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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 오바마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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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오바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미FTA가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이 협상을 잘 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속한 비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FTA에 적극 찬성'이라는 공화당 후보 매케인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 논리에 따르면 '한국이 협상을 잘 못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 정부는 FTA에 소극적인 민주당이 집권하면 협정을 추진하고, 반대로 적극적인 공화당이 집권하면 협정을 포기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야 '잘 한 협상'이 될 테니까.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두 후보 모두 무역협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국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발언을 아무리 열심히 파헤쳐도 FTA의 유불리를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오바마는 자신의 주된 지지 계층인 서민들에게, 그리고 매케인은 기업과 기득권층에게 표를 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선거 운동이긴 하지만, 오바마와 매케인 중 누구 말이 사실에 가까울까? 두 사람 모두 옳다. FTA는 기업들에게는 유리하게, 서민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FTA로 인해 심각하게 충돌하게 되는 것은 '나라'가 아닌 '계층' 간의 이해관계다.

자유무역협정은 국가 간의 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하며, 여기서 정부 개입은 폐지해야 할 '장애물'이 된다. 양국 정부의 개입이 '장애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국가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은 당연하다. FTA가 다른 국제교역 형태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최근 영국의 유나이트 노조와 미국의 철강노조가 통합노조를 선언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은 국적을 넘어선 자본의 횡포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FTA, '국가'가 아닌 '계층' 간의 싸움

자유무역체제의 중요한 조건은 ▲ 기업의 권리와 자유 극대화 ▲ 정부 역할 최소화다. 정부는 기업과 국민들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했으나, 자유무역 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거나 폐기된다. 정부의 중재는 '간섭'으로 간주되며, 기업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 분쟁과 소송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부의 역할 축소는 서민층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서민들은 기업 앞에 피고용인과 소비자라는 약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TA 하에서 고용 문제는 '복지'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윤의 문제로 환원된다.

기업들은 최대한 저렴한 자원과 노동력을 찾아 나서며, 이 과정에서 저임금, 고용 불안, 노동 환경 악화는 피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민간 기업의 존재 목적은 '국익'이 아니라 '이윤'의 극대화다.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시설을 외국으로 옮기거나 외국에 투자하는 것은 '국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다만 각 나라에서 규제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되므로, 이 간섭을 없애자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고용 유연화,' '탈규제,' '민영화' 등 한국에서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귀결점이다.

기업의 매출 증가를 '국가 발전'으로 이해하는 이명박 정부가 FTA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와 유전자 조작 식품의 규제 철폐 등 국민 보건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FTA를 추진할 때, '국익'의 주체가 서민일 수는 없다. 'FTA한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정부 관리들의 말은 옳다. 그들에게는 서민보다 기업이 '나라'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개의 미국, 두 개의 한국

오바마와 매케인 가운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둘 가운데 누가 당선되든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 정부를 대단히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두 후보 모두 한국의 어떤 관료보다 영리하기 때문이다. 지지 계층은 다르지만, 두 후보는 FTA의 핵심인 계층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미국과 한국 중 어디가 유리하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는 한국 관리들과 달리. 하긴, 중학교 기초단어도 모르는 관리들에게 외교통상을 맡긴 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공화당의 매케인이 되면 FTA가 수월해질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위기에 처한 미국 제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가혹한 법적, 제도적 개선을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언제쯤 현실에 눈을 뜰 것인가?  

2006년 6월, 미국 의회에서 백악관까지(거리 1.5km이상) 삼보일배를 하며 나아간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원정시위대.
 2006년 6월, 미국 의회에서 백악관까지(거리 1.5km이상) 삼보일배를 하며 나아간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원정시위대.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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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워싱턴 DC에서 한국인들의 방미 FTA 반대 시위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취재 도중 지지 시위를 벌이는 미국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을 잡고 이렇게 물어 보았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협정 체결 후 미국의 수출 증가 폭이 한국보다 몇 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미국인인데 반대할 이유가 있습니까?"

여자는 당황하기는커녕, 웃음을 띤 채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미국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몇 배나 더 크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그다지 큰 모험이 아니니까요. 설사 미국이 전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해도 나라의 운명이 위협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운명이 걸린 도박이지요."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저는 미국에 이익이 되더라도 반대합니다. 미국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유층의 미국'이 있고, '서민의 미국'이 있습니다. FTA로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은 '나의 미국'이 아니라, '그들의 미국'입니다. 저는 이미 부자인 '그들의 미국'을 위해 '서민의 미국'이나 '서민의 한국'을 희생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멕시코, 캐나다, 미국에 고용 불안 가져온 자유무역협정

