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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월~8월엔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란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 주제는 '재활용'입니다. [편집자말]
흐림의 연속이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서민 경제.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던 사람들도 곧 먹게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국민 조롱. 구경조차 한 적 없는 돈 수십억이 매일 떡값·밥값·공천비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현실.

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덥게 사람을 괴롭힌다. 간간히 들려오는 금메달 소식에 꿀맛 같은 달콤함에 취해보기도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온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촛불 100일 집회. 파란 물대포, 위협적인 방패와 곤봉. 잡혀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쫓기던 전날 밤. 늦잠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진작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기회가 왔다.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를 취재할 기회가 주어졌다. 카메라를 챙기고, 따라 나서겠다는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생전 처음 취재(인터뷰 포함해서)에 나섰다.

사람 냄새 그립다, 장보러 가자

천애원 사회복지법인에서 나오신 분들.
▲ 나눔장터 천애원 사회복지법인에서 나오신 분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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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토) 11시 30분쯤 서울시 한강변 뚝섬공원에 마련된 나눔장터에 도착. 어수선한 장터.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사전 예약을 한 사람들의 신분과 판 물품을 확인하고 번호표와 기부봉투를 나눠 주는 바쁜 손길에도 줄은 오히려 더 길게 늘어진다.

"저…. <오마이뉴스>에서…."

정신없는 본부석에 쭈빗거리며 한마디 던져본다.

"박설경 간사님, <오마이뉴스>에서 취재 오셨답니다."

무선 소리. 잠깐 기다려 달란다. 이렇게 정신없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리한 부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한바퀴 돌아와도 여전히 정신없다.

"저 쪽 저 분이 간사님이세요."

본부석에 있던 자원활동가 한 분이 가르켜 준다.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에서…."
"아, 예. 반갑습니다. 죄송하네요. 워낙 정신 없어서…. 원래 자원활동가가 40여명 정도 되는데 휴가철이라 16명 뿐이어서…."

그나마 조금 한가한 오후 2시쯤 다시 시간을 잡았다.

입구 왼쪽에 조금 오래된 자전거들이 줄을 서 있다. 아이들 자전거도 10여대. '녹색 자전거 봉사단 연합' 분들이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기름도 치면서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 저 쪽 저거 내가 찜했어요! 찜!"

아이를 앞세운 아이 엄마가 줄밖에 서서 까치 다리로 서서 큰소리로 외친다.

"12시부터 판매 시작합니다. 기다리세요."

대답은 오히려 느긋하다. 자전거를 사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1·3주에 장이 서는 자전거 판매는 한번에 10대에서 많게는 50여대도 팔린다고, 가격은 만원에서 3만원 정도. 가져오면 A/S도 가능. "수익금 전액을 '나눔장터'에 기부한다"고 파는 분이 알려주셨다. 좋아 보이는 일제 사이클이 10만원. 지름신의 강림을 참으며, 미아 방지 아이 이름표를 만드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억척 여고생들, 장사 제대로 하네

달빛 같은 선생님과 별빛 같은 아이들의 즐거운 축제.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 서울여상 1학년 '명'반 학생들 달빛 같은 선생님과 별빛 같은 아이들의 즐거운 축제.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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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이 옷 사세요. 이 옷 어울리지 않아요?"
"이 옷 새 것인데요. 딱 맞네요. 1000원이에요. 1000원."

고만 고만한 고등학생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옷을 대어보고 사라고 난리다.

"에이, 너무 커서 안 되겠네."
"그럼 이 옷은 어때요. 조금 커도 나중에 입히면 이쁠 것 같은데…."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억척스러움. 일반적인 상거래라면 짜증날 것도 같은 강매. 그러나 사려는 사람, 파는 사람 누구 하나 얼굴 붉히는 이 없다. 여고생들의 끊임없는 재잘거림과 깎아달라는 아저씨의 버티기 흥정. 구경꾼이 몰려든다. 웃음이 넘친다.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1학년 '명반' 학생들 27명이 담임 선생님과 같이 왔다고 한다. 가져온 물품도 가지가지. 엄마 아빠의 옷가지부터 어린 동생의 장난감까지. 각자 집에서 쓰지 않은 물품을 가져왔다고 한다.

수익금을 어디에 쓸 거냐는 물음에 모두가 두 손으로 'X'. 절대 가르쳐 줄 수 없단다. 다만 모아서 좋은 데 쓴단다. 무얼까? 궁금하지만 알아낼 길 없다. 그러나 모르면 어떠랴. 달빛 같은 선생님과 별빛 같은 아이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축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을…. 좋은 곳에 쓴다는데 그 말을 누구인들 믿지 않겠는가.

아이의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닐런지...
▲ 판매 전액을 기부하는 홍수민 학생과 엄마 아이의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닐런지...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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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둘째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다. 구석에 있는 노트북 장난감에 눈이 가 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13만원쯤 하던 것, 작동이 잘 안 된다며 1000원만 달란다. 1000원을 주고 옆 이동 LG A/S센터로 가져갔다. 건전지에 녹이 나서 그렇다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면 쓸 수 있을 거라며 친절하게 일러주신다(장터에서 구입한 가전제품의 작동 여부를 무료로 확인해주신다고 한다.)

아, 횡재했다. 두 개의 장난감을 더 샀다. 광명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노인정에서 모아 왔다는 물건 중 자동차 장난감을 2000원, 톱니바퀴 장난감을 1000원에 샀다. 장난감 세 개를 사는 데 단돈 4000원이 들었다.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을용 등산 점퍼가 5000원이란다. 자전거 탈 때 입었으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크기가 110. 커도 너무 커서 포기했다.

