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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 <소통하는 우리 역사> 표지
▲ 책 표지 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 <소통하는 우리 역사> 표지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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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이르러서는 천지와 함께 했으나
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꾀할 바 없다
백성을 사랑한 정의에 내 잘못은 없건마는
나라를 사랑한 붉은 마음 누가 알까."

위는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 우뚝 섰던 전봉준 장군이 죽기 직전 남긴 시이다. 전봉준은 왜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고, 무엇 때문에 의연히 죽어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를 따르던 수십만 농민은 무엇 때문에 또 다른 전봉준이 되었을까?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느슨해지기 시작한 18세기. 수탈받던 농민들이 일어나 봉건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며 대규모 민중항쟁을 벌였는데 이는 곧 동학농민혁명이다.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변화시키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책은 그동안 많이 나왔는데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책이 나왔다. 바로 조광환이 발로 쓴 동학농민혁명 <소통하는 우리 역사>(살림터)가 그 책이다.

책은 강복구라는 이름으로 벼슬을 받고 세금을 낸 개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당시 조선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벼슬아치들이 농민들을 수탈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신분제도의 동요와 민중의식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를 함으로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배경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상세한 혁명의 전개과정도 설명한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 전봉준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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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란?"이란 제목처럼 <생각해보기>를 비롯,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아시아 침탈" 같은 <역사 산책>, 혁명전쟁 중에 농민군이 썼던 "장태"를 소개하는 <아야기 마당> 같은 다양한 꼭지로 독자들에게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

특히 공주대 국어교육과 김진규 교수의 "우금티 표기 문제"는 우리에게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일제의 핍박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김 교수는 "원래 '우금티'였지만 일본인들이 한자로 음차해서 '우금치'라고 고쳤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금치"는 "우금티"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은이는 마지막에 "백여 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또다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게 되었습니다. (중략) 주변 4강국에 의존하여 생존을 구걸해야 하는 제2의 식민지 시대를 맞이할지, 아니면 남북이 단결하여 자주통일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누리며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에 공헌할지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선택에 잘려 있는 것입니다"라며 지금도 동학농민혁명은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등 20 명이 결의사항과 함께 사발 모양으로 둥굴게 서명한 문서
▲ 사발통문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등 20 명이 결의사항과 함께 사발 모양으로 둥굴게 서명한 문서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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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에도 약간의 옥에 티는 존재한다. 기포, 내응, 창생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낱말을 그대로 썼다거나 생각해보기 중 "황토현 전봉준 동상은 친일파 작품?"처럼 제목과 내용이 잘 들어맞지 않았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혁명의 과정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가 동학농민혁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혁명을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손뼉을 쳐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입추를 지나 처서가 눈앞에 있다. 다가오는 독서의 계절 가을에는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우리 역사"를 일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사발통문은 소통, 그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대담] <소통하는 우리 역사> 지은이 조광환
대담을 한 지은이 조광환
▲ 조광환 대담을 한 지은이 조광환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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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또 이를 운동이 아닌 혁명이라고 정의한 까닭은?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말 조선의 불평등한 봉건적 신분제도의 모순 심화와 서구열강의 침탈에 대항한 민족항쟁이었다. 이는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에 형성된 체제와 사회의 붕괴를 촉진함으로써 근대적인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성립하게 하였으며, 민중의 의식을 일깨우고 드높여 일제침략 하에서도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을 할 수 있게 한 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당시 집강소 활동을 통해서 보여준 농민들의 혁명의지는 확고하였다. 곧 폐정개혁이라는 개혁안을 만들어서 중세적 신분 질서에 대해 자신의 힘으로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러한 혁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혁명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다른 서양의 여러 혁명과 비교하여 볼 때 지배계급 또는 국가체제의 전복이 이뤄지거나 급격한 사회. 경제구조의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혁명이 급진적 변화를 보인 것은 아니다. 실패로 보이는 것도 있고, 몇십 년에 걸쳐 개혁이 이루어진 혁명도 있다.

따라서 국사책에 나오는 '운동'이라는 성격이 없는 절충적인 용어는 적절치 않다. 4·19가 미완의 혁명인 것처럼 동학농민혁명 또한 좌절된 미완의 혁명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비록 외형적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갑오개혁을 통해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과 이 사건이 향후 우리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해볼 때 그 혁명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점으로 ' 혁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당시와 지금을 견준다면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반봉건 반외세의 민중항쟁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100여 년 전과 현재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말한다.

먼저 반봉건의 측면에서 보면 그 당시 불평등한 반상의 신분제도 대신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금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계층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 또한 좀처럼 나아질 전망이 없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심각한 것은 단순한 소득의 양극화만은 아닌 자본과 그로부터 비롯한 사교육을 통해 신분제가 존재하며 세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닮은꼴은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미 쇠고기 협상 반대집회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입을 모아 불법 폭력시위 엄단을 부르짖고 폭력적이고 자극적 장면만을 연일 보도한다. 그러나 농민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을 진지하게 짚는 성찰은 간데없다.

집회가 열리는 거리에는 갑오년 동학농민군처럼 생존권을 확보하고자 몸부림치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성사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이라면서도 농촌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 만석보 물세 감면을 요청했던 고부농민들의 처절한 애원을 뭉개버리고 무력으로 짓밟았던 조병갑, 사람대접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일어섰던 동학농민군을 압살하려고 외국군을 끌어들였던 민씨 정권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착시현상일까?

