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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교수는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 "잠 좀 자라" "일 좀 하지 말고 그 대신 문화생활을 즐겨라"라고 말했다. 얼핏 보면 대통령이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좀 쉬라는 훈계로 들을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이명박 대통령이 문사철(文史哲)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처럼 좀처럼 시문이나 경구를 인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친미 일변도의 인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동양고전의 문구를 인용해 이명박 정부의 100일을 논평해 보려고 한다. 이명박의 업무 스타일부터 외교정책, 언행 등을 주제로 연재한다.... 기자주

얼리 버드의 삼국지 판 '식소사번(食少事煩)'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모든 것을 도맡아서 챙기다가 병을 얻어 사마의와 대치중인 오장원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명박 과장님이라는 항간의 별명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모든 것을 도맡아서 챙기다가 병을 얻어 사마의와 대치중인 오장원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명박 과장님이라는 항간의 별명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솔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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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인수위가 내건 구호는 '노 홀리데이(No Holiday)'였다. 휴식 없이 일주일 내내 일만 하겠다는 포부였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대견히 생각했다. 급기야 국무회의를 1~2시간 앞서서 열겠다는 이른바 '얼리 버드(Early Bird)'에 가서는 공무원과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돼기 시작했다.

덮어 놓고 일 잘하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국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식소사번(食少事煩)'은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다'는 뜻으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제갈공명이 위나라 명장 사마의(사마중달)와 대치하고 있을 때 나온 구절이다.

하루는 사마의가 촉(蜀)의 사자에게 "공명은 하루 식사와 일처리를 어떻게 하시오?"하고 물었다. 사자는 "승상께선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을 처리하시며 식사는 아주 적게 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도 줄여가며 친히 매사를 살핀다는 제갈공명의 근황을 전해들은 위나라 군사 사마중달은 '식소사번이라. 아, 제갈공명이 곧 죽겠구나'하고 예측했다. 아니나다를까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은 죽었고, 사마중달은 살아남아 새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 중의 하나가 '이명박 과장님'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찰서를 직접 방문해 항의하는가 하면 전봇대 하나까지 관리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어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절하다.

"군자가 귀하게 여겨야 할 도가 셋 있으니, 몸을 움직임에는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하고, 얼굴빛을 바르게 함에는 믿음직하게 하고, 말을 함에는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난 것을 멀리해야 한다. 제사그릇을 챙기는 따위의 일은 하급 관리가 도맡을 일이다."
- <논어> '태백'

일모도원(日暮途遠)은 얼핏 보면 서둘러 일을 하려는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는 듯 보이지만,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성급히 성과를 내려는 자세를 경계한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은 얼핏 보면 서둘러 일을 하려는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는 듯 보이지만,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성급히 성과를 내려는 자세를 경계한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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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일모도원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 홀리데이', '얼리 버드'를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 말은 연원을 따지면 그렇지도 않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오자서'편을 살펴보자. 춘추시대 초나라의 귀족인 오자서는 간신의 참언에 놀아난 왕에 의해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 이후 오자서는 절치부심하여 이웃인 오나라의 재상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초왕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왕이 죽은 상태였다. 그러자 오자서는 왕의 무덤에서 왕의 시신을 300번이나 채찍을 가한 후에 그만두었다. 그의 벗 신포서가 이 일을 강하게 나무라자 오자서가 사과하며 한 말이 일모도원이다. 일이 급하게 돼 절차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변명이었는데, 오자서는 이런 급한 성정 때문에 자신이 세운 왕의 눈에 벗어나 처형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번거롭고 오래 걸리고 답답한 민주주의를 버리고 건설사 사장 시절 해왔던 제왕적이고 독단적인 업무 스타일로 성과를 앞당기려 하다가는 대통령직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방송사 지지율 조사에서 KBS(17.2), SBS(19.4), YTN(17.1)에서 모두 2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중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창비(2003)


태그:#이명박100일, #삼국지연의, #논어, #사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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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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