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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사람이 죽을까?
선풍기가 '살인기계'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 무시무시한 선풍기? 과연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사람이 죽을까? 선풍기가 '살인기계'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 임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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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선풍기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 7월 31일 광주에서 술마시고 잠을 자던 조모(25)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조씨 곁에서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7월 2일 광주에서 또다른 조모(56)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고, 6월 28일에는 음식점 종업원 이모(35)씨도 같은 형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끝도 없는 선풍기 괴담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종 '선풍기 괴담'도 이어지고 있다.

1. 밀폐된 곳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산소가 부족해져서 죽으니, 문을 열고 자야 한다.
 2. 선풍기는 산소를 흡입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결국 질식해서 사망한다.
 3. 선풍기가 얼굴 근처의 공기를 날려버려 진공이 되어 사망한다.
 4. 강한 선풍기 바람에 의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사망한다. 
 5. 잠을 자면 체온이 내려가는데, 선풍기를 틀면 저체온증으로 심장마비가 발생한다.

이러한 괴담들이 사실이라면 선풍기 틀고 자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고유가로 에어콘 대신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국민들에게 이러한 괴담을 방치해두는 것은 이 땅의 과학기술인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의 규명을 위해 본 기자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1번 괴담부터 살펴보자. 밀폐된 곳에서 산소부족으로 사망했다면, 선풍기를 안 켜놔도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단지 사람의 호흡에 의해 산소가 부족해질 정도로 완벽히 밀폐시키기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 이게 원인이라면 문을 꼭닫고 사는 겨울철에 사망사고가 훨씬 많이 발생해야 한다.

2번 괴담은 전혀 논란할 가치도 없다. 선풍기는 살아있는 생명체나 내연기관이 아니므로  산소를 전혀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3번 괴담은 유체역학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 선풍기 바람은 연속적이기 때문에 날려간 바람만큼 들어온다. 또한 강풍이 불면 아주 경미하게 압력의 변화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선풍기 정도의 바람(3 m/s)으로는 대기압의 0.006% 변화만 있을 뿐이다. 통상적인 저기압의 1%도 안 되는 압력으로 사망한다면 태풍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압력으로 사망해야 한다.
 
4번 괴담은 언뜻 그럴 듯하다. 강한 바람 앞에 서면 숨을 쉬기 힘든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풍기 바람보다 훨씬 빠른 자전거나 자동차가 달릴 때 바람을 맞아도 호흡곤란을 겪지는 않는다. 만취했거나 호흡기 환자가 아니라면 이것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5번 괴담은 '선풍기 괴담' 중 유일하게 간단히 반박하기 힘든 경우다. 선풍기는 시원하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면 체온이 내려간다.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 저체온증이 발생하는가 하는 것과 이것이 심장마비 등 사망을 초래할 정도인가 하는 문제다.

의학계에서는 8~10도씨 정도 체온이 내려가야 저체온증으로 본다. 2~3도씨 정도 내려가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추운 겨울에도 매우 드물다.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른다면 선풍기보다는 에어콘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체온증으로 인한 간접 사망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리고, 임상실험을 통해 안전이 입증되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선풍기 바람을 오래 쏘이면 얼마나 체온이 내려가는지, 심장에는 부담이 가지 않는지 정말 궁금하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기자가 해본 선풍기 실험

직접 선풍기 바람을 맞아보기로 했다. 
 심장에 가까운 왼쪽 겨드랑이에 전자온도계를 꽂고 전자혈압/맥박계를 손목에 차고 실험을 하고 있다.
▲ 마루타가 된 기자 직접 선풍기 바람을 맞아보기로 했다. 심장에 가까운 왼쪽 겨드랑이에 전자온도계를 꽂고 전자혈압/맥박계를 손목에 차고 실험을 하고 있다.
ⓒ 임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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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자가 직접 '마루타'가 되어 중 2 딸아이와 함께 선풍기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선풍기를 가장 강하게 틀어놓고 누워서 2시간 동안 10분간격으로 체온과 혈압, 맥박을 측정하는 것이다. 준비한 실험도구와 실험조건은 다음과 같다.

