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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 토박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 정확하게 서울로 오기 전까지 - 단 한 번도 이사란 걸 간 적이 없다. 태어난 바로 그 집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선천성 '길치' 증상 때문에 어딜 찾아가려면 반나절이 걸린다. 그렇게 금쪽같이(?) 자란 딸내미가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올라가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은 무수한 반대와 협박, 질타를 날렸지만 난 꿋꿋하게 짐을 쌌다.

오고 보니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촌스럽게도 티비에서만 보던 방송국들이 실제 건물이라는 것에 놀랐고, 잡지에서만 보던 인디 영화들, 각종 전시회들… 하다못해 사람도 많지 않나. 서울로 올라와서 3개월 동안 잘 놀았다. 부산에서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집이다. 단 한 번도 이사를 가보지 못한, 그래서 초등학교 땐 늘 전학생이 부러웠던 나에게 집값의 개념이 있을 리 없었다.

 두 평도 안되는 공간. 사진이 넓게 나온 것!
▲ 두 달간 몸 담은 고시텔. 두 평도 안되는 공간. 사진이 넓게 나온 것!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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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달은 고시원에서 생활했는데, 다닥다닥 붙은 2평 남짓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첫 날은 한 숨도 못 잤다. 침대는 좁아서 팔을 펼 수가 없었고, 방음이 안 되는 벽은 너무나도 시끄러웠으며, 각 방에 배치된 소형 냉장고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뿜었다. 그렇다고 잠을 자지 않을 순 없는 법. 다음 날 나는 귀마개와 안대를 샀다.

고시원 생활이 그렇게 나빴던 건 아니다. 내가 있던 곳은 공부 보다는 집 없는 사람들 위주인지 아침에 약간 소란스럽다가 모두 학교에 가거나 회사에 갔다.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 누군가도 나처럼 방안에 웅크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곳에서 혼자 영화도 보고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셨다.

그러나 딱 두 달이 지나자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사실 공짜라고 주는 밥은 거저 줘도 못 먹을 정도로 펄펄 날아다니고, 김치는 첫 날 한 점 먹어보고는 뚜껑을 덮었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게 라면이랑 계란이지만 난 정말 웬만해서는 라면을 잘 안 먹기 때문에 그것도 시원찮았다.

그 후 고시원을 나와서 친구 집에서 한 달을 있었다. 당당하게(?) 방세를 부담하기로 하고 들어갔지만, 남의 집 살이가 마냥 편할 리는 없었다. 재미있었지만, 점점 엉덩이를 차듯 시간은 흘러갔고, 더 이상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방을 구하러 다니지 않은 건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인터넷을 뒤지고 공인중개소를 찾아갔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집들만 보여줬다. 아직 수입이라곤 없는 탓에 전세를 구해보려고 했으나, 간단하게 말해서 서울에서의 전세란 5000만 원 이하는 다 반지하다.

거기에 매물도 거의 없다. 5000만원을 내고도 콤콤한 반 지하에서 살다니.. 부산 사는 촌년에게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나마 싸다던 동네들도 될지 안 될지도 모를 ‘빌어먹을’ 뉴타운 지정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아현동에서는 공인중개소를 20군데 정도 돌아다녀도 전세 매물이 5000하나 8000하나 이렇게 딱 두 개였다.

그래서 나는 외곽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방화동까지 방을 보러 갔다. 방화동은 지하철 할증 요금이 기본 900원에서 무려 500원이나 더 붙는 곳에 있다. 방이 좋으면 말도 안 하지, 같이 보러간 언니가 자꾸만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다. "여긴, 아냐!”

그러다 지금 집을 구했다. 나의 파라다이스 옥탑방! 옥탑이냐 반지하냐를 고민하다가 옥탑으로 질렀는데 가격도 참 착하다. 시원한 조망권, 넓은 방, 깔끔한 화장실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었지만 옥탑의 영원한 숙제. 더위는 조금 문제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더위를 크게 타지 않는 편이지만, 찜질방에 따로 가지 않아도 될 후끈한 실내 덕분에 나는 물을 많이 먹는 '웰빙' 위주의 생활을 하고 있다.

맨 처음 내 옥탑방의 모습이다. 그나마 흰색 페인트를 칠한 상태.
▲ 텅빈 방안 맨 처음 내 옥탑방의 모습이다. 그나마 흰색 페인트를 칠한 상태.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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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했을 때 싱크대가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게' 빈 방이었던 이곳을 채우느라 힘들었다.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는 중고로 구입했는데도 비쌌고, 화장대, 행거, 이불 하다못해 젓가락 숟가락, 휴지걸이까지. 모든 물건을 사려니 이게 또 만만치 않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다고, 아직도 예쁜 가구들만 보면 사고 싶다. 나도 방에 아름다운 커튼을 하고, 비싼 주방기구를 들리고 우아한 커피 잔에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다. 허나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는 걸, 왜 맨 처음에 방만 구하면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외치던 그 때를 벌써 까먹는 걸까.

문득, 맨 처음 서울로 올라와 내 몸보다 큰 짐을 끌고선 고시원에 들어갔던 날이 생각났다. 소음 때문인 탓도 있지만, 서울에 와서 독립했다는 그 사실에 설레서 잠들지 못했다. 서울에만 올라오면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직업을 구할게 될 줄 알았던 허황되지만, 순수한 꿈을 꾸면서 행복했다. 지금 4개월째가 되어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고, 여전히 백수고, 엄마한테 '사채 빚'까지 쓰게 되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보았던 연극, 뮤지컬, 영화, 전시회 등이 나를 채우고, 쓰레기봉투가 얼만지도, 얼음물을 먹을 땐 쟁반에 받혀야 한다는 사소한 사실까지 알았으며, 아줌마 같은 순발력으로 물건의 가격비교를 하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오늘도 난 완벽하게 동작구 주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동작 문화센터 - 아줌마들이 많은 바로 그곳-에서 필라테스를 수강했다. 3개월에 6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나의 몸을 튼튼하게 만들리……. 오늘도 부푼 꿈을 가지는 하루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들아, 나에게 오라. 이제 방도 구했으니 난 두려울 것이 없다!


태그:#서울 집 값, #고시텔, #옥탑방,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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