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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럭 오바마 미상원의원이 지난 1월 민주당 경선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배럭 오바마 미상원의원이 지난 1월 민주당 경선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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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오바마 상원의원의 발언을 놓고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얼마나 협상이 잘 되었으면 오바마가 한미FTA에 반대하겠는가, 그러니 빨리 한미FTA에 비준동의하자'고 말한다. 가뜩이나 쇠고기 문제로 열 받은 국민에게 여권이 간만에 재미난 유머를 선물해 주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 여당으로서는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볼 성싶다. <경향신문>이 얼마 전 보도한 올 1월 대통령직 인수위에 대한 농림부 업무보고 자료에서도 나와 있듯이, 한미FTA 비준을 위한 미 의회 선물로 미국이 요구한 모든 것을 다 받아주었는데, 막상 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이걸로 안 된다 하지 않는가.

그것도 힐러리 클린턴 등 9인의 상원의원이 한미FTA를 강력히 성토하고 난 직후, 오바마 의원까지 나서 한미FTA를 '심각한 결함'이 있는 협정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 방미에 맞추어 쇠고기를 진상한 우리 측의 체면은 어떻게 되는가.

방미 맞춰 쇠고기 넘겨준 이명박 대통령, 오바마와 힐러리로부터 되레 퇴짜

오바마가 차기 대권후보로 강력히 부상하면서 그의 통상정책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와 관련 오바마캠프에서는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미국 내 각주별로 조직된 '공정무역연합(Fair Trade Coalition)' 측의 공개질의에 자신의 통상정책구상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위스콘신주 공정무역연합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나는 미 노동자들을 위하지 않는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무역협정에 대한 당신들의 개혁요구와 좌절을 이해합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투자자들에게는 광범위한 권리를 제공하는 반면 노동권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에 관련해서는 단지 립서비스만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한국, 파나마, 그리고 콜럼비아FTA처럼 공정무역 원칙에 미달한 기타 통상협정에 내가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오바마 측은 노동, 환경기준, 소비자 보호, 식품안전을 비롯해 특히 한미FTA에서도 격론을 야기한 외국투자자의 '투자자-정부제소권(ISD)'의 대폭 제한, 신속협상권(fast track)제의 개선, 일자리 해외유출 방지 등의 방향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한 기존 통상협정의 대대적 개정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10년이 지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미국 내의 비판적 여론과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여론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 오바마 의원이 한미FTA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4월 한미FTA가 타결되고 재협상 논란이 있을 즈음 오바마 의원은 자신의 대변인을 통해 "현재와 같은 형태로는" 한미FTA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미국산 자동차, 쇠고기, 그리고 쌀 산업에 미칠 협정의 영향과 노동환경 보호조치의 결여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당시까지 오바마는 한미FTA 그 자체보다는 그 '현재 형태'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한미FTA는 자동차, 쌀, 쇠고기 등에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 표명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2월 11일자 미 상원 의사록에서도 발견된다. 그 중 관련 구절을 보면 이러하다.

"나는 자동차, 쌀, 쇠고기 등 우리의 핵심산업과 농업부문, 그리고 노동, 환경기준의 보호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는 협정을 통해 한미 양국 간 무역투자 증대 방안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미FTA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부시에게 보낸 서한을 보자.

"다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한미FTA에 반대합니다. 특히 미국 각종 제조업수출품과 다수의 농업제품에 대한 효과적이며 집행 가능한 시장 접근을 확보함에 있어 한미FTA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실 오바마의 한미FTA 반대는 미 민주당의 현 지도부의 분위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 정부측이 쇠고기를 넘기면 되리라고 본 것이 얼마나 안이한지는 쇠고기 위생조건 합의 뒤에 나온 민주당지도부의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미 하원에서 FTA관련 심의를 주관하면서 디트로이트, 즉 미 자동차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샌더 레빈 미 하원 무역소위위원장은 "FTA와 관련된 문제는 쇠고기보다 항상 광범위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역시 이번 방미 기간에 이 대통령의 한미FTA 조기비준 협조요청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오히려 그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해당 협상가들조차 쇠고기와 자동차에 관련 의회의 우려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회에 이행법안을 제출하기 전에 두 가지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민주당 지도부 모두 쇠고기 다음엔 자동차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오바마는 쌀 문제를 제기해왔고, 힐러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한미FTA가 민주당이 장악한 미 의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쇠고기뿐만 아니라, 자동차, 쌀 모두가 이번 쇠고기 합의의 수준 곧 미국이 원하는 대로 100% 해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미FTA가 미 의회를 통과하기 위한 조건

작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작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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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경우를 보자. 한미FTA 협상 막바지인 작년 3월 민주당 측은 자동차 관련 '초당적 의회제안'을 미 무역대표부에 보내면서 이들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후 미 협상단은 우리 측에 7개의 요구를 추가로 제기하고 나섰다.

