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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이나 밭에서 잡초취급을 당하는 명아주
▲ 명아주 들판이나 밭에서 잡초취급을 당하는 명아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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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아주는 밭이나 들판에 흔히 자라는 잡초입니다. 연할 때 나물로 먹으면 별미라고는 하지만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물을 좋아하는 우리집 밥상에도 명아주나물은 단 한번도 올라온 적이 없습니다.

그저 밭에서 뽑아내야하는 귀찮은 존재, 엄밀하게 말하면 잡초는 하나도 없는 법이니 야생초로 불러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작을 때 뽑으면 쉽게 뽑히지만 제법 키가 큰 다음에 뽑아내려면 뿌리가 깊어 엄청 힘이 듭니다.

크게 자란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 합니다. 명아주 줄기는 가볍고 튼튼해서 예로부터 노인들에게 좋은 선물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장수한 노인에게 임금이 청려장을 직접 하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만 바라보니 송글송글 모여 피어있는 꽃들이 보인다.
▲ 명아주 가만 바라보니 송글송글 모여 피어있는 꽃들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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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를 짓는 분들은 밭에 명아주가 있으면 뽑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간혹 들판에서 훌쩍 큰 명아주를 만나긴 했지만 지팡이를 만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크게 자란 명아주는 지팡이를 만들고도 남을 만큼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문헌에도 '청려장'이 있고, 안동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짚고 다녔던 청려장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제가 만난 명아주를 능가하는 명아주가 있겠지요.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전해지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알루미늄으로 된 지팡이가 많아 옛날처럼 나무나 명아주로 만든 멋들어진 지팡이를 볼 수 없습니다. 더 편해지고 가벼워지고 튼튼해진 것은 같은데 옛 멋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딘가에서 지팡이로 만들어도 좋을만한 명아주를 만나면 청려장을 만들어 아버님께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꽃들 중 한 송이를 보았더니 아주 예쁜 꽃이 피었다.
▲ 명아주 많은 꽃들 중 한 송이를 보았더니 아주 예쁜 꽃이 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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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 명아주가 이렇게 예쁜 꽃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꽃술이야 있겠지만 이렇게 꽃받침인지, 꽃잎인지 모를 작은 것과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줄은 몰랐지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작은 것들도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 누가 봐주지 않아도 활짝 웃으며 피어나는 들꽃, 뽑히고 또 뽑혀도 생명을 이어가는 잡초라고 불리는 초록의 생명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화사함을 포기한 꽃들.

작고 못 생긴 꽃들, 작아서 관심밖에 있는 들꽃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 잡초라 부르는 초록생명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숲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감으로 인해 땅이 생명의 기운을 얻어 옥토가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도 그렇지요. 작고 못 생긴 사람들, 변방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척박한 삶이 있어 이 역사가 이어져가는 것입니다. 들풀의 삶도 민초들의 삶도 신비스럽습니다. 그 신비스러움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연에게나 민초들에게나 겸손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명아주, #청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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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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