내가 낸 물건값은 몽땅 기부 봉투로

가로 세로 1.7m, 대여할 수 있는 자릿수가 669석이다. 오늘은 휴가철이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라 그런지 400여석 정도만 대여가 됐다. 어린이 이름으로 대여한 곳이 100여석 정도. 평상시에 비해 조금 여유있어 보인다.

자릿수만큼 물건도 가지가지, 사연도 가지가지다. "친구와 같이 왔다"며 낡은 참고서와 책을 늘여 놓은 아이, 손수 만든 머리핀을 가져온 사람, 낚시대를 팔고 있는 아저씨…. '천애원'이라는 사회복지법인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옷가지를 파는 분들. 더러는 '땡처리' 하는 물건을 모아온 듯한 초청하지 않는 장사꾼들까지. 난장 마당에 복잡하면서도 흥겹게 넘실댄다.

꾸물거리던 날씨가 기어이 비를 뿌린다. 비를 피해 교각 밑으로 몰려들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정리한다. 본부석이 술렁이고 자원활동가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미처 다 팔지 못한 물품들을 기부함에 넣는 사람들. 판매 금액의 20%를 기부금으로 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좀 전에 1000원짜리 노트북을 팔았던 아이와 엄마가 동전과 지폐를 세고 있다. "얼마나 파셨느냐"는 물음에 5만5360원이란다. 기부 봉투에 넣는다. 전부 기부하실 거냐고 묻자 "좋은 일 하는데 전부 기부해야지요"라며 당연한 듯이 말하는 어머니.

기자 욕심에 사진 한 장 찍자고 제안했더니 수차례 거절하시더니 못내 쑥스러운 듯 자세를 취해 주신다. 용산에서 왔다는 초등학교 4학년 홍수민 학생과 그 어머니.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가르치고 만들려는 엄마와 아이의 돌아가는 뒷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번이 네 번째 참가"라며 1500원을 기부하던 아이. 형제가 나란히 기부증을 받아들고 사진 찍던 아이들.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은 '나눔의 행복' '더불어 사는 지혜', 이런 것이 아닐까?   

있을 건 다 있지만, 주전부리·장난감 총은 없네

2007년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자세히 볼 수 있다.
▲ 나눔장터 기부금 이렇게 쓰여요 2007년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자세히 볼 수 있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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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정리가 되어 갈 무렵 책임자인 박 간사와 만났다. 몇 번이나 앉으라는 제의를 거절했다. 나중에는 옷이 다 젖어 앉기가 힘들다며 어렵게 한다. 4년이 지난 이 행사, 대강의 규모와 행사 취지를 물어보고 마무리 지었다.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고 서울시가 지원하는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는 2003년 11월 '지상최대의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2004년엔 매달 장을 개최했고, 2005년엔 격주 개최로 횟수를 좀 더 늘렸다. 2006년부터는 매주 토요일 장터를 열고 있다.

올해 운영진 측이 내건 목표는 '3000만원 기부금 조성'과 '100만점 10억원 가치의 재사용품 순환'이다.

박 간사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자원 활동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땡처리' 하는 곳 아니니 장사하시는 분들은 오시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이것 때문에 운영규칙을 몇 번이나 바꾸었다고 한다. 음식물도 반입 금지다. 총기류는 장난감이라도 안 된단다.

10월 25일엔 올해 마지막 장터가 열린다. 큰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때 다시 오겠노라는 인사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눔장터의 기본 정신은 나눔과 순환이다. 쓰고 버릴 물건을 다른 사람이 재사용함으로서 경제·환경·나눔에 대한 교육 효과를 높인다. 더 나아가 쌓인 기부금을 해외 빈곤 어린이 교육과 복지 지원을 위해 쓴다.

알고 가면 행복 2배!

▲ 교통편
7호선 뚝섬 유원지역(한강 방면)
버스 2014번 종착역(경유지:성수동-한양대-왕십리역-상왕십리역-신당동-을지로-방산시장-종로-동대문운동장)
한강 유람선 타고 뚝섬역 선착장
자동차는 한강 뚝섬지구(한강 주차장 1일 주차 3000원(자가용 기준)

▲ 기부는 어떻게
물품을 기부하거나, 판매 금액의 20%(권유 사항)

▲ 장터 시간
12시부터 4시까지.

▲ 기타
전자제품은 반드시 이동 LG 서비스 센터에서 작동 여부를 확인할 것
판매 물품은 80점 이내. 장난감 총기류, 음식류, 위험한 물건 판매 금지

▲ 주변 볼 것
넓은 잔디밭. 야외 수영장. 오리 보트 선착장. 수상택시. 한강 유람선. 자연학습장. 자전거 대여하면 20분 정도만에 서울숲에 갈 수 있다.

▲ 신청
아름다운가게(http://www.flea1004.com)

토요일 뚝섬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기부의 날개짓을 생각한다.

그 작은 날개짓이 모여 먼 나라 인도의 문맹을 깨트리는 태풍이 되고(2007년 기부금 중 일부가 인도 학교를 짓는 데 지원되었다고 한다), 배고픈 걸식 아동의 도시락이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의 절망을 걷어내는 태풍이 되기도 한다.

나비 효과라고 했던가? 나비의 날개짓이 먼 나라에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 여기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에서 그 믿기지 않은 이론은 현실이다.

지루한 장마도 끝나간다. 가을맞이 대청소로 모아 두었던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장난감 챙겨들고 한 번쯤 나와볼 일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하루쯤 흠뻑 빠져 보아도 좋을 일이다. 천원의 기부와 만원의 행복, 여기서 즐겨도 아깝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태그:#나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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