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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랑스러운 아들, 전형우 선생!

 

엊그제는 ‘스승의 날’이었지. 어렵사리 교사가 되어 처음 ‘스승의 날’을 맞은 네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으려니 싶다. 

 

너도 잘 알고 있다시피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1397년 4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아니냐.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을 학기 말인 2월로 옮기자는 말들이 번지고 있어 그  까닭을 알아보았더니, 글쎄 그것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오가는 돈 봉투나 선물 탓이라는구나. 세상에 이런 민망한 일이 있을 수 있나. 

 

일찍이 강소천 선생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라고 노래했으나 오늘 세상 사람들이 교사를 바라보는 눈길은 그 옛날 같지 않은가 보다.

 

촌지수수와 같은 비리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스승의 날’에 숫제 교문을 걸어 잠그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교사에게 건넬 선물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학부모들이 적잖다니 ‘스승의 날’에 마음이 편치 않기는 교사나 학부모가 매한가지인가 싶다.

 

사람들은 ‘오늘날 스승다운 스승이 어디 있느냐’며 교단을 향해 눈을 흘기기도 한다만, 교사를 향한 세상의 이 같은 불신을 어찌 불평불만을 일삼는 사람들의 공연한 트집이라고만 할 수 있겠느냐.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가르치는 일에 온 마음과 뜻을 다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고 많다는 것을…

 

이는 이제 막 교단에 선 신출내기 교사인 내 아들 전형우 선생에게 거는 아버지의 믿음이기도 하다.

    

아들아! 네가 어떻게 교사가 되었느냐? 좀 엄살을 떨어 ‘하늘의 벌 따기’ 같은 임용고시 합격을 위해 네가 기울인 공이 얼마였더냐?  그것을 생각하면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너는 삼가 마음을 다잡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여기서 문득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와 네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부터 화가를 꿈꿔왔던 너는 미술명문인 ㅎ대학을 원했고, 아들이 교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네가 교원양성 전문대학교인 한국교원대학교에 가 주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꿈이 선생님이기도 했던 너는 ‘화가와 선생님의 꿈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솔깃해 마침내 네 뜻을 꺾고 교원대 미술교육과를 택했었지.

 

네 어머니와 이 아버지는 네가 들어가기가 결코 만만찮은 교원대에 합격을 해준 것도 기특했고,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크게 받지 않고도 집 떠나 홀로 대학 4년을 충실하게 생활해준 것 또한 고맙게 여겼다. 

 

그런데 이미 알고는 있었다만, 대학을 졸업했다고 당장 교단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더구나. 네가 세 번의 도전 끝에야 가까스로 임용고시를 합격해 교사라는 레테르를 달게 되었으니까…

 

졸업한 그 해 멋모르고 덤벼들었던 첫 시험은 그렇다 치고, 1차 시험을 합격하고도 커트라인에서 0.2점이 모자라 그만 최종합격을 놓치고만 두 번째 시험은 참으로 아쉬움이 컸었지. 무난히 합격할 것으로 믿고 있었던 너의 상심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겠지만 네 어머니와 나 또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걱정이었던 것은 네가 깊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대여섯 차례나 응시를 하고도 합격을 못해 결국은 방향을 선회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말이 들리던 터라 그다지 강단이 세지 못한 네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좌절할까봐 조바심이 일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며칠 죽지 부러진 새처럼 풀이 죽어있던 너는 다행히도 툴툴 털고 일어서더구나. 쉽게 교사의 꿈을 접을 생각이 없었을 너로서는 그대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겠지.

 

그랬으면서도 곧바로 시험 준비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난해 6월까지 줄곧 아르바이트를 한 다음에야 모교인 교원대 주변에 원룸 하나를 얻어 7월부터 비로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너에게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능함에 가슴 아팠다. 

 

그렇게 공들인 세 번째의 도전 결과가 합격으로 이어졌고, 더구나 커트라인 187.36점을 훌쩍 뛰어넘는 197.73점으로 수석합격의 영광까지 거두었으니 아버지는 네가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가르치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가장 값진 미덕은 사랑

 

 

아들아! 아무려나 너는 이제 선생님이다. 전남 고흥군 녹동중학교의 미술선생님이다.

자, 그렇다면 너는 이제 어떤 선생님이 되려하느냐? 교사로서 너는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느냐?

 

아버지는 내 아들이 교사로서의 부름을 그저 밥벌이의 수단쯤으로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세상의 여러 숱한 직업들은 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만큼 거룩하고 신성한 일은 달리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일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교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말이 아이들의 가슴에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낼 수 있는가 하면, 처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 깜깜한 어둠을 뚫고 희망찬 내일을 향해 힘껏 내달릴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기도 한다.

 

이렇듯 교사의 말 한 마디, 교사의 작은 몸짓 하나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니 가르치는 일은 사뭇 조심스러우면서도 어찌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는 일이 아니겠느냐.

 

아버지는 가르치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가장 값진 미덕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랑이다. 다른 많은 자질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귀한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감히 가르치는 일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사랑이냐. 먼저는 교사라는 네 자신의 부름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네 스스로 네게 주어진 교사라는 부름을 사랑하지 않고는 너는 결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다. 날마다 교사로서의 보람을 맛보고 가르치는 일이 곧 네게 행복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교사라는 너의 임무를 뜨겁게 사랑하여라. 

 

오래 전, 어느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너희들 이 다음에 선생질은 절대로 하지마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세상에 선생질이라니!’ 아버지는 당장에라도 그 선생을 찾아가 혼찌검을 내주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눌렀었다.

