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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모토로 자전거 세계 일주를 시작한 지도 벌써 1년 2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혹독하게 외롭고 때로는 감은 눈에서마저 일상적인 그리움이 떠지는 길 위에서 내 인생의 십일조를 광야에 던지겠노라 젊은 혈기로 고백하고 떠나온 길에 참 많은 묵상과 많은 망상의 사이를 비집고 여기 쿠바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타고 뉴욕에서 떠나던 날을 기억합니다. 너무나 신나는 여정이라 마치 톰 소여의 모험이나 신밧드의 모험처럼 깜짝 놀랄만한 숨겨진 보물을 찾을 것만 같은 기대가 컸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풍찬노숙의 세월 속에 곳곳에서 만난 일상적이고 소박한 풍경들을 보면서 가장 특별한 보물섬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을러 터져서 메모에 인색하고 늘 이동하며 분주히 글을 올리는 까닭에 차분하지 못한 사색과 얕은 정보를 가지고 여전히 서툴고 거친 모습으로 독자들을 마주함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저의 가시를 감싸줄 수 있는 스펀지 같은 격려와 조언으로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중남미 카리브해와 중미 여행기를 이원으로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그간 부족한 모습에도 약이 되는 진심어린 쓴 소리를 해주시고 어깨 한 번 토닥거리는 마음으로 힘이 되어주신 독자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기자 주>

해변가에 초록빛 바다와 그 보다 높게 떠 있는 흰 구름의 조화가 너무 아름답다.
▲ 하늘에서 내려보는 쿠바 해변가에 초록빛 바다와 그 보다 높게 떠 있는 흰 구름의 조화가 너무 아름답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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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준호를 자네에게 부탁 좀 해도 되겠나?"

양 사장님의 말에는 그간 귀하게 자란 아들이 좀 더 혹독한 광야에서 몸으로 배운 지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파나마에서 지인의 지인을 거쳐 징검다리 식으로 알게 된 양 사장님은 내 여정에 대해 듣고는 그간 깊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원래 방학을 맞아 파나마에 온 아들을 온두라스에 있는 선교사님께로 보내 그 곳에서 두 달 간 봉사활동과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려고 했던 애초의 계획을 과감히 수정하려는 것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최선의 조합을 그려 보았다. 준호를 데리고 갔을 때와 혼자 갔을 때 발생할 긍정적 가치와 부정적 손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충해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혼자 하던 여행, 동반자가 생기다

양준호.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스페인어까지 능통한 스무살의 젊은 친구. 지금은 미국 피츠버그에서 정보 시스템 경영을 전공하고 있다. 하지만 준호를 처음 본 순간 전혀 긴장이 없어 보이는 100㎏ 가까이 나가는 그의 체구 어디에서도 젊음을 만끽하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은 배어나오지 않았다.

그가 자라온 환경은 모든 것이 최소한의 '인풋'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배출하는 높은 삶의 질로 견고하게 매듭지어져 있었다.

벤츠와 BMW가 그의 다리를 대신하고 있었고,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쾌적하고 너른 공간에 삶의 터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부족하고 아쉬울 게 없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역으로 말하면 현대 문명의 이기로 누리는 모든 하이테크 시스템이 자라나는 준호의 독립심과 모험심을 사근사근 갉아 먹었던 것이다.

