'한 상황이라면 혹시나 더 오르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고 생활비의 6개월치는 비상금 명목으로 확정금리형 수시입출 상품으로 조정해야 한다. 또한 3년 이내 단기에 쓸 돈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보고 그에 맞는 규모만큼 예금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몇 년간 수익률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될 만큼만 투자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립식 펀드의 경우도 저축의 전부를 '올인'한 경우라면 지금까지 유지해 온 투자는 유지하면서 자동이체 금액만 조정해서 일부를 적금으로 돌리자. 펀드와 적금의 비중을 결정하는 기준 또한 자신의 인생 설계 밑그림이어야 한다.

절망하기 전에 다시 한번 인생 설계를

상승에 대한 막연한 흥분이나 폭락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으로 투자와 투매를 반복하는 우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생설계다. 자신이 언제 얼마를 써야 하는지 돈에 대한 밑그림도 없이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흥분과 공포의 투자 실패공식에 갇히는 지름길이다.

인생 설계 없이 하는 투자 실패공식은 짧은 시간 안에 막연히 큰 수익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빚어내 화(禍)이다. 그러한 무모한 기대심이 전제된 투자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학습이 필요한 때다.

막연한 기대심이 막연한 절망감으로 바뀌는 요즘, 냉철한 미래 설계, 인생설계를 통해 기본으로 돌아가자. 막연함으로는 복잡한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의 무한 경쟁속에서 빚어지는 무시무시한 위험을 통제할 수 없다. 이제라도 인생설계를 통해 당장의 절망과 공포심을 통제할 구체적인 희망을 만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 것이다.


태그:#펀드 투자,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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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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