 

‘선생질’이 뭐냐? 그 말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아니냐. 제 스스로를 그처럼 깎아내리는 교사를 어느 학생이 존경하고 따르겠느냐.

 

하기야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에 부대끼면서 갖은 잡무도 처리해야 하고, 거기다 안팎의 곱지 않은 눈길까지 감당하자면 당연히 푸념이 나올 법도 하겠지. 그렇다고 그리해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그 거룩한 사명에 ‘-질’이라는 천박한 말을 같다 붙여서도 아니 되지만, 교사가 아이들이 품어야 될 희망이어서는 안 된다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느냐.   

 

아들아! 너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네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 일을 한사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어라

 

 

네 사명에 대한 사랑 그 다음은 네게 맡겨진 너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다. 위에 너희 학교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사진 두 장을 올려보았다. 지난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제주도에서 가졌던 수학여행 사진이구나. 이 사진 속의 아이들이 모두 너의 사랑을 먹고 자랄 너의 제자들이다.

 

녹동중학교 2학년 2반 담임인 네게는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이 제자라는 이름으로 맡겨져 있다. 아니구나, 너희 학교에 미술교사라고는 오직 네 하나뿐이니 녹동중학교 414명 모든 아이들이 다 너의 가르침을 받는 너의 제자다.

 

그들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되, 또한 하나하나를 특별히 사랑하여라. 그냥 건성으로 사랑할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아낌없이 사랑하여라. 

 

어떤 아이에게는 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것이고, 또 다른 어떤 아이에게는 부드럽고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할 것이다. 마음이 메마르고 거친 아이도 있을 것이고,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다 다르듯이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 또한 하나하나 달라야 하리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들 하나하나에게는 저마다의 이름이 주어져 있다. 선생인 너는 네 제자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주어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중에서

 

꽃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라임에랴. ‘어이’나 ‘곱슬머리’, ‘가운데 둘째 줄 안경 낀 녀석’이 아닌, ‘경숙’ ‘민호’ ‘은진’ ‘동수’ 이렇게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어라. 그래야 아이들과 너는 비로소 스승과 제자라는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루게 된다.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되, 그 아이와 따뜻한 눈맞춤을 하는 것도 잊지 말아라. 서양의 교수법에 ‘아이 투 아이(Eye to Eye)교수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눈과 눈을 마주치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인 성 싶다.

 

그래, 맞다. 눈과 눈의 마주침이 없이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선생인 너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터이고, 아이 또한 너의 눈을 통해서 선생인 너의 속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선생님의 눈을 애써 피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인내하면서 그 아이와 눈을 맞추도록 애쓰거라. 바로 그 아이가 너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이다.  

 

나는 교육은 곧 한 어린 인격체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불을 지펴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옛말에 ‘취훼동시지(嘴喙同時之)’라는 말이 있다. ‘嘴’가 ‘부리 취’요, ‘喙’가 또한 ‘부리 훼’니 ‘취훼동시지’는 ‘부리와 부리가 맞부딪친다’는 뜻, 즉 두 마리 새의 입부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암탉이 알을 품은 지 18일 즈음이 되면 알 속의 생명이 밖으로 나오려고 그 연한 입부리로 껍질을 쪼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낌새를 알아챈 어미닭이 껍질이 깨지도록 알 밖에서 쪼아댄다. 이렇게 알 속과 알 밖에서 두 입부리가 함께 쪼아대기를 사흘쯤 하고나면 마침내 새 생명의 병아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일찍이 동양의 현자는 이것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다시 말해 교육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교육이란 생명과 생명, 인격과 인격,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라 하겠다. 아직 채 여물지 않은 한 여린 인격체가 그 같은 만남을 통해 차츰차츰 완전으로 성숙해 가는 것을 교육이라고 정의한 옛 사람의 지혜가 놀랍다. 

 

너의 사랑의 대상이 네 부름과 네 제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을 네게 맡긴 학부모들도 네가 사랑하고 섬겨야할 대상이고, 너보다 한참 앞선 선배 교사들도 네가 깊이 사랑하고 따라야 할 분들이다.

 

그리고 또 있다. 바로 네가 네 임무를 수행하는 땅인 전라도를 사랑하여라. 아버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네가 전남지역의 교사가 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영남과 호남 사이에는 여전히 지역감정이라는 벽이 두텁다. 마땅히 무너트려야할 그 벽을 허무는 일에 네가 한몫을 했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이다. 앞으로 네가 옮겨 다니게 될 전라남도의 산천을 두루 사랑하고 그곳의 먹거리들을 사랑하고 곳곳에서 만나게 될 전라도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 모두를 네 좋은 이웃으로 삼아라. 그리할 때 너의 삶이 날마다 행복하고 기쁨에 충만하리라.

 

아들아! 글이 많이 길어졌구나. 아버지는 글을 끝맺기 전에 네게 겸손을 당부하는 것을 빠트리지 않으려 한다.

 

겸손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덕목이다. 부디 자만하지 말고 늘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의 경륜과 지혜를 존중하여라. 섣불리 네 주장을 앞세우지 말고 선배님들의 훈계와 충고를 경청하여라.

 

내 자랑스러운 아들, 전형우 선생!

 

바라건대 아버지는 내 아들이 도종환 시인이 꿈꾸었던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중에서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이 되고,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아들 전형우 선생이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

 


태그:#전형우, #선생님, #미술교사, #녹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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