준호 부모님은 우리가 떠나기 전 2층 대합실에서 여정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파나마에 도착한 나를 집으로 초대 해 파나마에서의 모든 일정을 돌봐주시고, 여러 모로 도움을 주신 감사한 분들이다. 긴장하던 준호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다.
▲ 준호 부모님과 헤어지며 준호 부모님은 우리가 떠나기 전 2층 대합실에서 여정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파나마에 도착한 나를 집으로 초대 해 파나마에서의 모든 일정을 돌봐주시고, 여러 모로 도움을 주신 감사한 분들이다. 긴장하던 준호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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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문제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체 게바라가 이른바 물질보다는 도덕적 가치에 따라 생활하는 '새로운 인간(El hombre nuevo)'을 창조하기 원했던 것처럼 양 사장님은 준호 역시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의 틀 안에 갇혀 익숙한 공간에서만 허우적대는 그가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달음질하게 될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를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었으리라.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한 더 무거운 책임을 어깨 위에 올려놓았고, 그런 내게 양 사장님은 대신 떠나기 전 파나마-쿠바 왕복항공권과 쿠바에서의 모든 일정에 대한 여비를 깜짝 선물로 주셨다. 그만큼 아들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어깨는 어쩔 수 없이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한번씩 부담감에 짓이겨 내리는 마음을 채근했다.

'뒤돌아서서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보는 거야.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한 달에 여행 경비 100달러... "너무 무모한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묻는다.

"쿠바는 왜요?"
"가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가서 찾아보죠 뭐."

그럴 때마다 마음에도 없는 무책임한 대답을 남겨 놓았다.

"날씨도 덥고, 외국인 전용화폐(CUC)를 써서 물가도 저렴하지는 않을 거예요. 사회주의라 감시도 심하죠. 아바나면 그래도 볼 만은 할 거 같고. 바라데로도 국제 해양휴양지로 유명하죠."
"……."

비행기 내에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물품들은 반드시 비닐 포장을 해야만 항공기 수화물로 간주한다. 가격은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자전거는 11불이며 따로 운반료로 40불을 추가지불해야 한다.
▲ 비닐 포장 비행기 내에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물품들은 반드시 비닐 포장을 해야만 항공기 수화물로 간주한다. 가격은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자전거는 11불이며 따로 운반료로 40불을 추가지불해야 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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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의 맹점은 항상 그렇다. 자신의 경험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말 좋은 조언은 여백, 즉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어쨌든 쿠바를 먼저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쿠바는 이렇다'라는 의견은 틀릴 게 뻔하다. 그들과 나의 경험의 방법부터가 완전히 틀리므로.

날씨가 무덥다면 혹한기처럼 춥지 않은 걸 감사하면 되는 거고, 더우면 또 야외취침이 가능하니 좋다 생각하면 끝. 외국인 전용 화폐는 무슨 얼어죽을, 비상시 거할 숙소비와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현지인 화폐로 승부 볼 테니 패스(대세는 외국인 전용 화폐인 CUC이고 외국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최근에는 이 화폐 단위를 사용한다는 정보를 책과 현지인 등 여러 곳에서 입수했으나 작년에 쿠바를 자전거로 일주한 박정규 동무의 여행기를 보며 자신감 충만해지며 콧방귀).

사회주의 체제의 감시는 잘못하지 않았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으므로 아웃. 아바나에 대한 기대는 유일하게 동감하는 대목이고, 바라데로는 멕시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바닷가 관광도시이므로 관심 밖(그래도 거쳐 가보기는 할 생각).

"그런데 비용이 좀 들겠어요. 한 달 가까운 일정이면…. 거긴 관광정책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은근히 비싸다니까요."
"다 해서 100달러 챙겨갑니다. 혹시 몰라 비상금조 100달러 빼고."
"뭐라고요, 100달러? 숙박비만 해도 한 달에 몇백달러가 들 텐데?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잠이야 텐트치고 자면 되는 거고. 먹는 거야 길거리표 음식들에 단련이 되었으니까요. 중미에서 하도 억세게 훈련되어서 이젠 위에서 고급 음식을 잘 못 받아요. 이동이야 자전거니 교통비는 횡단 끝내고 되돌아 올 때만 쓰면 되고. 100달러도 과분한데 함께 가는 친구가 자전거 여행이 처음이라 걱정이 되어 그나마 비상금까지 아주 널널하게 200달러 가져갑니다."
"정말 대책 없군요."
"확실한 대책만큼이나 재미없는 게 없죠."

