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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서 절대로 놓치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은 인간의 먹이가 되는 소를 비롯한 가축들의 생명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의 저자 존 라빈슨이나, <육식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 그리고 최근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라는 책을 낸 하워드 리먼 같은 선지자들이 이미 고발하였다시피, 인간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무수한 중생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우병에 걸릴 만큼 고통스러운 소 사육, 조류 독감에 걸리면 수십 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 처분 당합니다. 또 언제 돼지 콜레라가 급습하여 돼지들이 떼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참혹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식탐을 바탕으로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잘못된 영양학적 신화가 굳게 자리 잡음으로 해서 발생한 것이며, 이는 곧 끊임없는 아비규환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어찌 먼 나라, 먼 세상의 일이겠습니까? 바로 내 식탁 위에서 하루 세 끼 벌어지는 반성 없는 음식 문화와 고기 먹는 것을 당연시하는 회식 문화로 나와 내 가족, 내 이웃 등 가장 가까운 인연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업(共業)의 인과(因果)인 것입니다.

 

광우병 논란 속에 들리는 말을 들어보면 기가 막히는 것이 30개월 이상이다, 미만이다 하는 월령입니다. 일본은 광우병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24개월 미만 소만 수입한다고 하니, 한국 정부에 비해 그 정신과 자세는 투철하다고 칭찬할 수는 있겠으나, 어떻게 수백 킬로그램에서 천 킬로그램을 넘어가는 무게로 최장 25년까지 살 수 있는 소의 수명을 그렇게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 나이는 연령이라 하면서, 소의 나이는 고작 월령으로 말하니 그 생명이 참으로 애절할 뿐입니다. 다른 생명의 수명을 단축시켜 내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하는 이런 행위들이 진리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볼 때 결코 온당하지 않으며, 내 수명이 단축되는 과보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짐승을 잡아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며, 얼마나 많은 생명을 빼앗아야 잘 살 수 있는 것입니까? 도리어 끊임없는 육식으로 인해 인간의 건강은 나빠지고 정신은 피폐해져 가고 있으며, 이와 함께 지구 환경의 건강도 점점 쇠약해지고 생태계는 더욱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동물의 역습’, ‘학대 받는 동물들의 반격’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간과 동물 사이를 상극의 관계로 만들어간 과정이요 결과입니다.

 

저는 이번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이를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해결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측면들도 살피고 대응하기 위해 촛불을 밝혀야 하지만, 아울러 더욱 본질적인 측면에서도 이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본질이 바로 생명의 문제입니다.

 

정치 경제적인 현상만 확대하여 보다보면 본질을 놓치게 되고, 그럴 경우 흔히 미봉책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또 다른 문제들이 얼마든지 불거져 나올 개연성이 높은 것이죠. 오늘 우리가 촛불을 밝히고 내딛는 걸음이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그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까지 나아가야만 촛불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하여 우리 인류가 육식을 넘어, 상생의 먹을거리 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데 동참하기를 기원합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수많은 재난과 질병도 육식을 극복하는 데서 많은 부분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채식을 온전히 실천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한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과 아주 가까운 동물을 먹을 때에는 그 생명의 가치를 생각하며 ‘존절히’ 해야 할 것이며, 매우 ‘귀한’ 섭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육식 소비가 생산을 건전하게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과 같은 영양 과잉의 시대에 ‘(힘을 쓰려면) 고기 먹어줘야 된다’는 비과학적인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여 우리의 삶과 시대를 그르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지나친 풍요를 절제하고, 결핍과 불편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선택이 곧 생명을 존중하고 생태 환경을 살리는 일이며, 고통과 전쟁의 불씨를 끄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참으로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역 주권이 무너지고, 굴욕적인 쇠고기 협정에다가, 성숙한 참여 의식과 민주 역량을 갖춘 국민들을 우습게 보고, 매우 후진적이고 독선적인 국가 운영을 강행하는 정권으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하는 이 엄혹한 현실 앞에서 ‘육식을 넘어 서자’고 호소하는 것이 자칫 한담(閑談)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광장에 모여 뜨겁게 달군 우리의 염원이 다시 우리들 삶속에서 구현될 때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 작은 실천으로써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인간이 먹기 위해 길렀다가 무참히 죽이는 생명들을 더욱 애민하게 생각하시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고기를 팔아 자본을 챙기려는 무자비(無慈悲)함을 인식하시어, 지혜로운 선택으로 육식 문화를 극복하는 데까지 생명의 촛불을 밝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이스크림 다국적기업인 ‘베스킨 라빈슨 31’의 상속자이면서도, 상속을 거부하고 육식 반대 운동에 나섰던 존 라빈슨은 말하기를, 육식을 하는 것은 고기와 함께 ‘그 동물의 불행’도 함께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채식이 1200평의 숲을 살립니다. 밝게 헤아려주십시오.


태그:#육식 너머,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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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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