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1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다니는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1 / 5 )

ⓒ 이창욱

아담한 해운분교장
 아담한 해운분교장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고요했다. 차로 30여 분을 달려도 서너명의 사람들과 버스 한 대를 만났을 뿐이다. 찾아간 마을은 해운(海雲)리, 마을이 바다 위에 뜬 구름같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지난 11일 해운리에 위치한 현경초등학교 해운분교장(전남 무안군 현경면 해운리)을 찾았다.

해운분교장은 전교생 14명과 선생님 3명, 직원 1명이 생활하는 자그마한 학교다.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 5·6학년 각 3명에, 4학년은 4명으로 고학년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러나 1, 3학년 1명, 2학년 2명으로 저학년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1학년 학생 1명이 이 글의 주인공인 '나홀로 입학생' 김효순양이다.

해운분교는 56년 분교로 처음 학교 문을 열었다. 이후 학생 수가 늘어나 63년에 '국민학교'로 승격되어 30여 년을 운영하다가 96년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 80년대에 전교생이 400여 명이 되어 오전, 오후반을 나눠야 했던 학교는 이제 교육청이 매년 주민들에게 통폐합 여부를 조사하는 학교가 되었다. 현재까진 주민들의 통폐합 반대에 부딪혀 12년째 입학생을 맞았다.

노래 잘하는 효순이는 똑순이 

효순이는 김효정·김인애 이 두 명의 2학년 언니들과 같은 반이다. 해운분교장은 적은 학생수 탓에 1·2학년과 3·4학년, 5·6학년을 각각 통합하여 복식수업으로 통합반을 운영한다.

효순이는 쾌활한 성격에 목소리도 크고 씩씩해서 '똑순이'로 불린다. 누구를 만나도 활발하게 인사도 잘하고 말도 또랑또랑 잘한다. 1·2학년 통합반 담임인 김인자 선생님(60)은 "그늘이 없고 밝은 성격에 자그마한 체구를 지녀 참 예쁘다"고 애정을 드러낸다. 효순이에 대해 "얼굴이 작으니 커서 탤런트 했으면 딱 좋겠다"는 기대도 품고 있다.

지금은 흐뭇하게 쳐다보지만 효순이가 갓 입학했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효순이가 문장 구사력이 떨어지고 주의가 산만했기 때문이다. 또래에 비해서도 유난히 유아 같은 면을 보였다고 한다. '저것이 공부를 할까' 덜컥 걱정까지 했으나 배우는 속도가 빨라 지금은 한시름 놓았다.

선생님이 노래를 시키자 효순이와 언니들은 얼른 일어나 노래를 부른다.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씩씩하다. 이제 겨우 1학기를 다닌 효순이지만 교육 효과가 드러난다.

1, 2학년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목은 '그림 그리고 싶은날'
ⓒ 이창욱

관련영상보기


인사할 때도 김 선생님이 가르쳐준 생활영어 "헬로우"를 외치며 허리를 90도로 정중하게 숙이고, 수업 중엔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또 대화를 나눌 때면 꼭 상대의 눈을 응시하는 습관도 생겼다.

교직을 20여 년간 쉬었다가 복직한 지 7년째라는 김 선생님의 애정어린 교육이 낳은 결과다. 정년까지 남은 3년이라는 기간이 참 소중하다는 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다"며 각오를 다진다.

효순이는 삼남매다. 집에서는 오빠 김용수(3학년)군과 인근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생 김영순(6)양이 친구가 된다. 오빠 용수도 3학년 '나홀로 재학생'이다.

2학년 김효정양의 학부모 김승현(39·학교운영위원)씨는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부모와 2대째 해운분교 동문이다"라며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정착하여 사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역 사정을 전했다. 마을에 유입되는 사람은 드물고 유출되는 사람은 꾸준해서 학생들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한자·워드·골프까지 다양한 교육 환경 제공 노력

하교한 용수(왼쪽), 효순(오른쪽)이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막내 영순이
 하교한 용수(왼쪽), 효순(오른쪽)이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막내 영순이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김인자 선생님과 인애(왼쪽), 효순이, 효정이(오른쪽)
 김인자 선생님과 인애(왼쪽), 효순이, 효정이(오른쪽)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학생수는 적지만 선생님들은 본교인 현경초등학교는 물론이고 타 지역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정규 교과목 이외에 한자·워드·골프까지 각자 한 가지 과목을 맡아 가르친다. 재능을 키우려면 어렸을 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선생님들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해운리엔 학원이 없어 학교 이외에 교육환경을 제공해줄 곳도 없어 학교가 나선 것이다.

김인자 선생님은 교육 효과가 높다고 설명한다. 1·2학년을 대상으로 3월부터 한자 교육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150자를 모두 배웠다는 것이다.

성과도 확인할 겸 아이들은 7월 중에 한자자격시험을 치른다. 또 5·6학년 아이들은 담임인 임채훈 선생님(32)에게 정보화교육을 받아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취득도 준비하고 있다.

서준채 분교부장 선생님(61)은 골프수업 담당이다. 빈 교실에 마련한 실내골프연습장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재능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근에 있는 함평골프고등학교 시설물을 활용한 연계 수업도 계획하고 있다.

학부모 김승현씨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학교 규모가 작어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 학습효과가 좌우되는데, 적극적인 선생님이 오신 것이 "해운분교에 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본교 학생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교육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확신한다. 작년에 본교 학생들은 입상하지 못한 제29회 전국학생 과학발명품경진 대회에서 당시 6학년이던 김은정 학생이 동상을 차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설명이다.

