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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명분은 정권이 제공한 것이다.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실정이 일차적 원인이다. 인사문제, 기득권층 편들기, 몰입교육, 대운하, 공공부문 민영화, 남북관계의 단절, 대미편향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분을 제공하였다.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는 단지 촛불집회를 직접 폭발시킨 계기였을 뿐이다.

 

촛불집회의 명분

 

첫째, 정부의 거듭되는 실정이다. 사실 경제만은 살리겠다는 내용없는 구호에 현혹되어 표를 준 국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출된 후에는 모두가 잘하기를 바랐고, 지지율도 상당히 높았다. 문제는 하는 일마다 어설프고 서툰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우왕좌왕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거기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굴욕적이고 졸속적인 결과로 귀결되자 폭발한 것이다. 여전히 정권이 자신들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둘째, 대의민주주의의 악용이다. 이 정권이 분명 헌법적 절차에 따라서 정당하게 선출된 정권이 맞다. 따라서 임기중에는 국민의 주권을 부분적으로 위임받았다. 그리고 잘못하면 정치적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의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으로 인정할 순 없다. 주권자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주권자의 의사에 현저히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해야할 의무가 동시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저히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하다가 국민의 반발을 초래한 잘못이 정권에게 있다. 아주 엄중한 책임이 뒤따라야 당연하다.

 

셋째, 비폭력이다. 헌법상의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탄생한 정권이기 때문에 비폭력 평화집회를 하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처럼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자들에게 평화적 집회는 의미가 없다. 촛불은 바로 그점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촛불은 시종 그렇게 평화롭게 타올랐다. 그러한 비폭력 평화집회에 국민의 공감이 커지면서 어린 학생들은 물론 연로하신 어르신들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넷째, 의회민주주의가 무너졌다. 적절한 균형과 견제가 불가능한 구도에 놓인 정치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기에는 지금 의회의 구도는 부적절하다. 야당은 전혀 견제할 수 있는 의석도 없다. 설혹 의석이 있더라도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수구언론의 편파적 편들기를 더하면 암담한 상황이다. 정권에 대한 견제를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촛불이 켜지고 타올랐다.

 

촛불의 명분은 정권의 실정과 위임받은 권력의 남용, 비폭력적 방법을 통한 항의와 의회에 대한 불신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시작되고 평화적 집회로 유지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나머지는 여전히 충분히 작용하는 명분이다. 다만 한가지 비폭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부분적 훼손이 있어서 안타깝다.

 

명분을 빼앗으려는 정권의 노력

 

첫째, 인적쇄신이다. 사실 몇몇 인사를 교체하긴 했으나 여전히 국민의 눈에 거슬리는 인사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또 내각의 경우 총리나 주요장관을 교체하지 않고 밀어부칠 태세이다.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면 턱없이 모자란다. 결국 촛불의 명분을 상쇄하기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둘째, 미국과의 추가협상이다. 근원적으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월령을 통제하고 SRM의 범위를 넓힌다는 것이 실효성도 없거니와 정부가 통제할 수단도 마땅치않다. 검역주권도 여전히 회복된 것이 없다. 문제는 당초의 협정문이다. 그것을 존치한 채 뭔가를 덧붙인다 하더라도 협정문의 권위를 넘을 수는 없다. 이 역시 촛불의 명분을 상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실효성이 없는 조치라는 것이다.

 

셋째, 국회개원 협상이다. 지금 야당이 전격 등원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한나라당의 의석수가 과반수를 훨씬 넘을 뿐 아니라 친박계의 복당이 이루어지면 모든 상임위를 점령할 수준이다. 게다가 비슷한 성향의 자유선진당까지를 합하면 개헌선에 도달할 지경이다. 야당이 들어가서 그 어떤 견제도 해낼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야당을 등원시켜서 국회를 연다면 그 역시 촛불의 명분을 삭감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하려는 태도로 해석할 수 없다.

 

넷째, 폭력시위 유발이다. 비폭력과 평화적 집회를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종종 폭력적인 양상이 나타난다. 조중동은 경찰이 당하는 폭력장면만을 강조하고 부각시킨다. 경찰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집회를 폭압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또 현장에 낫이 등장하고, 각목이 등장하며, 날카로운 쇠파이프가 등장한다. 부분적으로 그러한 폭력장비가 경찰에 의하여 제공되었다는 의혹도 있다. 이렇게 압박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위참여자에게 겁을 줘서 숫자를 줄이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촛불을 폭력집회로 매도하여 국민과 분리하려는 책동이다.

 

지금 정권은 다각도로 촛불집회를 신속히 진압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공권력이 물리적으로 소탕할 명분이 없다. 촛불의 명분을 빼앗고 폭력적 불법집회로 변질시켜야할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폭력적인 장면을 연출해내면 국민의 촛불에 대한 지지도 낮아지고 힘으로 누를 수 있는 명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

 

마침 중요한 시기에 정의구현 사제단이 등장하였다. 경찰의 폭압과 격앙된 촛불군중사이에 불행한 사태가 예견되던 시점이었다. 촛불군중의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여 불행을 막기 위해 사제들이 나선 것이다. 또 경찰의 무차별 폭압을 막고 완충하는 역할도 역시 자임한 것이다. 매우 적절한 시기에 매우 바람직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사제단은 실제로 그렇게 역할을 하였다. 수만의 인파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도 함부러 폭압적 수단을 사용할 수 없었다. 군중들도 사제단이 이끄는 쪽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하였다. 청와대로 가기 위해서 대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청와대가 아닌 국민속으로 행했다. 남대문을 향해 방향을 잡은 것도 역시 그러한 의도였을 것이다.

 

극단적인 파국은 막아야 옳다. 경찰의 폭압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촛불을 놓고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무장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해서는 이 사태가 해결될 수도 없을 뿐더러 희생이 너무나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제단의 등장은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일이다.

 

이제 촛불은 시작할 때의 모습으로 다시 평온해져야 한다. 정권은 성급히 촛불을 빼앗아 끄려고 달려들어서 불행한 결과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제단으로 부족하면 스님들도 나오셔야 한다. 그래도 모자라면 목사들도 나와야 한다. 그래서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다행히 KNCC의 목사들과 불교계에서 스님들도 동참한다고 한다. 그렇게 힘을 모아서 근단적인 불행은 막았으면 좋겠다.

 

촛불을 든 국민도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경찰차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려한 사람을 잡아서 경찰에 넘겼던 것처럼 명분을 빼앗기기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명분을 빼앗기면 국민과 유리되고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또 의심되는 경찰의 술수에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쇠파이프도 각목도 낫도 모두 경찰에 의하여 투입되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혹시 모르는 경찰의 프락치가 시위대 속에 잠입하여 엉뚱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주의해서 막아야 한다. 

 

명분을 지키려는 노력과 그 것을 빼앗으려는 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정의구현 사제단의 절충은 절묘하다. 그 길이 이기는 길이다. 결코 무력으로 맞서서 정권을 이길 수는 없다. 명분이 있어야 이기는 싸움이다. 종말은 정부의 재협상천 명이어야 한다. 정부의 진지하고 진솔한 반성이어야 한다. 촛불은 명분을 지키고, 정권은 국민의 뜻을 반드는 것이 지금 유일한 해결책이다. 끝으로 정의구현 사제단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촛불문화제, #명분싸움, #정의구현 사제단, #평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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