-­ 혈압계: 상품명 National X, 측정오차: +/- 4 mmHg
­- 체온계: 상품명 SUMMIT SDT8A, 측정오차: +0.4도씨
­- 온습계: 상품명 Thermo Hygro, 측정오차: +2도씨
­- 선풍기: 상품명 E-Basics(MF-3710), 최대풍속: 2.9m/s, 소비전력: 55W
- 방 크기: 245cm(가로) x 337cm(세로) x 229cm(높이)
* 실험 참여자: 본인(45세, 73kg중, 173cm)과 딸(13세, 50kg중, 160cm)

먼저 방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한 실험이다. 본인이 피실험자로 참여했는데, 2시간 내내 선풍기 바람으로 인한 혈압이나 맥박수, 체온(겨드랑이) 변화는 거의 없었다.

[표1] 문 개방시 성인(기자본인) 신체 변화 실험결과

시간
혈압(최고)
혈압(최저)
맥박수
체온
실온(온도계)

mmHg
mmHg
회/분
도씨
도씨
0
112
70
61
36.4
32.8
10
108
70
60
36.4
32.8
20
111
74
65
36.5
32.8
30
106
67
67
36.4
32.8
40
105
66
62
36.5
32.8
50
114
63
65
36.4
32.8
60
108
65
64
36.4
32.8
70
106
70
60
36.5
32.8
80
114
71
64
36.6
32.8
90
111
67
61
36.6
32.8
100
112
67
61
36.6
32.8
110
109
70
60
36.6
32.8
120
109
64
55
36.5
32.8
평균
109.6
68.0
61.9
36.5
32.8
표준편차
3.0
3.1
3.1
0.1
0.0

방안을 모두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다음 체온과 혈압, 맥박을 재본 것이다.
▲ 선풍기 실험 개방(성인) 방안을 모두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다음 체온과 혈압, 맥박을 재본 것이다.
ⓒ 임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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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방문이나 창문을 모두 꽁꽁 닫아놓은 상태에서 한 실험이다. 이 경우에도 특이한 신체변화는 없었다. 단지 실내온도가 0.6도씨 올라갔을 뿐이다. 선풍기나 사람 몸이 난로처럼 작용해 실내온도가 오히려 올라간 것이다.

[표2] 문 밀폐시 성인(기자본인) 신체 변화 실험결과

시간
혈압(최고)
혈압(최저)
맥박수
체온
실온(온도계)

mmHg
mmHg
회/분
도씨
도씨
0
114
77
57
36.5
30.3
10
113
78
55
36.6
30.4
20
118
79
53
36.6
30.5
30
118
81
53
36.6
30.6
40
113
71
58
36.5
30.7
50
115
69
53
36.7
30.8
60
109
70
57
36.5
30.8
70
110
73
56
36.5
30.8
80
112
77
60
36.5
30.8
90
115
79
57
36.3
30.8
100
114
74
55
36.4
30.9
110
118
80
59
36.5
30.9
평균
114.1
75.7
56.1
36.5
30.7
표준편차
3.0
4.1
2.4
0.1
0.2

방안을 모두 닫아 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다음 체온과 혈압, 맥박을 재본 것이다.
▲ 선풍기 실험 밀폐(성인) 결과 방안을 모두 닫아 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다음 체온과 혈압, 맥박을 재본 것이다.
ⓒ 임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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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풍기 바람을 오래 맞으면 사람의 손과 다리 온도는 어떻게 될까? 특히 체중이 적게 나가는 경우에는?  그래서 중2 딸아이가 실험대상자로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체온변화가 뚜렷히 나타났다. 선풍기 강풍을 쏘이게 하자 2시간후 체온(겨드랑이 온도)은 약 0.3도씨 낮아졌고, 손과 발은 약 1도씨 정도 낮아졌다.