우리가 탈 비행기. 유대인 자본으로 유대인들이 경영하는 회사란다.
▲ 쿠바나 항공 우리가 탈 비행기. 유대인 자본으로 유대인들이 경영하는 회사란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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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유기농법, 혹은 빔 벤더스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 네 가지 정도가 그간 쿠바를 찾는 대다수 여행자들의 핵심 키워드였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여기에 명실상부한 '아마야구 최강'이라는 타이틀만 하나 더 알고 가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쿠바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단절되어 있고, 또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그것도 멀어 보인다.

하지만 쿠바는 꽤나 매력적인 동네다. 무엇보다 무너질 것이라는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여전히 사회주의의 이름은 변증된 자본주의와의 타협 아래 시들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탐험가 콜럼버스도 울고 갔다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가난한 나라의 오기인지 깡인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강을 달리는 그들의 구기종목성적은 늘 파헤쳐 지지 않는 일급비밀감이다. 거기에 말이 필요없는 시대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두 인물에 의해 사회개혁의 꿈을 이뤄낸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이런 나라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누구나 그 땅을 밟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오묘한 성취감이 매력을 더해주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그들이 기름난 타개를 위해 가장 공을 들인 자전거라는 수단으로 그들의 땅을 누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유쾌한 발상인가!

그런데 쿠바를 향하는 내 마음엔 한 가지 불투명한 확신이 있었다. 특별하면 엄청 특별하거나 평범하다면 너무나 평범한 여행이 될 것 같다고. 그리고 어쩐지 준호와의 여정이 그 이유의 전부가 될 것 같다고. 과연 그 느낌이 맞을까?

자전거 운송료만 40달러? '돈 독' 오른 코파 항공

살짝 마음이 들뜬 상태에서 맞은 아침은 의외로 한산했다. 전날까지 파나마 시티를 다 뒤져가며 준호에게 필요한 모든 장비와 부품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막상 결전의 날이 다가오니 분위기가 진정되는 것이다. 준호는 긴장했는지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이뤘다. 피곤에 붉게 상기된 곰같은 얼굴이 더욱 커 보였다.

"우리 준호가 이런 어려운 일에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도 많이 하고 자네가 많이 힘들 수도 있을 걸세. 그래도 잘 부탁하네. 준호가 처음 보는 형인데도 자네를 많이 따르지 않는가."

거듭되는 준호 부모님의 부탁에 오히려 내가 송구스러워졌다. 어쩌면 나 때문에 준호가 더 힘들 가능성 역시 존재했고, 준호는 아직 나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집에서는 항상 웃는 낯이었지만 밖으로 나가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나는 거대한 벽 앞에 적잖이 경직된 준호의 얼굴을 보며 세 가지를 다짐했다.

'첫째, 나는 어려운 윗사람이 아닌 편한 동지 관계로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준호에게 존댓말을 쓰며 한 인격체로 대해 준다. 둘, 준호가 쿠바 자전거 횡단을 무사히 마치기 위한 모든 수고의 짐은 내가 진다. 셋, 나는 내 의견만큼이나 준호의 의견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모든 선택은 그와 함께 의논하고 판단하기로 한다.'

 밖을 보니 준호의 말이 사실이었다.
▲ "하늘이 거꾸로 떠 있는 거 같아요!" 밖을 보니 준호의 말이 사실이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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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토요일 이른 아침 비행기였으므로 우리는 미리 싸 둔 짐을 차에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나름 '중미의 허브'라는 파나마 시티 공항이 이렇게도 작을 줄은 몰랐다. 일단 짐을 풀고, 수속을 받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 라인에서 직원이 제지했다.

"자전거는 따로 포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박스로 단단히 포장했는걸요?"
"그게 아니라 비닐로 다시 꽁꽁 포장해야 한다고요."