본교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통폐합 대상인 본교와 해운분교장에 대해 잘 안다는 김승현씨는 통폐합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는 "효율성만 따지는 탁상행정의 결과가 통폐합 정책"이라며 "통폐합이 되면 학교가 멀어지는 바람에 아이들이 통학차량 시간에 얽매여 수업 마치고 뛰어놀지도 못하고, 선생님들이 지금처럼 일과 후에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살펴주기도 어려워져 교육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시설투자 안 돼 교육환경 나빠지는 것은 불만


둘러 앉아 수업중인 1, 2학년반 아이들
 둘러 앉아 수업중인 1, 2학년반 아이들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부실한 급식
 부실한 급식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분교장에 다니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김승현씨는 당국이 학교 시설물에 투자하지 않아 학교환경이 나빠지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식당의 노후된 창틀을 교체하고 계닥 바닥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라고 3년 전부터 요구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 80년대와 비교해도 학교 시설물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며 심각성을 전했다.

임채훈 선생님은 "아이들이 똑같은 교육환경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단지 농촌에서 분교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받는 것이 미안하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임 선생님은 "통폐합을 유도하기 위해 시설투자를 하지 않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서준채 선생님은 지난 3월경 문이종 무안교육청 교육장이 해운분교장을 방문했을 때 시설투자를 주장했으나 "정책상 통폐합 대상인 분교장에 추가로 시설투자를 하는 것은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학교는 점차 폐허로 변해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무안교육청 시설담당 신일성씨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분교들은 통폐합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예산투입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논리로 봤을 때 학생 수가 많은 본교에 우선 투자해야 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한다. 분교는 안전에 문제있는 시설만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컴퓨터 등 교육기자재 지원도 열악하다. 현재 해운분교장에서 쓰고 있는 컴퓨터 15대는 작년에 얻어온 것이다. 광주 운남초등학교가 3년간 컴퓨터를 쓴 뒤 창고에 쌓아둔 것을 선생님이 나서서 얻어왔다. 서 선생님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교장 아이들은 컴퓨터 맛도 못 본다"고 귀띔했다. 운동장 한편에 설치된 운동기구들도 작년에 통폐합해 운영하지 않는 인근 현화초등학교에서 떼어온 것이다.

학교 급식도 문제다. 현재 급식은 학생수가 적어 자체 급식을 하지 못하고 인근 식당에서 배달해주는 음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식비는 한끼당 3000원으로, 식당 이익까지 고려하면 식재료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급식이 유지되는 것도 배달을 번거로워하는 식당을 잘 설득한 결과다.

임 선생님은 급식만큼은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창 고른 영양을 섭취해야 할 나이에 제대로 된 식단 구성없이 매일 식당 음식을 먹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이다.

집중! 사물놀이 수업시간
 집중! 사물놀이 수업시간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깽깽깽~♩♪! 조용하던 학교가 갑자기 떠들썩해진다. 2층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사물놀이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살짝 교실로 들어가봤다. 아이들의 눈매가 매섭다. 집중력이 느껴진다. 효순이는 장구를 잡았다. 함평에서 온 외부강사가 진행하는 사물놀이 수업은 전 학년 14명이 함께 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사물놀이 실력은 학교의 자랑이다. 작년 11월 본교에서 열린 학예회에서 해운분교장 전교생이 준비한 사물놀이가 큰 호응을 받아 실력을 입증했다. 본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분교 학생들의 솜씨를 멋들어지게 보여준 것이다.

서 선생님은 학예회 때 "지켜본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고 전한다. 학부모 김승현씨도 사물놀이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를 받던 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분교라고 만만히 보던 본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이 날 공연이 화제가 되어 크리스마스 이브 때는 마을주민 4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해운교회에서 공연까지 했다. 크리스마스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는 평가다.

사물놀이 수업이 끝이 나고 아이들이 학교를 나서기 시작했다. 길 옆으로 무안의 특산물 양파가 가득 쌓여있고, 밭에는 파릇파릇한 작물들과 허수아비가 서있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을 오빠 용수와 효순이는 나란히 걸어갔다. 효순이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다. 바다와 산이 가까운 그림같은 해운리에서 효순이는 화가의 꿈을 품으며 자라고 있다.

식당 좀 빨리 고쳐주세요!

오마이뉴스가 아름다운재단과 공동기획한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페인 중에는 '나홀로 입학생을 위한 소원우체통 지원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나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마을 주민들의 '소원'을 취재해 이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프라 지원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해운분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학교식당 환경 개선'이 소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요즘 어느 학교가 이런 시설에서 밥을 먹느냐는 것이다.

들어가보니 분위기가 휑하다. 특히 창틀은 너무 낡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고, 여기저기 다른 노후된 부분들도 눈에 띄었다. 학교에선 교육청에 보수를 요청했으나 분교장인 까닭에 우선 순위에 밀려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임채훈 선생님은 노후된 시설을 방치하는 것은 "위생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좋지 않다"며 환경 개선의 시급함을 강조했고, 학부모 김승현씨도 "3년째 요구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서준채 분교부장 선생님은 "500만원이면 개선해 아이들에게 밝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식당 내 낡은 창문틀과 뜯긴채 방치된 일부 배관
 학교 식당 내 낡은 창문틀과 뜯긴채 방치된 일부 배관
ⓒ 이창욱

관련사진보기





태그:#무안, #해운분교장, #김효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