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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진행된 프랑스 화물 트럭 파업. 트럭들이 고속도로에 가득하다.
 6월 16일 진행된 프랑스 화물 트럭 파업. 트럭들이 고속도로에 가득하다.
ⓒ 야후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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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치솟는 물가로 프랑스인들의 생활의 질이 날로 저하되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는 소비자 물가지수가 0.5% 상승했고, 그 결과 올 들어 상승률이 3.3%에 달했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은 1991년 7월 이후 처음 있는 일로, INSEE(경제 연구 및 통계 국립연구소)에서는 "이런 현상은 주로 고유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5월 프랑스 경유가의 인상률은 4.8%로, 지난 1년 동안 17.9%이라는 획기적인 인상률을 기록했다. 전체 에너지 부문에서도 5월은 최악의 달로 기록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도시가스는 6.1%, 원유 제품은 5.4% 인상됐고 에너지 부문 전체적으로는 4.2% 인상됐다. 야채나 과일 같은 신선도가 높은 제품도 고유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5월 야채 및 과일 가격은 그 전달인 4월에 비해 5.9%, 2007년 5월에 비해서는 4% 인상됐다.

전 세계에서 매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원유가는 6월 16일 배럴당 139.89달러에 도달하면서 기록을 경신했다. 1999년에 배럴당 가격이 20달러, 2003년에 30달러 선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올 1월 2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배럴당 100달러 문턱을 통과한 원유가는 이후에도 그 상승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2009년 여름에는 배럴당 250달러로 올라갈 것이라고 추측하는 전문가도 있어 서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 성장 없고 / 월급 인상 없고 / 근무 시간은 한없이 늘어나기만 하고 / 최저생계보장마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 집 없는 자들의 수치만 늘어나고 있다. / 원유가는 2배로 치솟을 위기에 처하고 / 아울러 식료비도 덩달아 치솟으며 / 여기저기 내야 될 돈은 늘어나기만 하는 상황에서 / 폭발하고 있는 사회적 위기/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돈 궁핍에 시달린다. / 어, 이렇게 적고 보니 전혀 희망이라곤 안 보이는데 / 기쁜 소식은 어디서 오려나??????"

프랑스의 대표적인 온라인 뉴스인 <아고라박스>에 plume('펜'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적힌 댓글이다. 이 글에는 현재 프랑스 서민들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치솟는 기름 값-물가... 서민들 "아, 희망이 안 보이네"

고유가로 인해 가장 고통을 받는 층은 가난한 서민층이다.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한 파리 시내에 거주하는 파리지앵들은 굳이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출퇴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엄청나게 비싼 집값 때문에 파리를 벗어나 외곽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서민들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대중교통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나갈 수밖에 없는 불편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서민층 가정에서 차 유지비로 나가는 평균 금액은 한 달 지출 비용의 15%에 해당된다고 한다. 요즘처럼 계속 상승하는 경유 값과 여기에 자석처럼 따라붙어 같이 상승하는 식료품비로 인해 프랑스 서민 가정의 지출은 몰라보게 늘어나고 있다.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지출이 한없이 늘어날 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먹던 것을 줄이고 사 입던 옷을 사지 않고 지갑에서 돈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긴장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대개 한 달 정도 바캉스를 떠날 정도로 휴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인들이지만, 올 여름 프랑스 서민들에게 바캉스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고유가는 프랑스 서민들의 소비 습관까지 바꿔놓고 있다. 이제껏 대형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아오던 프랑스인들이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집 근처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장을 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프랑스 대형 슈퍼마켓의 판매율이 4.1%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집 근처의 소규모 슈퍼마켓의 제품 가격이 대형 슈퍼마켓의 그것보다 일반적으로 비싼 점을 감안하면, 서민들은 기름 값을 줄이는 대신 좀 더 비싼 가격으로 식료품을 구입해야 하는 또 다른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자기 집 근처에 구멍가게나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운아다. 지방 도시의 노인들에게는 장을 보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일이 돼 버렸다. 현대화 추세에 따라 가격 경쟁에서 밀린 소규모 상점들이 문을 닫은 경우가 많아, 집 밖 골목에 빵집, 정육점, 구멍가게 등이 늘어선 풍경은 이제 옛 이야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고통을 받는 것은 서민층이다.

