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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벌어서 멋지게 휴가를 다녀와야지'했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지난 주는 월요일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하늘만 올려다 보기를 나흘째 목요일 오전 학교에 가기가 무섭게 방학이라며 집으로 달려온 아이는 오자마자 심심하다며 투정이다. 게다가 주말까지도 비가 온다고 하니 이번 주는 아예 장사하기도 그른듯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어차피 휴가 가려고 마음 먹었던 거 그 계획을 한 주 앞당기기로 했다.

휴가지는 누가 뭐라 해도 친정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친정인데, 이제껏 다른곳으로의 피서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고, 미리 준비해둔 튜브며 구명 조끼 등을 챙겨 차에 실었다. 출발은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으로 정했다. 오후 2시 30분이면 끊기는 뱃시간을 맞추려면 아무리 늦어도 6시에는 출발을 해야했다

소풍 가는 아이마냥 들뜬 마음에 쉬이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자는듯 깨는듯 그렇게 몇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출발! 평소 같으면 학교종이 땡땡땡 울려도 '5분만 더'를 외치던 아이들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시키지 않아도 양치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그런데 출발을 하고 얼마 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곱살인 작은 아이 얼굴이 이상했다. 모기에 몰린 듯도 보였고, 아닌듯도 보였다. 왠지 이번 휴가는 순탄치 않을 것 같은 뜨거운 예감이 들었다. 차를 돌려 집으로 갈까했지만, 아직 심한 것 같지도 않고, 또 여수에도 소아과는 있을테니 그냥 가보기로 했다.

일곱시간 긴 주행을 마치고 여수에 도착해서 소아과를 가니 법정전염병인 '수두'라고 했다. '하필이면...'  의사 선생님은 공공장소에는 가지 말 것이며,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도 삼가해 줄 것이며, 딱지를 떼거나 긁지 말라는 몇가지 주의 사항을 설명해주셨다.

처방해 준 약을 바르고, 먹이는 약을 먹이고 보니 뱃시간이 5분 정도밖에 남지않았다. 섬에는 주유소가 없어서 반드시 기름을 한번 넣고 들어가야 하는데, 기름을 넣기에는 이미 늦은 것같았다. 눈금 하나 정도의 기름이 남아 있으니 되도록이면 적게 타기로 하고 열심히 차를 몰아가니 다행히 배는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표를 끊으려고 보니 작년하고는 비교도 안될 만큼 뱃삯이 비쌌다. 계산을 잘못했으려니 하고 물어 보니 오늘부터 인상되었으며, 그동안 할인되었던 자동차 삯도 오늘부터 정상요금을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차혜택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픈 아이 하나, 철없는 아이 하나, 그 와중에 일년에 딱 한번뿐인 휴가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며 거금을 주고 낚싯대를 산, 아이들보다 더 철없는 어른 하나를 데리도 나는 배에 오르게 되었다.

사십여분 뱃길을 달려 섬에 내리니 공기부터가 달랐다. 다시 십여분을 달려 친정집에 들어가니 사위 온다고 코끼리만한 씨암탉이 또 상 위에 떡 하니 누워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게눈 감추듯 닭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나니 그제야 휴가 온 실감이 났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친정은, 바닷바람까지 더해져서 후덥지근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물에 들어갈 수 없는 아픈 아이를 생각하면 엄마로서 곁에 있어줘야 했건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막 튜브를 불려는데, 평상에 앉아계시던 아버지께서 "차에 기름 있냐?"하고 물으셨다. 생전 그런 말씀 없으시다가 웬일로 그러실까 싶으셔서 "예"하고 대답을 하니 수돗물로 나오는 상수원을 섬사람 모두 구경을 했는데, 다리가 많이 아프신 아버지만 구경을 못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물이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차에 타신 아버지는 스치는 꽃 한 송이도 다 반갑고 새로운지 연신 예쁘다, 곱다 하시고 고갯길을 넘어갈 때는 "이 길 와 본 지가 몇해냐? 십년도 넘은 것 같다"하시며 감회에 젖곤 하셨다. 엄마 역시 아버지 곁에서 그 옛날 나무하러 다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회상하셨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추억과 엄마의 시난고난했던 시절 대신 기름걱정뿐이었다.

삼십분을 달려 드디어 상수원에 도착을 했다. 내고향 작은 섬에 그렇게 큰 상수원이 있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물이 얼마나 맑은지 상수원 초입에는 민물새우며 물고기들이 떼지어 살고 있었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떠서 마셔보니 물맛이 꿀맛이란 표현이 딱 맞았다. 다리가 아픈 아버지도 차에서 내려 상수원을 다 돌아보며 "좋다, 참 좋다"하셨다. 그 모습에 기름 걱정은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그런데 상수원을 다 돌아본 뒤 집으로 가려는데, 아버지께서 "이왕 나선 김에 함구미도 한번 가봤으믄 좋겄다"하시는 것이었다. 기름계는 이제 더 이상 내려설 곳이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가보고 싶어하시던 함구미는 상수원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할 수 없이 달렸다. 변변한 교통편 하나 없는 섬에서 얼마나 가보고 싶으셨으면 여독도 풀지 않은 딸사위한테 어린애처럼 부탁을 하실까 싶었다.

