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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100만인 촛불 집회 및 대행진은 6·10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가 깊어 보였다. 21년 전 이한열 열사의 노제가 재현됐고, 80년대 6월 민주항쟁에 불렸던 <아침이슬>, <광야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아무거리낌 없이 불렸다.

 

무대 위에는 ‘이명박 심판’과 ‘전면 재협상’이라고 적힌 애드벌룬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마이뉴스>의 인터넷 생방송이, 시위현장에 설치한 대형화면을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반대편 조선일보 쪽에는 대운하 반대 대형 걸개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스님과 수녀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이날 이순신 동상을 앞에 두고 '명박산성'이라고 일컬어진 컨테이너 박스가 청와대 진입로를 굳게 막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도 계속해 촛불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과 수도권에서 50~60만 명의 참여를 확정짓게 된 것이다. 21년 전 6·10 민주항쟁 이래 최대의 인파가 모였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남대문까지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북새통이었다.

 

80년대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멤버였던 가수 안치환은 <광양에서>를, 양희은은 <아침이슬>을 불렀다. 특히 안치환이 최신 작곡한 ‘유언’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꼽힌 광우병 수입쇠고기는 물론, 의료 민영화, 대운화 등에 대한 심각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시위에 어느 시위자가 적어 놓은 글귀를 그대로 곡으로 옮겼다고 밝힌 바 있다. 짧은 가사지만 촛불 참여자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듯했다.

 

“내가 광우병 걸려 병원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 못 받고, 그냥 죽을 때에 땅도 없고 돈도 없어, 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 다오.”

 

빠른 템포로 두번, 느린 템포로 한번을 되돌려 부른 ‘유언’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깊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안치환이 공연을 하기 직전 발언을 요청하려 왔다가 촛불시위 참여자들에 저지당해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시위대에 둘러싸여 간신히 빠져 나간 정운천 농림부 장관. 기자들의 카메라와 시위대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 모르는 정 장관. ‘매국노’라 부르짖는 시위대들에게 한마디도 말도 못하고, 사복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광화문의 한 좁은 골목길로 빠져나간 그의 뒷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안치환과 양희은의 공연이 한창일 무렵, 광화문 동화면세점과 조선일보 사이에서 ‘재협상을 실시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눈에 띄었다. 송영길 의원, 박영선 의원, 조정식 의원 등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나와 ‘쇠고기 재협상 실현과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청원 국민서명운동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송영길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서명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때 무대에서는 한 여학생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촛불집회가 한 달이 넘어가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집회가 끝나면 쓰레기 분리 수거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동남아에 조미료 수출을 많이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 위험 있는 쇠고기가 들어 온다면, 그들도 우리 조미료를 먹지 않을 것이다. 재협상을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일산에서 온 주부의 발언도 이어졌다.

 

“식탁을 책임지는 두 아이의 엄마로 보기에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나왔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그런 정책을 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이를 키우고 먹거리를 챙기는 어머니들이 나서지 않게 도와 달라.”

 

이어 이한열 열사의 노제(영정)가 무대로 향한다. 사회자는 “이명박 독재정권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면서 “내각과 청와대 수석 몇 명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민생명과 건강, 검역주권을 위해 즉시 쇠고기 전면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재협상을 실시하라” “이명박을 심판한다” “국민들이 승리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하자” 등의 구호가 이어졌다.

 

영화배우 문소리씨도 무대에 나왔다.

 

"3~4개월 외국에 나가 인터넷과 기사를 통해 촛불시위를 보고 있었다. FTA 때문에 영화인들도 어려운 현실이다. 평화적이고 축제처럼 함께 하자. 힘내자. 아름다운 국민이 자랑스럽다.“

 

이어 ”열사정신 이어받아 민주주의 지켜내자“란 구호가 터져나왔다.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민주화 운동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 옥바라지를 해준 민가협 회원 등이 무대에 나왔다. 대표로 이한열 열사 모친의 발언이 이어졌다.

 

”전두환 정권에 피격된 한열이가 마지막 유언으로 어머니를 찾을 줄 알았는데, '시청에 가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 말을 한 지 21년 후 지금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천천히 촛불처럼 사라져야 한다.“

 

고 박종철 열사 부친이 말을 이어간다.

 

“21년 전 6·10항쟁은 학생, 노동자, 서민, 할아버지 등이 거리로 나와 참여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bbk 비롯한 여러 사건의 사기꾼으로 낙인찍었다. 미친 소고기 어린애한테 먹을 작정을 접어야 한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면서 전주에서 분신해 9일 사망한 고 이병렬 유가족 중 조카가 나와 “삼촌에게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면서 “삼촌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라고 울먹였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로 스타가 된 강기갑 의원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우리 모두가 확신하고 있다. 21년 전 국민항쟁의 역사를 우리가 재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경제 살려달라고 밀어줬는데 소수재벌 경제정책만을 하고 있다. 사람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건강주권도 온국민의 염원인 농민의 생명까지도 모두 6개월 남은 부시에 조공으로 받쳐버렸다. 대운하, 물 등도 돈놀이를 획책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이 용납해서는 안 된다.”

 

촛불집회 주역인 한 소녀와 21년 전 민주항쟁 주역인 한 선생님이 함께 국민명령권을 발동했다.

 

“정부는 오는 6월 20일까지 쇠고기 협상 무효화하고 전면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만약 주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면 퇴진 등 국민항쟁 투쟁도 불사하겠다.”

 

곧바로 밤 9시경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안국동 방향과 서대문 방향 쪽을 향해 거리촛불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협상무효’, ‘이명박 퇴진’ 등 구호와 함성, 노래를 부르면서 거리행진에 나섰다.

 

이날 경찰은 갑호 비상 대응체제에 들어가 221개 중대 2만 여 명을 광화문, 서대문, 안국동 주변에 배치했다. 가족, 연인, 부부, 스님, 수녀, 넥타이 부대, 청장년부터 노인까지 함께 한 촛불거리평화행진은 우려했던 경찰과의 큰 불상사는 없었다.

 

이날 오후 2시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등 보수단체들 5000여 명이 서울광장에서 ‘법질서 수호 및 한미 FTA비준 촉구 국민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촛불시위자들과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태그:#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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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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