기자가 사는 동네의 주유소. 경유 값이 1.60유로(약 2560원)이다.
 기자가 사는 동네의 주유소. 경유 값이 1.60유로(약 2560원)이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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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고통 모르는 상류층... 자가용 의존도 낮추자는 움직임도

그러나 고유가 현상에도 꿈쩍 않는 계층이 있다. 바로 상류층이다. 프랑스에서는 월수입이 4000유로(약 64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상류층이 10% 정도 되는데, 이들은 고유가 시대에도 별다른 불편 없이 쾌적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갑부 기업가이며 사르코지 대통령의 친구인 볼로레는 이런 고유가 시대에도 고가의 요트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휴양지인 말트섬으로 호화 여행을 하는 등 서민층과 대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인 중에는 고유가의 여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유가로 인해 무역의 세계화 추세가 한 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인데, 한 시민은 <아고라박스>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페루에서 들여오는 값싼 사과, 프랑스 시골에서 채취한 나무를 중국에 싣고 가서 판자로 만들어 다시 프랑스로 들고 오는 사례 등이 고유가 시대에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지방에서 나는 사과를 사다먹고 우리 산에서 나는 나무로 판자를 (직접) 만드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무역의 세계화에 이용되는 비행기와 트럭 사용이 줄어들어 지구 환경에도 좋을 것이니 고유가의 영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일 경우 걸어서 출퇴근하는 방식을 실천하고 추천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의 건강에도 좋은 일석이조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외에 전기자동차, 압축공기 자동차, 해바라기 기름이나 유채기름 등 곡물류 대체 연료로 구동할 수 있는 자동차 등을 폭넓게 이용한다면 세계적인 고유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친환경론자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고유가 못 참겠다"... 폭발한 프랑스인들
어부 이어 운전사들 파업... 민영화로 인상된 톨게이트비도 부담

고유가로 인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폭발한 프랑스인들의 파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어부들의 집단행동으로 시작된 '고유가 항의 파업'을 이어받은 것은 경유를 연료로 쓰는 화물차 등의 운전사들.

이달 초에도 이미 대규모 시위를 벌인 프랑스의 트럭, 택시, 앰뷸런스 운전자들은 16일(월요일) 오전 9시를 기해 파업에 들어갔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이날 오전 8시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실시된 '철학 바칼로레아' 시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늦은 시간인 오전 9시에 파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3천여 대의 화물차들은 전국의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서행하면서 교통 체증을 불러일으키고 톨게이트를 봉쇄하는가 하면 무료로 차량을 통행시키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이들은 경유가 인상 방지, 높은 사회부담금 및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는 중국 등과 달리 유류세가 원유가의 70% 수준을 차지하는 프랑스에서 이들은 밤새워 달려도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더해 고속도로 민영화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톨게이트 비용이 25%나 인상된 것도 적자 운행을 한층 부추기는 요인이다.

현재 프랑스에는 3만6천개의 운송 회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고유가로 큰 타격을 입어 이미 700여개의 소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회사들도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에서 고유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운전사들의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6월 5일 도미니크 뷔스로 교통부 장관은 석유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몇 가지 제안을 했지만, 운전사들이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새로운 파업이 일어나자 정부는 ▲ 운송회사가 국가에 납부해야 할 제반 비용의 분할 납부 ▲ 유류세 조기 환급(이를 위해 정부에서 감당해야 할 비용은 1억 유로) ▲ 운송비 인상 방안을 정부에서 국회에 제안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뷔스로 교통부 장관은 이러한 방안을 들고 19일 운수노동자 대표단을 만날 계획이다. 그러나 이날 만남에서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운송업자들은 25일 다시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한편 유가 폭등으로 특정 정유사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마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대 석유 회사인 토탈은 지난 12일 저소득층에게 1억2백만 유로를 지불할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도미니크 파이예 대변인은 "정부 개입 없이 토탈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사항이니만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태그:#기름 값, #화물파업, #고유가, #바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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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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