그렇게 다시 사십분을 달려 함구미,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가면서도 아버지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섬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섬에서 멋진 펜션을 지어놓고 민박을 하며 사시는 분도 계셨다. 사십년이 다 된 고향집과 극을 이루는 멋진 집을 보며 "허! 집 좋다"하셨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내 눈은 멋진 집보다 기름에 가 있었다. 역시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막 돌아오려는데, 주유등에 불이 번쩍하고 들어왔다.

불이 들어와도 몇 킬로미터는 간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집에는 간다고 쳐도 육지에 나가는 일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또 한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내 온 밥상을 받고 난 뒤 잠을 자는데도 온통 기름걱정뿐이었다. 그렇게 뒤척이며 잠을 자는데 갑자기 옆구리가 찌릿하고 아파왔다. 모기에 물렸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잠을 자기에는 통증의 정도가 너무나 심했다.

불을 켜고 이불을 터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베개를 털었는데, 순간 난 저승에 온 걸로 착각할 뻔 했다. 족히 15cm는 돼보이는 지네가 몸을 흔들며 가는 것이 아닌가. 손은 들고 있던 파리채로 지네를 내려치고 있었고, 입에서는 저절로 고함이 나왔다.

"으악! 저게 날 물었어! 내가 지네한테 물렸어, 나 죽나봐, 어떡해!"

안방에서 자고 있던 부모님이 건너오셨다. 아버지는 늘어져있던 지네를 부랴부랴 집어 들고 나가셨고, 엄마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그릇에 깨뜨려 들고 오셨다. "천병허고, 하필이믄 내 딸을 물었으끄나 잉"하며 계란을 마시라고 했다.

낮에 먹었던 닭이 원인이라고 했다. 지네하고 닭은 천적이라서 닭냄새를 맡고 지네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은근히 억울했다. 닭은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이 먹었는데, 왜 하필 나를 물었는지...

눈도 안 떠지는 새벽 1시에 계란을 마시고, 계란을 바르고, 욱신거려오는 옆구리를 붙들고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기름 걱정으로 한숨을 내리쉬는 내 모습은 절대 휴가맞은 피서객이 아니었다. 얼음 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다시 잠을 청해봤지만, 금세라도 다시 스물다섯개의 마디를 흔들며 지네가 나올 것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하장사도 쏟아지는 눈꺼풀은 밀어 올릴 수 없다고 했듯 서서히 몰려오는 졸음에 나도 그만 쓰러지고 말았는데, 순간 딸아이 발밑으로 지나가는 저것은? 이번에는 꼬리에 집게가 달려있는 까막 지네였다.

"으악!"

막 잠이 들었을 부모님이 또 다시 건너오셨다. 그렇게 밤새 지네 때문에 한 잠도 못 잔  다음날 한번 물리면 일주일은 퉁퉁 부어있는다는 말과는 달리 얼음 찜질 덕분인지, 잠결에 마신 계란 덕분인지, 내 옆구리는 지네에 물린 자국만 남아있을 뿐 멀쩡한 반면 수두에 걸린 작은 아이 몸에는 작은 빈틈도 없이 물집이 잡혀 있었다. 게다가 기름은 여전히 주유등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휴가는 여기에서 접어야 할 듯 했다. 동네에 오토바이를 갖고 계시는 몇 분을 수소문해서 기름을 1리터를 사서 붓고 이 참에 섬 일주를 계획하셨던 아버지께는 다음에는 차에 기름 많이 채워와서 전국 일주시켜 주마고 약속을 한 뒤 집을 나섰다.

비록 삼면이 바다인 곳에서 바다에 한번 못 들어가봤지만 이보다 더 짜릿한 휴가를 보낸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삼일간 꽃이 피고, 사흘째부터는 나을 거라던 작은 아이의 수두는 일주일이 됐건만 여전히 딱지로 남아 그 위력을 자랑하고 있고, 한번 물리면 죽을 때까지 간다는 지네 물린 자국은 내 옆구리에 그날밤의 생생한 짜릿함을 안겨주고 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낚싯대 한번 바다에 못 던져봤다고 툴툴거리는 남편. 마누라가 지네에 물려 사경을 헤맬 때도 눈부시다고 빨리 불끄라고 투정부리던 남편을 보니 내년 휴가에는 닭 국물을 자고 있는 남편 입술에 발라놔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닭,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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