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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 중 국민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4대 사회보험 징수업무 통합은 그 주된 취지가 국민 편의와 행정 효율성을 위한 것이다. 사기업의 구조조정에 해당하는 이것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4대 사회보험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자칫 잘못될 경우에는 그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얼마 전에 불거진 일본의 국민연금 납부기록 소실파문에서 보듯이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이나 조직의 효율화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조직의 군살을 제거하여 작고 강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며, 둘째 업무 통합은 비슷한 업무를 중심으로 시너지가 나타나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하며,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직을 통폐합할 때는 그에 따른 파장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작은 조직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비대할수록 경직화되고 관료화된다. 건강보험공단으로 업무를 통합한다는데 가장 큰 조직을 더 크게 만드는 꼴이다. 직원 수로 보면 건강보험은 1만 2000명이고 국민연금은 5000명 정도이며, 근로복지공단은 3600명 정도가 된다. 과연 1만 2000명의 조직에 더 많은 업무와 직원 2~3천명 더 투입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징수율로 따져볼 때 직장가입자 징수율은 4대보험이 다 99% 이상이므로 비슷하다. 지역가입자를 관리하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지역징수율을 보면 건강보험은 90%가 넘고 국민연금은 80%를 겨우 넘는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단순히 징수율만을 따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임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은 사업장을 탈퇴하는 경우, 대상자의 신고절차 없이 지역피보험자로 당연가입되어 보험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당연적용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수용도가 워낙 낮기 때문에 '가입신고 안내문'을 보내고 개별상담을 통해서 가입이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보험료의 징수에 있어서도 건강보험은 재산압류 등 강제징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국민연금은 가입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제도에 대한 안내와 설득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험료 징수업무를 통합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업무성격이 가장 유사하기 때문에 통합의 효율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 모 일간지에 보도된 것처럼 직장인의 경우, 월급에서 공제되는 공과금 중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은 5~6% 정도만이 아깝게 생각하지만 국민연금은 무려 63% 이상이 아까워한다고 한다. 업무의 성격은 비슷할지 몰라도 가입자의 수용도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다.

결국 통합고지를 했을 경우 가입자의 반발이 예상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TV시청료를 전기요금에 통합고지한 것처럼 잠시 반발이야 있겠지만 곧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TV시청료는 전기요금에 비해 미미한 금액이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는 4대 보험 중 보험요율이 가장 높다. 그리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가입자다. 건강보험은 모든 세대원이 피보험자이며 세대단위로 무조건 보험료가 부과되지만 국민연금은 18세 이상 60세 미만이 가입대상이며 가입자 개인별로 고지된다. 이 중에도 27세 미만이나 결혼한 배우자로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가입대상이 아니며, 가입자도 소득이 없으면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납부예외자로 관리된다. 가입 절차에서부터 보험료 징수까지 일일이 개별접촉을 통한 안내와 설득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세대별로 강제징수 중심으로 추진하는 업무와 개인별로 설득중심으로 추진하는 업무를 통합하는 것이 과연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4대 보험 징수업무 통합의 당위성은 국민의 편의다. 통합징수업무를 담당하게 될 거대조직에 고객만족이나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 장의 고지서로 발급된 4대 보험의 보험료 중에 일부 보험료에 대한 조정이나 취소 등 가입자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격업무가 처리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자격업무는 이미 통합전산망이 가동되고 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료에 이의가 있는 모든 가입자는 건강보험으로 몰려가게 될 것이고 관련 자격업무도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일 많은 것 좋아할 사람 없고, 어려운 일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업무처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는 사람에게 정확한 업무처리나 고객만족을 기대하는 것 또한 어렵다.

의료보험제도의 경우에는 공무원, 직장, 지역의 적용대상자를 모두 국민건강보험 한 곳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공적연금제도는 아직도 보험료율이나 연금의 보장수준, 기금안정성 등에 대한 개혁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군인이나 공무원, 사립학교교직원, 국민연금 간에 제도 형평의 문제도 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이해가 너무 달라 쉽게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통합을 한다면 공적연금제도 내에서의 통합이 먼저일 것이다.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지난 정권에서는 새로운 공단으로, 현 정권에서는 기존 공단 중 한 곳으로 충분한 검토도 합의도 없이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대책 없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렇게 졸속하게 통합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자료의 소실이나 국민 불편과 같은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만 하더라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서상교 기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사회보험, #통합,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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