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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날씨는 몹시 추웠다.

엄동설한이란 계절에 부합되게 이(치아)는 위와 아래가 맞부딪쳐 딱딱거렸다.

 

입성이 비루하였기에 느끼는 추위는 더 했다.

자정도 넘은 시간에 집을 나왔기에 갈 데라곤 막막했다.

 

휑휑한 겨울밤의 삭풍이 매섭게 휘몰아쳤다.

돈 없는 나같은 소년에게 ‘통행금지’라는 국가적 시책까지

어겨가면서까지 외상술을 줄 동네의 구멍가게 주인은 아니었다.

 

그랬으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가게의 문을 몇 번이나 두들겼다.

엄밀히 따져 그같은 행위는 못 먹는 감의 찌름이기보다는

이담에라도 아버지가 그 가겔 찾아와 “어젯밤에 우리 아들이 술 사러 안 왔더냐?”는

추궁에 “오긴 했소만 댁이 당최 외상 술값을 안 갚는 터임에

내가 어찌 문을 따 줄 수 있었겠소!”라는 주인의 면박이

나로선 분명 아버지의 심부름을 왔었노라는 증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가겟집 주인은 여전히 숨도 안 쉬는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몇 번을 간절하게 문을 두들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허나 내 손에 쥐어진 건 삼학소주가 아닌

고작 빈손이었음에 아버지께선 버럭 역정을 내셨다.

 

“술 한 병도 못 사 와?”

 

지금이야 24시간 편의점이라도 있다지만 당시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였다.

아버지께선 아까 한 얘길 또 하시고

당신의 화려했던 과거사까지를 과대포장하여

극도로 잠에 몰리는 이 가련한 아들을 다시금 괴롭히기 시작하셨다.

 

그랬으되 이제 겨우 열 살을 갓 넘은 초등학교 6학년생인

‘철부지’가 어찌 감히 집안의 폭군인 아버지에게

“이제 (잔소리는) 그만 하시고 주무세요.”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께선 냉수를 한 대접 들이키더니 또 다시 술 재촉의 고삐를 높이 드셨다.

“다시 가 봐! 이번에도 문을 안 열어주면 아예 부셔서라도...”

소주 한 병을 기필코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다시 주섬주섬 헐거운 옷을 껴입었다.

 

허나 가겟집 주인은 내가 아까보다 더 세게, 그리고 더 오랜

시간동안이나 문을 가열차게 두들겼음에도 여전히 꿩 구워먹은 소식일 따름이었다.

다시 또 빈손으로 집에 돌아갈 순 없었다.

 

짐작하건대 이제 시간은 얼추 새벽 한 시가 넘었을 터였다.

어쨌거나 잠을 조금이라도 자 둬야 낼 아침에 학교를 가든

아님 역전으로 나가 구두라도 닦든 할 참이었다.

 

집을 지나쳐 언덕배기의 빈집을 찾아 그 집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두 노인이 살다가 자식을 찾아 떠났다는 둥

하여간 이러저러한 곡절로써 비어있는 집임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거기서 몸을 새우처럼 잔뜩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허나 징그럽고 지독하게 추운 겨울날씨는

여전히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절망에로의 함몰 단초이기도 했다.

 

그날따라 항용 부재(不在)중인 엄마가 사무치게 증오스러웠다!

남들에겐 다 있는 엄마가 유독 나에겐 없었다.

 

이 추운 날 다른 아이들은 최소한 나뭇단이라도 땐

방에서 훈훈하게 잠을 자고 있겠으며 이에 동가홍상으로

포근한 엄마의 곁에서 자는 녀석들 또한 없지 않으리란

추측은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아가는 슬픔의 심로였다.

 

그랬다.

당시 아버지께선 알코올, 즉 독한 삼학소주만이

친구이자 무변하고 갑갑하며 짜증나는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한 번 술을 드시면 무려 보름 이상 20여일을 주야장천으로 드시고

그 기간이 ‘만료’되면 근 한 달은 술을 입에도 안 대는 습관의 소유자였던 아버지.

 

한 때는 지역의 주먹보스로 화려한 때도 없지 않았으되

이제 그같은 무용담은 흘러가버린 지 오래된 묵은 강물일 따름이었다.

하여간 어찌어찌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려는 순간

그러나 이번에 추위보다 고약한 녀석이 하나 나타났다.

 

그건 바로 두 눈에 파란 섬광을 가득 담은 살기등등한 고양이의 등장이었다.

순간 소름이 쫙 끼치며 무서워 견딜 재간이 없었다.

잠은 어느새 백리 밖으로 줄행랑치고 오로지

저 고양이로부터 달아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저리로 가! 어서!!”

포복하듯 겨우 그 마루 밑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어느새 흥건한 땀으로 젖어있던 나의 옷매무새 꼬라지는

희뿌연 달밤에 비춰 봐도 영락없는 거지발싸개 형국이었다.

 

옷을 대충 털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직도 동이 트려면 멀었는데 이젠 어딜 가서 잠을 자야 하나?!

이 때 짚이는 곳이 딱 하나 있었다.

 

거긴 바로 절친한 불알친구인 Y의 집이었다.

그 친구도 빈궁하여 비록 ‘내 집’은 아니었으되

어쨌거나 독채를 얻어 세를 살고 있었다.

