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인공이자 영화제목이기도 한 핑궈는 발마사지업소의 종업원으로 일한다.
▲ 주인공 핑궈(이하 영화 화면 캡쳐) 주인공이자 영화제목이기도 한 핑궈는 발마사지업소의 종업원으로 일한다.
ⓒ 베이징 로레알

관련사진보기



1천 위엔에 매춘을 하고, 4천 위엔에 자식의 혈액형을 바꾸고, 2만 위엔에 종업원을 강간하고, 10만 위엔에 아들을 사려고 한다.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원제는 苹果, '사과'라는 뜻으로 여주인공 이름)은 이렇게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도덕적 해이와 금전만능주의가 만연된 현대중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중국에 '엄마 빼고 다 가짜'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가짜 엄마도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발마사지업소의 사장역을 맡은 양가휘가 외치는, '난 대체 누구를 믿어야 되는 거야! 모두가 거짓이야!' 하는 이 말은 중국사회의 단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돈이 없어 교육의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농촌 출신의 많은 젊은이들은 무작정 도시로 흘러들어 간단한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그 돈을 모아 금의환향할 날을 꿈꾼다. 그러나 경제적 약자로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들에게 도시는 너무 비정하고 또 잔인하게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결국 그 도시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은 거대 도시 베이징에 온 안훼이성 출신의 발마사지업소 종업원 핑궈와 그녀와 동향으로 함께 일하는 사오메이 그리고 고층빌딩 유리창 청소부인 그녀의 남편 안쿤이 베이징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것들!

가난한 시골출신으로 베이징에서 와서 일하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
▲ 왼쪽부터 사오메이, 핑궈, 안쿤 가난한 시골출신으로 베이징에서 와서 일하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
ⓒ 베이징 로레알

관련사진보기



젊고 예쁘고 일 잘하는 핑궈는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 발마사지업소에서 일을 한다. 어느 날 동향인 사오메이가 손님과의 분쟁으로 업소에서 쫓겨나자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고등학생과 매춘을 즐기는 사장방에 잘못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핑궈는 사장에게 강간을 당하는데 마침 빌딩 유리창을 닦던 남편이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이것을 빌미로 남편은 사장에게 2만위엔을 요구한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행복했던 핑궈와 안쿤부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점점 돈의 노예로 변모해간다. 안쿤은 자신의 정신적 피해 보상을 사장 부인과의 간통으로 해결하고 핑궈가 임신한 사실을 이용해 사장의 아이라고 주장하며 10만위엔을 더 요구한다.

아이가 없던 사장 부부는 결국 핑궈를 강간한 것에 대한 피해보상금과 핑궈가 낳을 아이가 자신의 아이일 경우 그 아이를 입양하는 조건으로 12만위엔을 지불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사장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를 아이를 임신한 핑궈를 알뜰살뜰 챙기고 사장 부인은 젊은 핑궈의 남편 안쿤과 정을 통한다.

중국어에서 '녹색 모자를 쓰다(戴綠帽子)'는 아내가 바람피우는 사실을 모르는 남편을 이르는 말이다. 결국 두 남편은 서로에게 녹색 모자를 씌우고, 물질이 삶을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돈과 아이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은 서로를 더욱 불행한 모습으로 일그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빈부격차로 심화된 도덕적 해이와 금전만능주의에 주목!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사장에게 건네주고 받은 돈 12만위엔을 들고 남편 안쿤은 내면적 갈등과 고민에 쌓여 있다.
▲ 안쿤이 아이들 입양하고 받은 돈 12만위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사장에게 건네주고 받은 돈 12만위엔을 들고 남편 안쿤은 내면적 갈등과 고민에 쌓여 있다.
ⓒ 베이징 로레알

관련사진보기



젊고 가난하던 핑궈부부와 늙고 돈 많은 사장부부는 그들의 엄청난 빈부 격차를 '아이'와 '돈'를 매개로 한 거래관계로 메우며 기형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도덕적 해이와 빈부격차가 어우러져 빚어지는 성적 문란함을 영화는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핑궈의 혈액형은 O형, 남편은 A형, 사장은 B형인데 핑궈가 낳은 아이의 혈액형은 A형이다. 사장의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 안쿤은 의사를 돈으로 매수하여 아들의 혈액형을 B형으로 바꾸고 아들을 입양시킨 뒤 12만위엔을 받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내는 유모로 사장집에서 지내며 점점 사장과 가까워지고 안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내와 자식을 팔아서 번 '12만위엔의 돈' 밖에 없다. 그에게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 대한 부정(父情)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은 자본과 권력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락하고 또 인간성은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를 관객들에게 차근차근 보여주는 듯하다. 주택지인 아파트단지 지하와 1, 2층에서까지 성업 중인 중국 발마사지업소에서는 지금도 핑궈와 같이 젊은 여성들이 발마사지에 한창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의 웃음과 몸을 파는, 심지어 자신의 아이와 가족까지도 파는 수많은 핑궈들이 존재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인생'이라는 도박판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보다 훨씬 더 위험한 처지에 내몰리고 애정과 윤리적 관계보다 경제적 이익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인 현실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지만 중국정부는 2년간 제작금지 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있다.
▲ 사장이 모는 벤츠가 톈안먼 앞을 지나는 모습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인 현실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지만 중국정부는 2년간 제작금지 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있다.
ⓒ 베이징 로레알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중국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다.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은 중국의 시대적 현실을 능욕하고 부정적이며 모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와 전반부 15분 정도의 노골적인 성묘사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하고 인터넷에 배포했다는 죄목으로 제작사와 여성감독인 리위(李玉)가 중국정부로부터 2년간 제작 금지의 징계를 받았다.

현실을 좇아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려는 거울은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개선하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그 거울을 깨뜨리면 된다는 '어리석음의 우'를 중국 정부는 언제까지 반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로스트 인 베이징, #핑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