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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에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음식쓰레기를 거의 만들지 않는 곳과 일반 가정을 비교하면서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음식쓰레기가 만들어지는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우리가 먹는 저녁밥은 얼마나 친환경적일까.
▲ 저녁밥 차리기 우리가 먹는 저녁밥은 얼마나 친환경적일까.
ⓒ 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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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살뜰 살림 잘하시는 우리 어머니, 대한민국 표준 주부를 자부하시는 우리 어머니께서 내가 내민 성적표 앞에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셨다. 도대체 무슨 성적표이길래? 바로 6일 오후 내내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내가 작성한 '친환경 밥상 성적표'이다.

"엄마, 깔끔하긴 하신데 친환경하고는 거리가 먼 거 같아요. 버리는 게 꽤 많아요."
"내가 진짜 무신경하기는 했네. 그래도 네가 한번 살림해봐라. 그게 잘 실천이 되나."

똑 부러지는 우리 어머니가 '생각보다 낮은 학점'을 받기까지,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루어진 저녁 준비부터 식사, 뒤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눈여겨보았다.

"오늘 메뉴는 새우된장찌개, 맛있겠지?"

새우된장찌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풋고추, 팽이버섯, 파, 미나리, 새우 등 다양한 식재료가 필요하다. 대부분 냉장고와 베란다에 이미 있는 재료들이어서 양파, 애호박, 무만 사기로 했다. 어머니는 항상 여유 있게 식재료를 사놓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셨다.

냉장고 앞에 따로 음식목록을 붙여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미 사놓고 또 사는 식재료도 있지 않을까? 냉동실을 열어보니 투명한 비닐로 묶여 있는 식재료 몇 가지만 깔끔히 놓여 있어 생각보다 과하게 구입하지는 않으신 듯했다.

오후 4시 30분, 어머니 팔짱을 끼고 시장으로 향했다. 우리 동네는 대전 서구 정림동으로 중소형 할인마트와 재래시장이 혼재된 곳이 근처에 많다. 어머니는 밖에 내다 놓고 파는 것보다 왠지 깨끗하고 저렴한 듯해서 할인마트를 애용하신단다. 그러나 오늘따라 할인마트 상품 상태가 좋지 않아 재래시장에서 구입했다.

장바구니 없이 시장에 가 비닐봉지를 받아 담아왔다.
▲ 비닐봉지에 담긴 식재료 장바구니 없이 시장에 가 비닐봉지를 받아 담아왔다.
ⓒ 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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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올 때부터 손이 좀 가볍다 싶더니, 물건을 넣을 장바구니나 상자를 챙겨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검은 비닐봉지에 넣은 물건을 받고 계산을 하셨다.

- 엄마, 왜 장바구니 안 갖고 다니세요?
"갖고 다녀야지 해도 자꾸 잊어버려. 이런 데는 봉지 돈 받고 파는 것도 아니니까."

- 그럼 우리집에는 비닐봉지 엄청 많겠네요?
"일주일에 20개 정도 생길 걸."

- 그거 다 어떻게 처리하세요?
"모여 놨다가 쓰레기도 담고 하지. 나중에는 페비닐봉투 수거함에 버려."

이날 사온 무, 양파, 애호박을 비롯해 갖가지 재료들이 어머니의 손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재탄생할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개수대에 물을 틀고 흙이 씻기도록 박박 문질러 닦으셨다. 개수대 구멍 뚜껑도 있지만 물이 잘 흐르도록 활짝 열고 수도꼭지를 제일 세게 틀었다.