 

부모님과 더불어 고구마줄기처럼 많은 식구들이

딸렸을망정 그 친구의 모친께선 평소에도 나를 아주 어여삐 봐 주고계신 때문이었다.

하여 이따금 아버지의 주사를 피해 그 집에 찾아가 도둑잠을 자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벌건 대낮도 아닌 엄동설한의 새벽에

남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들긴다는 것은 가겟집에 찾아가

외상술을 달라는 것 이상으로 면구스런 일이었다.

 

허나 더 이상은 춥고 무섭고 배도 고파서

체면을 차리고 자시고 할 계제의 영역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Y 엄니(엄마), 계셔유?”

불과 몇 번이나 그렇게 애타게 불렀을까...

 

이내 안방의 불이 켜지면서 친구의 어머니께서 맨발로 나오셨다.

그리곤 갈 데 없어 찾아온 이 불쌍한 놈의

손을 주저 없이 따사롭게 덥석 만져주시기까지 하는 게 아니시던가!

 

“어이구~ 이 추운 날에 이 꼬라지가 대체 뭐여? 어여(어서) 들어와!”

비록 더 이상의 말씀은 안 하셨으되 그날도 내가

심야에 당신의 집을 찾아든 건 아버지의 주사 때문이었음을

친구의 모친께선 경험 상 익히 잘 알고 계셨다.

 

Y의 아버지와 Y의 여동생 하나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지만 Y의 모친께선 부엌으로 가시어

어느새 뜨거운 밥에 된장국까지를 챙겨 나를 먹이셨다.

 

그렇게 밥을 먹는데 다시금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국에 빠지는 것까지는 제어하기 어려웠다.

밥을 먹고 Y 모친의 곁에 누웠으나 잠은 쉬 오지 않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의 처지와 더불어

아버지가 한걸음에 쫓아와 나를 찾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침불안석(寢不安席)이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 한 나는 그러나

너무도 일찍부터 이 풍진 세상살이가 참으로 어렵다는 걸 알았다.

자기 몫의 삶을 책임지지 못 하는 아버지는 논외로 친다 해도

여하튼 내 삶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며 쥐락펴락하는

운명의 신의 칠종칠금(七縱七擒) 행태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하여튼 그날은 Y 모친의 배려로 말미암아

잠시 뒤부터는 궁둥이도 따뜻하여 자못 푸짐한 잠이 밀물로 닥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완연한 꿀잠이 아니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Y모친께서 나를 황급히 흔드시더니

이불을 내 머리 위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시는 게 아닌가!

 

누군가 대문짝을 흔드는 소리도 잇따라 들렸는데

Y모친께선 그 주인공이 바로 나의 아버지라고 하셨다.

순간 도둑질하다 형사에게 곧장 검거를 앞둔

죄인의 심정으로 간이 두근두근 콩알만 해 졌다.

 

“아, 글쎄 안 왔대두유!”

내가 찾아왔는지를 묻는 아버지께 Y 모친께선 연신

손사래까지 치시며 안 왔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시는 모습이 안 봐도 삼천리로 보였다.

 

허나 아버지께선 그예 저벅저벅 집 안으로까지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욱 고개를 움츠리며 이불속을 깊게 파고들었다.

 

Y 부친과 여동생은 그같은 아침 일찍부터의 소란에

벌써 눈을 떠 도란도란하고 계셨다.

이윽고 마침내 열린 안방의 문.

 

“저 이부자리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유?”

귀에 익은 아버지의 질문에 Y 모친께선 그러나 침착하고 정중하게 말씀하셨다.

 

“누구긴 누구유, 우리 아들이쥬.”

허나 이 아들을 찾아내려는 아버지는 집요하셨다.

 

“그럼 저 이불을 한 번 걷어봐유,”

참았던 Y 모친이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셨다.

 

“근디 보자보자하니 이 양반이 중국 x 빤스를

삶아먹었나 왜 이다지 의심이 많댜? 쟤는 내 아들이 맞는다니께유!”

 

그제야 면구스러웠던지 하지만 궁시렁거리면서도 돌아서는 발걸음의 아버지셨다.

아버지가 가신 뒤 다시 아침밥을 지어 나를 먹이시면서 Y 모친께선 거듭 당부하셨다.

 

“너는 부모 복이 없어 고생이 많긴 하지만

공부를 잘 하고 심성도 고우니 이담엔 반드시 잘 살 껴.

그러니 어찌 보면 불쌍한 네 아버지를 원망 말고 열심히 살아야 혀!”

 

집에 들어선 건 어쨌든 Y를 따라가 흥뚱항뚱이나마 학교 수업을 마친 오후였다.

“새벽에 술 사러 간 놈이 대체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아버지는 모르시는 먼 친구네 집에서 잤다고 둘러댔지만

아버지의 노여움은 좀처럼 가실 줄 몰랐다.

 

이러구러 세월은 여류하여 아버지께선 진작에 이승을 버리셨다.

하지만 칠순의 Y 모친께선 지금도 생존해 계신다.

이후로도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을 때까지 Y 모친께는 신세를 많이 졌다.

 

그런 은공을 못 잊는 때문으로 나는 지금도

명절이 되면 반드시 Y 모친께 감사의 인사를 가는 것이다.

 

한 때의 거짓말이었으되 곤궁지경의 나를 구해주시고

여전히 친아들로 아시는 Y 모친께서 늘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공모 글입니다. 


태그:#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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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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