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렇지. 왜 안 나오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간만에 또 등장했다. 

 

오늘(3일) 아침 배달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에서 간만에 발견됐다. 잊혀질 만하면 나타나는 '하단 의견광고'다. 이번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상임의장 김진홍)과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공동명의다. 이념과 성향을 워낙 중히 생각하는 단체들이니만큼 곧 배달될 <문화일보>에도 십중팔구 실릴 것이다. 평소에 '조중동문'에 주로 광고를 하더니 이번에는 <한국일보>까지 광고 대상으로 삼은 것이 이채롭다.

 

그런데 볼 때마다 참 궁금하다. '잊혀질만 하면 심심찮게' 나타나는 이 광고. 1990년대 최명재 회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파스퇴르 광고를 연상시키는 이 광고. 도대체 극우보수진영에서 이 광고를 전담하는 사람은 누굴까.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광고 문구를 짜고 변호사의 자문을 구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만일 아직도 그러고 계시다면 좀 젊고 발랄한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심이 어떨까 싶다.

 

광고라는 게 사람 이목 잡아끌기 위해 아이디어를 있는대로 짜내고 또 생돈 부어대도 될까 말까 할 것인데, 특히 이 광고가 극우 보수진영 1년 활동 중 꽤 주요한 '사업'일 텐데 아직도 이렇게 투박한 검은색 먹컷에 각종 폰트의 글자로 가득찬 쌍팔년도식 광고를 세상에 보여 창피함을 무릅쓰는지 모르겠다.

 

극우보수 광고 또 등장, 여전히 '나라 걱정'

 

지난 달 "촛불문화제에 친북좌익이 조직적으로 개입됐고 결국 북한 통일강성대국 건설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뉴라이트전국연합. 촛불이 전국을 뒤덮고 남녀노소가 손에 손잡고 시청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 잠시 잠잠하더니 결국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또 '나라 넘어간다고' 걱정이다.

 

오늘 선보인 광고 내용은 그동안 반핵반김국민협의회나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등 보수우익단체들이 냈던 그 포맷 그대로다. 흰 종이에 무시무시한 '먹컷 제목'을 달고 그 아래 4개 정도 주장을 깨알 같은 글씨로 채운다. 어김없이 '친북' 들어가고 며칠 몇시에 서울시청으로 모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총성없는 적색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 '헌법과 국가를 배신하는 정권의 그 어떤 명령도 거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우선 섬뜩한 제목.

 

'아직 친북청산은 끝나지 않았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위대한 유권자들이 다시 궐기하자.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를 보여주자'

 

이번에는 6월 10일 오후 3시에 서울시청 광장에 모이란다.

 

보통 이런 류의 광고는 제목을 이렇게 세게 나간 후 어이없는 궤변으로 이어진다. 역시 마찬가지.

 

'거짓의 촛불에 항복하는 정부가 핵무기를 든 김정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나?'

 

김정일을 언급하긴 해야겠는데 '촛불집회는 김정일의 선동이고 지령이다'라고 하기에는 좀 과하다 싶으니 이런 식으로 둘러친다.

 

'거의 절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산 쇠고기?

 

다음 대목, 촛불 난동은 MBC의 거짓선동방송에서 비롯됐다는 구절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거의 절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물질로 왜곡 과장 날조한 선동방송이 학생들과 일부 시민까지 속이고 이들을 촛불 광란의 현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말이 웃기다. '거의 절대적'인 건 또 뭔가.

 

다음에는 배후론이다. 보통 이 대목에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촛불난동의 진짜 배후세력은 MBC, KBS, 그리고 친북반미 세력이다'

 

'불법 시위대의 목표는 국민의 건강이 아니고 정권 타도 체제 전복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여 우리의 삶의 터전을 허물려는 내부의 적이다'

 

정말 섬뜩하다. 애들이 볼까 무서울 정도다. 단골메뉴 전교조는 이번엔 빠졌나 싶었는데… 천만에.

 

"전교조에 영혼 빼앗긴 학생들 부모 일어나라"

 

'이젠 침묵하는 다수가 일어나야 한다'는 대목에서 '전교조에 영혼을 빼앗긴 학생들의 부모가 일어나야 한다'더니 '입밖에 없는 시위대에도 굴복하는 정부가 핵무기를 든 김정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겠나'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중학생이 이명박 타도를 외치면 그 학생의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어이없는 연좌제  들먹이더니 "대선 총선으로 친북좌익들을 몰아내었던 위대한 유권자들이 다시 궐기하자"는 선동으로 끝낸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란다. 과연 이들이 언급하는 진짜 싸움은 과연 뭘까.

 

조금 남은 공간 그냥 비워두지 않고 친절하게 MBC KBS 사장실과 보도국 전화번호도 적어두고 항의전화를 독려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 광고에 눈이 가는 카피 하나 괜찮은 거 있다.

 

'진정한 애국은 지갑과 손발로 표현된다'

 

야, 이 문장 괜찮다. 안 그래도 요즘 광화문에 가면 이런 '진정한 애국'을 수없이 많이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까지가 딱 좋았는데 그 밑에 '천원도 만원도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은 빼는 게 좋지 않았을까.

 

오늘도 모인다 '전교조에 영혼 빼앗긴 친북세력'들

 

그러나 어쩌랴. 오늘도 '전교조에 영혼을 빼앗긴 학생들'과 '친북세력' 수만 명이 촛불을 들고 시청앞으로 모일 것이다. 뉴라이트 전국연합과 국민행동본부 어르신들이 혀를 끌끌 차고 있는  그 시간에 우리 국민들은 믿기 힘든 80년대식 살풍경에 몸 내던져가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지지율 20%대로 똑 떨어진 이명박 대통령을 엄호하고 도와주려는 노력이야 가상하지만 이런 꽉막힌 생각으로, 불과 몇 달만에 갈팡질팡 좌표 잃고 있는 보수세력의 구원병 역할을 자처하기는 창피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 엄호하는 방식이 이 정도 선동 수준이라니 실망스럽다.

 

선진한국의 문을 열겠다며, 새로운 보수시대를 열겠다며 선봉장을 자처하고 나섰던 뉴라이트전국연합 이름이 이런 촌스런 먹컷광고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참 안타깝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면서 '장로 대통령 만들기'의 산파역할을 했던 김진홍 목사는 왜 이런 광고에 이름 석자 박으면서 품격 계속 떨어뜨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보수의 현주소가 딱 이 먹컷광고다. 사극에 자주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참 '부실한 인사'들이다. 시대의 대의와 싸우려 들지 말고 그 시간에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보수의 새로운 씨앗을 뿌릴 생각을 하는 것이 어떨까. 청와대까지 국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이 시기에 한가하게 친북 타령이나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끝으로 한마디 조언하자면, 보기 싫더라도 <경향신문> 1면에 오늘 실린 의견 광고 좀 참고하라. 주장하는 내용을 떠나 얼마나 깔끔하고 눈에 쏙 들어오는가. 이런게 광고다. 같은 크기, 같은 값이면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만한 광고를 하자,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보수신문이라도 이런 광고는 싣지 말자. 아니면 '좀 고쳐오라'고 조언이라도 해주자. 여러 논설위원들이 밤늦게 심혈을 기울여 쓴 사설 밑에 고작 이런 광고라니. 신문 격 팍 떨어진다.

 


태그:#촛불문화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의견광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