딱딱한 여직원의 말투를 양 사장님이 되받아 봤지만 결론은 '흐림'이었다. 여러 나라 공항을 이용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장님은 몇 번 더 대화를 시도했지만 직원은 대지 위에 굳게 박힌 말뚝처럼 눈썹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물건에 손을 댈 수도 있을 거란 이유가 뒤따랐지만 우리는 숨은 경제원리를 이내 간파했다. 우리가 탈 코파 항공은 자본과 경영이 유대인들로 통솔되는 바로 유대 계통 항공사였던 것이다. 아쉬울 것 없는 태도로 '싫으면 그냥 돌아가라'라는 배짱경영을 하기에 여행자들은 규정 외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여호와가 아닌 돈이 구원자인 유대인들, 흥!'

그래서 비닐로 몇 번 둘둘 마는 자전거 포장가격이 무려 11달러란다. 더구나 자전거 운송료로 또 40불을 지출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비행기를 탈 때 단 한 번도 자전거 운송료라는 걸 내 본적이 없었다. 그 부피가 크고 무거운 골프채도 무사통과면서 왜 자전거만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출국세 20달러는 차라리 애교.

만국기가 설치 되었는데 유일하게 우리나라 국기만 제외되어 있다. 참고로 북한, 미국, 일본 모두 있다.
▲ 쿠바 아바나 공항 내 만국기가 설치 되었는데 유일하게 우리나라 국기만 제외되어 있다. 참고로 북한, 미국, 일본 모두 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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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부터 이래저래 예기치 못한 지출로 살짝 기분에 흠집이 났지만 여긴 엄연히 파나마. 쿠바에서는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여유를 가졌다.

준호 부모님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건강히 잘 다녀오라며 격려해 주셨지만 녀석은 여전히 표정이 굳어있었다.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잘 다녀오겠다는 말씀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파나마를 떠나기 위해 탑승구 쪽으로 발걸음을 밀어 넣었다. 지금부터 약 3주간 준호의 보호자는 내가 되는 것이다.

"형, 하늘이 거꾸로 있는 거 같아요!"

종이비행기에 꿈을 실어 날리듯 쿠바로 날아가는 길은 어느 새 우리를 아이처럼 들뜨게 만들었다. 무겁게 침묵하던 준호도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나 보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니 마치 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하늘 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청아한 푸른빛이 서로 뒤섞여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고 아래는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와 솜털 같은 구름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쿠바의 매력을 살짝 맛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는 기내에서 나누어 준 빵과 주스로 분주함으로 미처 챙기지 못한 아침 겸 점심을 대신하고 최고의 휴식모드인 선잠에 빠졌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마침내 말로만 듣던 사회주의의 나라, 카리브해의 진주 쿠바 섬에 발을 디뎠다. 

드디어 '사회주의' 국가에 발을 내딛다

쿠바 공항에서는 탑승자들이 출구로 빠져나가기 전 모든 짐 검사를 빠짐없이 한다.
▲ 짐 검사 쿠바 공항에서는 탑승자들이 출구로 빠져나가기 전 모든 짐 검사를 빠짐없이 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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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라는 게 괜히 사람의 마음을 긴장하게 하는 무언가 있는가 보다. 입국 심사부터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관료주의가 딱딱하게 몸에 밴 듯한 직원들의 눈빛과 행동은 우리를 점잖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독특한 정치제도라고 하지만 입국 심사대에 이어 연이어 짐 검색용 X-ray가 있는 꼴의 오류를 보고서도 다른 나라에서처럼 함부로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용기조차 피어오르질 않았다.

공항 직원들은 승객들의 가방을 일일이 꺼내 다 뒤져보는 통에 가장 늦게 나온 우리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때 직급이 높아 보이는 한 여자가 우리에게로 오더니 다짜고짜 짐에 대해 체크를 했다.

"혹시 컴퓨터 가져왔나요?"
"네, 일정도 정리하고 여러 가지 업무를 보려면 필요해서요. 문제라도 있습니까?"
"컴퓨터를 가지고 국내에서 사용하려면 여기에 20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20달러를 내라니?',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공항에 20달러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단다. 하지만 쿠바와 관련한 어떤 매체에서도 그런 정보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독특한 아이템이라면 이미 소문은 방방 뜨게 되어있을 것이었다.