깎여나간 무 껍데기가 개수대 바닥으로 떨어진다.
▲ 무 다듬는 중 깎여나간 무 껍데기가 개수대 바닥으로 떨어진다.
ⓒ 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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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 다가오자 무를 다듬으시는 어머니의 손이 바빠졌다. 칼날에 깎여나간 무 껍데기는 그대로 개수대 바닥에 떨어졌다. "버리는 부분 많다"고 한마디 했더니 "이런 것 넣으면 질겨서 씹는 데 불편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추 꼭지며, 버섯 끝 부분, 양파 껍질 등이 칼로 도려내어져 음식물쓰레기가 모인 봉지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찌개를 먹을 때 그런 부분들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새우 꼬리를 떼어내는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버리지 말고 국물 낼 때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의 대가리와 꼬리는 쓰지 않고 버린다.
▲ 새우 다듬기 새우의 대가리와 꼬리는 쓰지 않고 버린다.
ⓒ 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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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이렇게 잘라서 버리는 것들 딴 음식 만드는 데는 안 써요?
"다른 데에 써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 딴 집들은 어떻게 해요?
"먹을 것 풍족한데 그렇게까지 다들 안 하지. 좀 꼼꼼한 집 아니고는."

된장과 고춧가루가 얼큰히 들어간 국물에 다듬어 놓은 재료들이 퐁당퐁당 들어간다. 그런데 생각보다 양이 꽤 많다. 조금 큰 냄비에 넉넉하게 끓인 양을 보아하니 우리 네 식구가 한 번에 먹기는 무리이다. 어머니는 "타지에 있던 너희(언니와 나)가 오면 갑자기 사람이 많아져서 양 조절이 잘 안 돼"하고 겸연쩍게 웃으셨다. 결국 다음날 아침까지 먹고 질리면 버리기로 하셨다.

드디어 식탁에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어머니가 끊이신 시원한 새우된장찌개를 드디어 맛보았다. 이건 된장찌개를 넘어 거의 매운탕 수준의 환상적인 맛이다. 모두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음식 남기는 것을 절대 보고 넘기지 못하시는 우리 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의 식탁은 항상 깨끗하다.

그러나 결국 다 먹지 못한 새우된장찌개는 반쯤 비운 채로 주방으로 옮겨지고, 먹다 남은 반찬들은 뚜껑이 덮인 채 냉장고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다 먹은 그릇과 수저는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기다렸다.

거품이 많이 나는 설거지를 선호하는 우리 어머니
▲ 설거지 하는 중 거품이 많이 나는 설거지를 선호하는 우리 어머니
ⓒ 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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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무슨 세제를 이렇게 많이 써요?
"난 깔끔한 게 좋아. 이렇게 거품 팍팍 나야 속이 시원해."

- 헹구는 데도 물 받아쓰는 게 낫지 않아요?
"그래도 난 콸콸 틀어서 깨끗하게 닦는 게 좋아."

아버지가 설거지를 도와준다고 물로만 닦아 놓으면 세제로 다시 닦는 우리 어머니이시다. 청결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머니에게 세제는 필수품이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냉장고를 뒤지던 나는 수박을 발견하고 신이 나서 꺼내들었다. 사박사박 잘라내어 쟁반에 내어오니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이 참 맛있었다. 다 먹고 난 쟁반에는 하얀 수박 껍데기만 수북이 쌓였다. 수박이 덩치 값을 하느라 음식 쓰레기도 많이 내놓는 건지.

수박 껍데기까지 한 데 모으자 오늘 저녁 나온 음식쓰레기가 꽤 많았다. 봉투에 모은 음식쓰레기를 들고 언니와 함께 경비실 앞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우리집 한 곳에서도 이렇게 버려대는데 이 많은 아파트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고 있을까. 이 쓰레기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파트 단지 안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마련되어 있다.
▲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중 아파트 단지 안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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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요리하는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사진이나 찍고 있는 내 스스로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내가 우리 어머니를 무슨 자격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살림은 어머니의 일이라고 미뤄버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고만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저녁밥 친환경 지수'가 낮게 나왔다고 어머니를 민망하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먹는 밥 한 숟가락이 어떻게 나오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인식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민망해 해야 할 것 같다. 내일 장보러 갈 때는 내가 장바구니를 들고 엄마를 따라가고, 쌀뜨물 떠놓고 설거지도 자진해서 하고, 수박 껍데기로 장아찌 담그는 법도 찾아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태그:#음식물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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