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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산골소녀 문경옥(구례 토지초교 연곡분교 1년)과 산골소년 양현석(보은 수정초교 삼가분교 1년) 학생의 필리핀 외갓집 방문을 동행 취재해 이들의 '소원 성취' 과정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쳐야 했다.

 

취재팀은 인천국제공항부터 경옥이 외할머니가 사는 필리핀 세부 지역 보홀 섬의 우바이까지는 동행 취재했으나, 현석이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사는 마스바테 지역 부리아스 섬의 마비톤을 찾아가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현석이네 가족과 동행하지 않고서 현석이엄마 까냐레스 달리사이 까날레씨의 친정집이 있는 마스바테주(州)의 마비톤을 찾아가는 것은 애당초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다.

 

비행기 5회, 배는 4회 갈아타는 빡빡한 6박7일 취재일정

 

우리가 계획했던 6박7일간의 취재일정은 육상교통은 제외하고도 비행기는 5회, 배는 4회 갈아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20일 인천국제공항~(국제선)~세부~(배)~보홀 섬(투비곤)~(버스/밴)~우바이의 경옥이 외가~(버스/승용차)~보홀 섬(탁빌라란)~(배)~세부~(국내선)~24일 마닐라~(국내선)~마스바테~(배)~부리아스 섬~(차)~마비톤의 현석이 외가~(차)~부리아스 섬(클라베리아)~(배)~마스바테~(국내선)~26일 마닐라~(국제선)~인천국제공항. 그런데 24·25일 일정이 완전히 '펑크'난 것이다.

 

 

우선 까냐레스씨의 친정집에는 전화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로밍 휴대폰을 가져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현석이 가족과 헤어진 이후 달리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시집온 지 8년째이지만 내성적인 까냐레스는 한국어도 서툴렀다.

 

지난 20일 마닐라국제공항에서 달리사이를 만나 이튿날 마스바테행 국내선을 탈 때까지 안내한 현지 가이드 대니씨는 "요즘 필리핀에도 전화 없는 집은 거의 없는데 전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취재진이 마스바테를 거쳐 부리아스 섬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집주소와 전화가 없기 때문에 부리아스 섬에 가서 까냐레스 가족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취재팀도 그 점을 우려해 사전에 가이드에게 까냐레스의 친정집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알아놓으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래서 까냐레스도 친정집에 도착하는 대로 다른 집 전화를 이용해서라도 가이드에게 전화를 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현석이네 가족 중에 아무도 전화를 해주지 않았다.

 

"여기는 못 찾을 걸? 필리핀 사람들도 내기 했어요"

 

23일 마닐라에서 만난 하나투어 마닐라사무소 현지 가이드 대니씨가 취재진에게 건넨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Domestic, Going to Masbate city ▲Tricycle, Going to Masbate pier ▲Boat, Going to SAN PASCUAL or PASIG SAN RAMON ▲Go down to MABITON CLAVERIA. Ask for CAŇARES MATIAS or ALVIN CANATE."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마스바테시(市)로 가서 공항에 내리면,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마스바테 부두로 가서, 파스쿠알이나 라몬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마비톤 클라베리아에서 내려 '까냐레스 마티아스'나 '알빈 까나테' 집을 물어서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가이드는 "되도록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알아봤는데, 마비톤은 여행사 현지인 직원들과 식당 종업원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는 벽촌"이라고 했다.

 

심지어 가이드는 웃으면서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이 주소만 가지고 취재진이 과연 마비톤에 가서 까냐레스를 만날 수 있을지 내기를 했는데 만나지 못하는 쪽에 건 사람이 더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취재팀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부터 경옥이네는 보름 일정으로 필리핀 방문 스케줄을 짰고, 현석이네는 1주일 일정으로 잡았기 때문에 취재팀은 먼저 경옥이네 가족을 동행취재 한 뒤에 현석이네 집으로 찾아가 함께 귀국하는 1주일간의 취재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하루 전에 예고 없이 취소된 정기여객기

 

 

그런데 마스바테로 가기 위해 마닐라로 와서 비행기 편을 확인했으나 1주일 전에 예약해놓은 마닐라발(發) 마스바테착(着) 24일 비행기 편(6K321)이 갑자기 하루 전에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원래 '아시안 스피릿' 항공사가 운행하는 비행기가 하루에 한 편씩 뜨는데 현재로서는 27일 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아시안 스피릿' 항공사 사무소 직원에게 취소 사유를 물었으나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가이드 얘기로는 승객수가 많지 않아 취소된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필리핀에서는 별반 불평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취재를 접어야 했다. 현석이 가족을 통해 간접 취재라도 하려면 마닐라에 머물며 현석이네가 마스마테에서 마닐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귀국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현석이네가 타고 오기로 예정된 26일 아침 마스바테발 마닐라착 비행기가 과연 예정대로 뜰 수 있을 지였다. 이번에는 취재팀이 내기를 걸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현석이 가족이 반드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것을 기원했다.

 

항공사에 물어보니 다행히 돌아오는 비행기는 취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취소 사유가 기상 악화는 아니었다. 가이드의 추정대로 승객수가 적어서 항공사 측이 일방적으로 취소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괘씸했지만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비행기 취소된 덕분에 예정에 없던 마닐라 관광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비행기가 취소된 덕분에 예정에 없던 관광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우리는 현석이네를 기다리는 동안 마닐라 시내와 근교 관광을 했다. 하루는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고풍스런 구(舊)시가지를 둘러봤고, 다른 하루는 미군 철수 이후 공군기지에서 수출자유지역으로 변신한 클라크 경제특구와 주변에 새로 개발된 아이따 원주민 자치구역의 푸닝 온천을 다녀왔다.

 

때마침 필리핀은 25일(월요일)이 국경일이어서 연휴 기간이었다. 그 덕분에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혼잡하지 않은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행운은 현석이네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현석이 가족도 필리핀 외갓집에 갈 때는 고생했지만 돌아올 때는 필리핀에어라인의 '비즈니스 클래스'로 옮겨타는 행운을 누렸다. 방학을 이용해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 승객으로 만석이 되자 항공사 측에서 현석이네를 비즈니스 클래스로 옮겨 타게 한 것이다.

 

그 덕분에 현석이네는 엄마 고향 방문일정의 마지막 여정을 럭셔리하게 보냈다. 우리는 그나마 그것이 모든 것이 생소한 한국에 시집와서 마음 고생이 큰 현석이 엄마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랐다.

 

 


#소원우체통#나홀로입학생#필리핀 마스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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