그 내용을 보자면 ① 한국 내 미국차 비중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뒤에 한국차에 대한 미국 내 수입관세(2.5%) 철폐 ② 자동차 관련 신속분쟁해결절차도입과 한국 측의 위반 시 관세철폐 취소 (스냅백 조항) ③ 환경, 기술관련 각종 표준현안을 해결 ④ 특소세, 자동차세, 지하철공채 등 세제 개편 ⑤ 지하철공채 회수(refund) 관련 확인서한 ⑥ 국내외 자동차 보험회사간 보험료 비차별 확인서한 ⑦ 자동차관련 표준의 무역제한요소 금지 명시 등.

매우 일방적이고 불평등하며 심지어 조세주권 침해적이기도 한 각종 요구는 결과적으로 협상 막바지에 ①번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수용되었다. '의회제안'의 핵심이기도 한 ①번 요구는 당시 미 무역대표부 협상대표의 말처럼 한국자동차의 미국 내 현지생산비율이 곧 70%에 달하게 된다고 할 때, 우리로서는 사실 큰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미국 측으로서도 별 손해 볼 일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관세 조기철폐가 대국민 홍보의 주력이라는 '정치적' 이유에서 당시 노무현 정부는 여기에 사실상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협상 이후 다른 모든 것을 다 내주다시피한 정부 측이 한미FTA가 잘된 협정이라고 우기는 바로 그 핵심 이유도 실익도 없는 자동차관세 2.5% 철폐에 있었다. 아무튼 미 의회가 말하는 자동차 재협상은 한국시장에서 미 자동차의 판매대수를 사실상 보장하라는 요구라고 보면 되겠다.

자동차 관세철폐와 더불어 당시 노무현 정부는 쌀과 관련해 '쌀은 지킨다'는 식의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한 바 있다. 2002년 미국 등과의 WTO DDA협상을 통해 2013년부터 쌀은 완전개방(관세화)하기로 되어 있는 조건에서 이를 '지켰다'고 말하는 것이다.

FTA 협상 개시 바로 몇 년 전 협상을 끝낸 쌀 문제를 한미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처음부터 배제하지 못한 협상 전략의 실패가 차라리 문제였다. 만약 민주당의 요구처럼 쌀 문제가 다시 거론될 경우 그 개방 시기를 앞당기거나 관세(개방 시 400%) 철폐 내지 축소가 거론될 것이고, 이 경우 한국농업이 어찌 되리라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현재 올 대선과 연방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나오고,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더욱 확고하게 장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한 표에 목을 매는 선거전을 앞두고 한미FTA가 미 민주당의 득표 전략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한미FTA에 대한 노조의 반대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측이 먼저 비준동의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미 민주당 의회가 서둘러 승인절차를 개시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한미 양국 비준동의와 예상되는 4가지 시나리오

한미 양국의 비준동의와 관련, 향후 예상되는 4가지 시나리오는 이렇다.

1) 공화당 대통령, 공화당 의회이다. 아마 이명박 정부로서는 가장 '행복한' 경우이겠지만 가능성은 아주 낮다.

2) 공화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이다. 현재 공화당 멕케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다. 지금 상황과 다를 바가 없는 경우로, 통상 문제를 놓고 공화당, 민주당 간의 헤게모니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3) 민주당 대통령, 공화당 의회이다. 개연성이 높아 보이지 않지만 이 경우 한미FTA와 관련 어떤 타협이 시도될 것이다.

4) 민주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 시나리오이다. 한미FTA로서는 최악이 아닐까 싶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를 완전히 내주고, 우리 측이 선 비준 동의하면 미 의회가 움직일 것이라는 아주 나이브한 시나리오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민주당의 요구는 단순히 쇠고기뿐만 아니라 자동차, 나아가 심지어 쌀까지 요구하고 있고, 한미FTA는 '이미' 미 국내 정치적 쟁점이 되어 버렸다.

17대 회기 내 국회비준동의를 서두르는 이유도, 한미FTA의 경우 신속처리 곧 90일 내 처리규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미 의회의 금번 회기가 9월 말까지이고 물리적으로 남은 시간은 6월, 7월, 9월(8월은 휴회)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미 의회의 신속처리규정이 법률이 아니라 의회 내 규칙(rule)에 불과해 전체 표결로 한미FTA에 대한 신속처리규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한미FTA는 미-콜롬비아 FTA 신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 경우 잘못된 정책판단으로 인해, 우리는 쇠고기, 스크린 쿼터 등 핵심 국익을 무상으로 내준 치명적인 외교실책을 자초한 것이 된다.

그나마 쇠고기 고시 및 국회비준동의를 미 대선 후로 연기할 경우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한미FTA의 운명은 바뀐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가 쇠고기 고시, 선 국회비준동의를 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위 1)번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2), 3), 4) 경우 모두 특히 현재 가장 유력시 되는 4)번 곧 민주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의 경우 자동차, 쌀 모두 재협상 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한미FTA는 10개 중 9개를 이미 협상 과정에서 내주고 남은 1개마저 내주어야 미 의회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이거라도 챙기려면 수입위생조건 고시 및 국회비준동의를 미 대선 후로 연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명박 정부는 당면한 국내 정치적 위기를 회피하고 불확실한 미국 내 상황에 대처할 대응력을 얻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해영 기자는 현재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태그:#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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