[표3] 청소년(중 2)의 신체 부위별 온도 변화 실험결과

 
겨드랑이 온도
손 온도
다리 온도

도씨
도씨
도씨
0
36.8
34.4
34.8
10
36.9
33.5
34.9
20
36.7
33.5
35.7
30
36.9
33.0
34.2
40
36.7
34.1
34.4
50
36.7
33.9
33.5
60
36.7
32.7
34.9
70
36.5
32.7
33.7
80
36.6
32.7
33.5
90
36.4
32.4
33.2
100
36.4
32.8
33.9
110
36.5
32.2
33.7
120
36.4
32.6
34.0
평균
36.6
33.1
34.2
표준편차
0.173
0.67
0.69

방안을 모두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다음 딸아이의 신체 부위별 체온을 잰 것이다.
▲ 선풍기 실험-체온변화 방안을 모두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다음 딸아이의 신체 부위별 체온을 잰 것이다.
ⓒ 임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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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것일까? 손과 다리처럼 심장으로부터 거리가 먼 경우에는 평상시에도 2~3도 온도가 낮다. 특히 손과 다리의 피부는 강력한 선풍기 바람이 불면 온도가 1도 정도 더 내려간다. 그런데, 체중이 적은 청소년은 체적대비 표면적이 커서 어른보다 더 빨리 냉각이 된 것이다.  

선풍기는 살인기계가 아니다

이번 실험의 주요 결론은, 2시간 정도의 강력한 선풍기 바람으로 사망에 이를 정도의 저체온증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풍기 바람으로 인한 신체 내부의 온도나 심장 맥박수 체온변화는 거의 없다. 밀폐된 방에서는 오히려 약간 방안 온도가 올라가지만 신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손과 다리의 표면온도는 1도씨 정도 내려갈 수 있는데, 체중이 적은 어린 아이의 경우 보다 많이 내려갈 수 있다. 그래도 8~10도씨 내려가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의학적으로 저체온증이 유발되는 신체내부의 온도는 이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다. 결국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치명적인 저체온증이 유발되지는 않는다고 잠정 결론지을 수 있다.

신체가 허약하거나 특이한 체질인 경우, 선풍기에 의한 체온저하로 신체이상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는 계단을 올라간다든가 악수를 세게 하는 등의 충격으로 사망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산소부족, 공기희박, 저체온증, 강한 바람으로 인한 호흡곤란 등 '선풍기 살인'의 원인으로 지목된 모든 것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치명적인 위험과는 거리가 멀다. 선풍기는 우리를 더위에서 구해주는 은인이지 살인기계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잠 자다가 죽은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는 선풍기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풍기는 말없이 돌고 있고, 현장에는 선풍기 밖에는 아무 용의자가 없기 때문이다.

확률상 선풍기가 켜져 있을 때 사망하는 사람은 연간 수백 명에 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24만명이 사망(2006년, 24만 3934명)하는데, 연간 3개월만 선풍기를 사용하고 국민 중 1/100 이 잠잘 때 선풍기를 켜놓는다고 가정하면, 평균 1년에 600명(= 24만명/12 x 3개월 / 100)이 '선풍기 사고'로 사망한다.  선풍기가 수호천사는 아니기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다. 단지 옆에서 시키는 대로 제 역할을 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기자가 온 몸으로 실험을 해서 보여주고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선풍기 괴담'을 분쇄해줘도 해마다 쏟아지는 '선풍기 살인' 소식 때문에 불안감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할 분도 있을 것이다. 정 불안하거든 자기 전에 선풍기를 2시간 타이머에 맞추기 바란다. 하지만 창문을 꼭 열 필요도 없고 선풍기를 회전시키거나 약풍으로 할 필요가 없다. 이는 본인과 딸아이가 직접 검증한 것이니 믿어도 좋다.

다만, 감기드는 것까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이체질 환자들은 선풍기 바람을 조심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임춘택 기자는 KAIST 전문교수(과학기술정책학)입니다. 중2인 딸과 함께 이번 선풍기 실험을 했습니다.



태그:#선풍기 사고, #선풍기 살인, #질식사, #저체온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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