반외세의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 전망이 어둡다. 100여 년 전의 경우 동아시아로 세력 확장을 꾀하던 일본과 이를 견제하려는 중국,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 등과 같은 열강의 등장으로 한반도의 안위를 위협받았다는 점이 매우 유사하다. 현재 동아시아 패권국가로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탓에 한반도가 두 나라의 세력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짙은데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국토분단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당시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미국의 지원을 얻어냄으로써 아시아에서 미·영의 이익을 위협하는 러시아를 견제해 주는 대신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이권을 보장받았다.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그때 미 국방장관 태프트는 미국의 필리핀 장악과 같은 맥락으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것은 러-일 전쟁의 당연한 귀결이며 이는 극동의 항구적 평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 가쓰라의 후손들은 반성은커녕 3년을 주기로 뻔뻔한 '망언'을 토해내고 있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평화'를 명분으로 일본헌법 개정과 자위대 증강을 묵인하고 있다. 이런 선상에서 최근 '독도문제'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백여 년 전에 짜인 이 힘의 구조는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아직도 건재할 뿐 아니라 날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물결이 밀어닥치는 줄도 모른 채 위정자들은 자주적인 힘으로 이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청, 일, 러, 미 등에 기대거나 휘둘려 마침내는 식민지로 전락한 백여 년 전과 흡사한 지금의 현실이 암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다행인 것은 과거 민족의 등불이 되었던 수십만의 전봉준이 있었듯이 오늘날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우리 민중들이 건재하다는 것이다."

- 당시 동학군이 돌렸던 사발통문은 요즘 누리꾼들이 누리편지 또는 손전화 문자로 돌린 사발통문과 닮은 점이 있지 않을까?
"현대판 사발통문이 바로 손 전화 문자나 누리편지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발통문이나 손전화 문자나 누리편지 모두 소통의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긴 대중의 뜻이다. 이는 마치 물처럼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막으면 다른 곳이 터지듯이 또 다른 소통의 수단이 나올 것이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2001년 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물러나게 된 것도 민의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백만 민중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에스다로 갈 것, 검은 옷 착용"이라는 한통의 손전화 문자였던 것이다. 2002년 6월 누군가가 시작한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오."라는 손전화 문자를 보고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두 소녀를 추모하려고 자발적으로 모인 수많은 사람….

그리고 2008년 5월 인터넷 매체에서 출발한 촛불문화제 또한 자발적 민의의 표출이었으며 현재 두 달이 넘도록 꺼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소통이다. 위정자와 국민의 참된 소통을 통해 지혜를 모아나가도 부족한 이때에 한낱 소통의 수단에 불과한 인터넷 매체를 폐쇄한다고 될 일인가? 설사 그들의 뜻대로 된다 할지라도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결국, 소통의 그 끝이 어디인지 몰라도 그 중심엔 사람이 있어야 한다."

- 책에는 “이 시대에 진정한 선비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당시의 진정한 선비란 누구를 꼽을 수 있고, 지금은 진정한 선비가 없다고 생각하나?
"당시의 진정한 선비를 굳이 꼽자면 백범 김구선생을 들 수 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백범 김구선생은 시대의 양심이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황해도 해주성 공격의 선봉장이 다름 아닌 17세 어린 동학 접주 김구 선생이었다. 일제의 국권 침탈 이후엔 항일 독립운동으로, 해방 후엔 통일조국을 만들려고 온몸을 불사른 참다운 선비였다.

요즘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정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다. 지금 진정한 선비가 왜 없겠는가? 다만, 내가 경륜이 짧고 보는 눈이 부족하여 찾지 못할 따름이라 생각한다."

- 남접 전봉준 등이 강경하게 나오자 동학 지도부는 때가 아니니 자중하라며 만류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지도부의 생각처럼 좀 더 시기를 두고 힘을 더 길러야 하지 않았을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어른들께 자주 듣던 소리 중 "땐데 땐데 한다"라는 말이 있다. 용기 내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마냥 주저주저하면서 기다리고만 있다는 표현이다. 역사는 비록 가정할 수 없지만 좀 더 시기를 두고 힘을 더 길러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일제는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계획과 일정에 의해 침탈해 왔을 것이라 본다."

- 동학군이 점령한 곳은 집강소를 두어 통치를 했고, 의사원을 두어 대단히 민주적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의 집강소, 의사원 체재 등에 지금 정치가 배울 점은 없을까?

"당시는 폐정개혁과 같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며 그것을 실행할 의지와 능력이 충만한 자를 선임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폐정개혁안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민중들의 뜻이자 총의였던 것이다.

'과연 오늘날 지방자치의 목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제대로 답할 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의원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요즘의 세대를 보면 목적과 수단이 뒤바꿔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차제에 오늘날 폐정개혁안을 작성해보는 것이 어떨지 제안해본다."

대담을 마치며 지은이는 "지금도 동학농민혁명은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완결의 역사적 사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 자랑스러운 완결의 주인공으로 역사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잔잔하지만 그의 의지가 실려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나는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우리 역사 - 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

조광환 지음, 살림터(2008)


태그:#동학, #농민혁명, #조광환,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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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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