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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도 되기 전에 벌써 두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국민의사를 반영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그러나 재협상은 못하겠다. 한미FTA를 통한 경제살리기와 한미동맹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해해달라. 경제가 어려우니 파업은 자제하고 고통을 분담하자. 어려운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대운하는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하겠다. 인사문제는 잘못을 인정하고 쇄신하겠다. 이런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국민의사를 무시한 협상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잠시도 잊지 말아야할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망각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그런 가장 기본 사실을 망각하고 협상에 임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국민은 단 일억 분의 일이라도 위험에 노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특히 자녀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은 수치로 표시된 위험성과 상관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광우병의 발병 확률을 완전히 배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국민의 마음을 사전에 읽지 못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다.

 

또 수입위생조건을 변경해서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했다면 당연히 우리도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얻은 것이 없이 내어준 것은 일방적 희생이다. 왜 우리가 미국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검역을 중단할 수 없다는 내용은 심각한 주권의 문제이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속국도 아니고 엄연한 주권국가인데 우리의 주권을 왜 포기해야 하나? 그것도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OIE의 판단에 따라서 종속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권을 침해받고도 가만히 있는 국민이라면 나라를 지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저질러진 일에 국민은 재협상을 지시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여러가지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잃어버린 검역주권을 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위임받은 권력은 주권자의 뜻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재협상은 없다고 여전히 버티고 있다. 오히려 과거 마늘파동으로 중국에 무역보복을 당한 사례를 들어서 국민을 겁주고 있지 않은가? 주권자가 성난 촛불을 거둘 수 없는 이유다.

 

한미FTA와 한미동맹의 복원

 

쇠고기 문제를 그렇게 타결한 이유로 대통령이 제시한 것은 두가지다. 한미FTA의 조속한 비준을 통해서 경제를 살리려 했다는 점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을 복원하기 위해서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를 우리 국민이 그냥 덮고 넘어갔더라면 과연 미국 의회가 한미FTA 비준에 나섰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상하양원을 모두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은 전혀 비준에 나설 의사가 없다. 오히려 부시정권이 체결한 FTA를 전반적으로 부정 평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을 위해서 우리의 검역주권까지 내주고 만 것이다.

 

또 경제를 살리는데 한미FTA가 필수적인 것인가? 지난 노무현 정권이 체결한 한미FTA에 의존하여 경제를 살리겠다고 외치며 당선된 것인가? 이렇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만 시켜주면 곧장 투자가 늘고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주장하던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지난 10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한국경제를 발전시켜온 세력을 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공격했지 않았는가?

 

'잃어버린 10년', '좌파정권의 경제파탄'이라고 공격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 지난 정권이 체결한 한미FTA가 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도구라면 왜 정권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미동맹을 위해서 쇠고기 위생검역조건을 그렇게 양보했다는 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이다. 쇠고기 문제를 그렇게 양보하면 미국이 기분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기분이 좋다고 동맹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야만 동맹은 의미있는 것이다. 지금 쇠고기 문제로 인하여 우리 국민은 미국을 과거보다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미국도 결코 지금의 상황을 동맹이 강화된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정권에서 한미동맹에 커다란 문제라도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 것도 돌아보면 우습다. 미국에게 과거보다 약간 더 동등한 관계를 요구한 것이 그렇게도 한미동맹을 훼손했다면 미국과 한국은 이미 동맹도 아니다. 한미동맹이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한미양국의 당국자가 수차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단정하고 공격한 것은 정치 술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지금 쇠고기 문제처럼 미국이 시키는 일이라면 모두 조건없이 들어줘야 한미동맹이 유지되는가? 한미동맹은 그리 훼손된 일도 없으며, 지금 복원되고 있지도 않다. 쇠고기 문제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쇠고기 검역주권조차 넘겨줘야 유지될 한미동맹에 과연 우리가 집착해야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화물연대 파업과 고통분담론

 

화물연대의 파업 등에 대하여 현실을 과연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 화물차주들은 운송료를 받아서 소개비 내고 경유값을 치르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자기 돈으로 차를 사서 자기노동력을 고통스럽게 투입하고도 먹고 살기는커녕 운송을 할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 그들에게 고통을 분담하라고 한다. 심지어 물류가 중단되고 공장이 서면 서민들만 더 어려워질 뿐이라고 한다. 마치 공갈치는 뉘앙스로 들린다. 고통 분담이란 서로 남는 것에서 조금씩을 양보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용어다. 손해를 보며 운행을 하는 것은 고통의 분담이 아니라 고통의 전담이다.