공항 직원 중에서도 간부급으로 보이는 여자가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였으므로 우리는 한참을 머뭇거려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건 뭔가 옳지 않거나 명문화된 규정에 위배되는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준호를 통해 상기 관계에 대해 따져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금방 뒤돌아섰고, 그로부터 얼마 뒤 특이하게도 우리는 유일하게 아무런 짐 검사를 받지 않은 채 앞 승객들을 모두 제치고 출입구를 빠져 나가게 되었다. 왜? 나도 모른다. 여기가 쿠바라는 것 밖에는. 우리는 그냥 기분 좋게 출구를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공항으로 픽업 와 준 친구. 성실하고 유쾌한 성격에 한국 노래, 특히 아리랑을 기가 막히게 잘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 올랜도 공항으로 픽업 와 준 친구. 성실하고 유쾌한 성격에 한국 노래, 특히 아리랑을 기가 막히게 잘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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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도착해서보니 하늘에 보던 것과 달리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날씨에 당황했지만 우리는 당장 오늘 하루 어떻게 공항을 빠져나가 어디에서 유숙을 해야 할 지 외로운 행성(Lonely planet)을 펼쳐 놓고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현지인이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나타났다.

"택시는 필요 없습니다!"
"문종성·양준호씨 맞나요? 한국 사장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오늘 머무실 숙소까지 제가 픽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숙소라니요?"
"이미 숙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로 가셔서 일단 짐을 푸신 후에 여행 준비를 하세요."

놀랄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의 이름은 올랜도. 한국어가 조금 되는 성실한 이미지의 현지인이었다. 어쨌거나 우린 잘 됐다 싶어 일단 24일 간 쓸 200달러를 먼저 외국인 전용 화폐인 CUC로 교체했다.

이럴 땐 미국과의 적대 관계에 애꿎은 여행자가 된서리를 맞는데 대외적으로 1대 1이라는 달러 대 CUC의 가치는 실상은 달러의 가치가 더 약세다. 1달러에 0.89CUC를 적용하고 거기에 다시 10%정도의 세금을 뜯어가는 것이다. 즉 1CUC는 1.20달러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여행의 성패는 이 화폐를 다시 현지인들이 쓰는 페소로 바꿔 쓸 수 있는가에 달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극히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도착한 숙소는 한 눈에 봐도 쿠바에서도 꽤 좋은 축에 속하는 건물이었다. 여전히 누가 어떻게 우리를 알고 초대해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잠시 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파나마에서 각기 다른 두 분이 우리에 관한 두 편의 이메일이 여기 쿠바에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맨인 김동우 사장님께로 보냈더란다.

그런데 김동우 사장님은 그 메일을 출장 중에 너무 바쁜 나머지 체크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우연히 뒤로 검색해서 읽게 되었는데 그 땐 이미 우리가 카리브해 상공을 날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급히 한국에서 쿠바로 연락을 취한 수고 끝에 기가 막히게 우리가 도착할 때를 맞춰 차량이 온 것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기분 좋은 스타트였다.

김동우 사장님의 배려로 머물게 된 쿠바에서는 아주 괜찮은 숙소.
▲ 숙소 김동우 사장님의 배려로 머물게 된 쿠바에서는 아주 괜찮은 숙소.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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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은 그렇게 도착해서 자전거 조립만 해 두고는 휴식을 취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출발하자고 준호와 얘기를 나눴다.

"어때요?"
"괜찮아요, 형.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약간 진정된 것 같아요."
"지금 이것만 이겨낸다면 나중에 미국 돌아가서도 뭐든지 더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격려하는 말에 준호가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그다지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쿠바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우리는 쿠바 자전거 횡단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꿈나라로 들어갔다. 서로가 이상동몽을 꾸면서….

덧붙이는 글 |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자전거여행,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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