'우리나라' 또는 '국익'이라는 말은 계층 간에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기호다. 이 말은 '그들의 한국'과 '우리의 한국'이라는 분명한 차이를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이 말을 즐겨 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및 캐나다-미국 자유무역협정이 멕시코와 캐나다의 경제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경제 발전'이 '투자자의 이익 증대'를 말한다면 이 말은 옳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은 크게 악화되었다. 실업률이 높아지거나 정규직이 축소되었으며, 실질 소득은 줄었다. 업무 환경이 크게 악화된 것은 물론, 고용 불안 문제는 심화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서민들의 실업 및 고용 불안이 멕시코나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FTA가 '나라'가 아닌 '계층'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EPI)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7주년에 세 나라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을 일부 인용해 보자.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이후 캐나다, 멕시코, 미국의 정부 관리들은 연례 행사라도 치르듯 매년 한 목소리로 '협정은 완벽한 성공이었다'고 발표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세 나라에 모두 승리를 가져다 준 '횡재'로 홍보되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 대열에 가담해야 한다는 투로 말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에게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대성공이었을 것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자본을 투자하기를 원했던 세 나라의 투자 및 금융 관련자들에게는 말이다. (중략) 그러나 투자자들의 이익이 철저히 보호받은 것과는 달리, 서민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및 권리는 전혀 보호받지 못했으며, 복지를 위한 사회적 투자 역시 타격을 입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경제 체질 개선'을 자유무역협정의 전제로 내세웠으나, 미국의 생산 시설이 멕시코 국경 지역 일부로 이전한 것을 제외하고는, 멕시코 내수 시장이나 산업 발전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반면에 안정된 직업이나 정규직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저임금 노동이 대체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투자나 교류는 증가했지만, 정규직과 실질 임금은 줄었고, 양극화는 확대되었으며, 서민들의 삶을 보호하는 복지 투자는 감소했다.

'30만 개 일자리'? 구체적 수치, 빈곤한 근거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미국 쇠고기로 들끓고 있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발언 내용 대부분은 'FTA의 필요성'에 집중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경제의 70% 이상을 대외에 의존하고 통상 교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한미FTA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입니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늘고 국민 소득이 올라갑니다. 무엇보다 30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겨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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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구체적 수치를 인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7% 성장,' '4만 불 소득,' '주가 3000~5000'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3.5% 물가관리'와 '50개(이후 52개) 필수품 집중 관리'를 내세웠다. 대통령이 말하는 '30만개 일자리'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은 '믿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의 입에서 나온 수치 가운데 단 하나라도 실현된 것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 30만 개'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것인가?

미국의 경우, 북미자유무역협정 후 10년 만에 80만 개 가까이 일자리가 늘었다. 성공일까? 미국 정부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라진 일자리는 170만 개에 이른다. 결국 9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 미국-멕시코 연구소장인 웨인 코넬리어스(Wayne Cornelius)는 멕시코에 비하면 미국의 피해는 '약과'라고 말한다. 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 가운데 2/3 이상이 무역협정으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이익이 되었다'는 사람은 5퍼센트에 불과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후 멕시코, 캐나다, 미국에서는 모두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고용이 불안정해졌으며, 실질 임금은 줄었다. 협정이 발효된 이후 10년간 미국에서는 8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으나, 기존의 일자리는 170만 개가 줄었다. 그러나 멕시코의 피해에 비하면 미국은 '약과'라는 것이 전문가인 코넬리어스 교수의 지적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후 멕시코, 캐나다, 미국에서는 모두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고용이 불안정해졌으며, 실질 임금은 줄었다. 협정이 발효된 이후 10년간 미국에서는 8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으나, 기존의 일자리는 170만 개가 줄었다. 그러나 멕시코의 피해에 비하면 미국은 '약과'라는 것이 전문가인 코넬리어스 교수의 지적이다.
ⓒ E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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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기업 편에 서서 FTA를 추진하면서 긍정적인 '수출 효과(export effects)'만을 제시하고, 그보다 훨씬 크게 작용하는 부정적인 '수입 효과(import effects)'는 감추거나 축소한다. 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의 시장과 경제 구조를 미국 기업이 익숙한 자유주의 환경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경제 구조 개편은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기존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줄어드는 일자리와 고용의 질적 저하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도 정부를 믿고 싶다


대학에서 강의조교를 하던 시절, 인류학과 박사 과정 학생과 연구실을 같이 썼던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책상 앞 벽에는 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흔히 '비행접시'라 불리는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찍힌 사진이었고,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다.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

국민들의 마음을 이만큼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믿고 싶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믿어야 하는가. 정부가 FTA를 추진하면서 국민에게 했던 말은 모두 거짓이나 과장, 또는 판단 착오로 드러났다.

정부는 한국 영화 산업이 건실하다며, 'FTA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선뜻 내주었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끄떡없다'던 한국 영화계가 앞이 안 보이는 장기 침체로 돌아서는 데 몇 달이나 걸렸는가? 

한국 정부는 농산물 개방에 서명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 없다면 농업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식량 안보'를 우려하는 여론은 '식량무기화 가능성은 없다'며 간단히 무시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수입 농작물 안전 문제가 끊이지 않다가, 최근에는 세계적 식량 가격 폭등이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정권이 바뀐 후 정부 약속의 허구성은 더 빨리 드러나고 있다. '5000은 가야 정상'이라던 주가는 지난해 12월 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가 '특별 관리하겠다'는 물가일수록 더 올랐다. 미국 쇠고기 위생 조건 합의문은 '문구 수정 중'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더니, 문제가 발견되자 '영문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우리도 정부를 믿고 싶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믿어야 하는가. 근거가 빈곤한 수치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매번 국민을 배신한 정부의 약속을 믿어야 할까? 하다못해 비행접시를 주장하는 사람도 사진 한 장 정도는 내밀며 믿으라고 하지 않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권이 바뀌면 주가가 3000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권이 바뀌면 주가가 3000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 <머니투데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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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미FTA, #오바마, #나프타,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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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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