 

이 일은 정부가 해법을 제시해야 옳다. 경유에 대하여 엄청난 규모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바로 그 세금의 부담을 대폭 덜어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한다. 정부가 먼저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과거 누적된 재정잉여금을 인심쓰듯 나눠줄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유류세를 경감해야 한다. 그 후에 비로소 다른 대책도 수립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재정으로 인심을 써서 인기를 누리고 화물차주들은 손해보고 운행하라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화주들의 경우도 역시 정부가 먼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고통을 나누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주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유류세를 많이 걷으려고 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고통을 서민에게 전담시키는 방식이라면 서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경제가 잘돌아가도 서민에게 돌아올 몫은 없지 않았나?

 

한반도 대운하

 

한반도 대운하도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나마 약간의 걱정은 덜었다. 국민이 반대해도 강행할 것처럼 하더니 이제 여론의 반대를 거스르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민은 적어도 70%에서 80%선까지 반대 여론을 표명해왔다. 분명히 국민은 반대했고, 반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당장 중단을 선언해야 했다. '반대하면'이라는 조건절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이 반대하시니 깨끗히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했어야 한다.

 

반대하면 안 하겠다는 것은 우선은 접어두고 있다가 여론의 반전을 꾀하고 여론이 바뀌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말과 다름 없지 않은가? 아직도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더 이상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당연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지를 둘 일이 아니다.

 

인적쇄신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선택이다. 국민이 모두 '고소영'. '강부자'라 하는 인사들을 고집한 것에 석고대죄라도 해야할 일이다. 능력없고 깨끗하지도 못한 사람들임이 이미 밝혀진 이상 신속히 모두 교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모자란다. 아무리 깨끗하고 유능한 참모들이라도 대통령의 태도에 따라서는 꿔다놓은 보리자루가 되기 쉽다. 국무위원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선적으로 틀어쥔 상태에서는 아무도 나서서 소신있게 발언조차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눈치만 보느라 일하지 못한 것은 능력이 없어서도 그렇겠지만 대통령의 독선적 태도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스스로 태도를 바꿔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일하도록 분위기를 이끌어야 비로소 참모들도 국무위원들도 유능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본인이 아침잠이 없다고 일찍 나와서 설치면 모두 눈치보느라 잠도 못자고 나와서 허둥될 것이 뻔하다. 잠도 충분히 자고 업무시간에는 좀더 자발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난 정권의 대통령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만 집무실에 일찍 나오지 않았다. 참모들과 공직자들이 거기에 맞춰서 끌려오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을 거느리는 방법은 배워야 한다. 대통령은 건설회사의 사장과 다르다. 일찍 나와서 서두른다고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이 정보화 사회의 경쟁력이다.

 

대국민 태도

 

그동안의 태도와는 달리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은 이번 담화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한다. 대통령은 국민을 통치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을 정중히 받들어 모시는 자리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핵심원리다.

 

그런데 그동안은 왜 전혀 그렇지 못한 태도를 보였을까? 불법과 편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사람들을 국민이 성토하면 '부자라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 이런 식의 대응은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우리 국민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광우병 위험이 몇억분의 일이라도 국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국민에게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거나 '광우병 괴담'이라고 국민을 오히려 공격했다. 화나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으면서 '소통'의 부재를 반성한다고 하였다. 국민이 뭔가를 잘 모르고 잘못된 정보에 의하여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을 깔고 있지 않고는 그런 발언을 할 수 없다. 국민이 설혹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더라도 그런 모욕을 해선 안된다. '초를 무슨 돈으로 샀는지, 배후를 밝혀라.'이런 식으로 끝없이 국민에게 모멸감을 주었다.

 

최근에는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인터넷은 독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이 역시 국민이 인터넷에서 거짓정보를 얻고 서로 증폭하며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취지로 들린다. 국민을 매우 하등한 지적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 취급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 발언들이다. HID, 보수기독교, 뉴라이트, 고엽제 전우회까지 나서서 집회를 방해하려 노력한 것에도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원로들을 만난다며 수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만 잔뜩 만났다. 그 중 기독교 목사 한사람은 조언을 한답시고 국민을 심하게 모욕하였다. 또 좌파 빨갱이들의 준동이라고 보는 시각도 드러났다. 어떻게 그런 인사들을 만나서 국민의 여론을 듣겠는가?

 

그런 태도에 대한 설명이 담화에는 전혀 없다. 담화 내용에는 국민의 여론으로 엄중히 따라야할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표현하던 그 모욕적 언행들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생각과는 달리 상황을 모면할 요량으로 발표한 담화라는 의구심이 샘솟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담화는 국민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재협상은 없다. 여론을 감안해서 국정을 수행하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내용이다. 매우 실망스럽고 우려되는 담화가 아닐 수 없다. 이 담화가 촛불로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평가된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촛불 대 명박산성, #화물연대, #대운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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