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팔순을 바라보시는 우리 엄마는 무학이시라 간신히 당신 이름 정도나 적을 줄 아시는 분이다. 그런데 어찌나 박학다식하신지 웬만한 젊은이들 뺨치는 시사정보량을 갖고 있고 더 진도가 나가면 아예 논평까지 설파하시는 정도다.

 

까막눈이니 신문을 읽을 수는 없는 것이고, 이것이 다 타고난 기억력 덕분으로 낮이고 밤이고 TV 뉴스란 뉴스는 빼놓지 않고 보시는 열렬한 뉴스 시청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중에서도 우리 엄마의 관심사는 단연 사건사고 분야다.

 

부녀자들 납치 살인사고 뉴스를 보시면 다 늙은 딸년 귀가시간까지 잔소리를 하시고,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의 성폭행 사고가 도배를 하면 사남매 슬하 손자 걱정 때문에 집집마다 전화를 돌리며 걱정 반, 훈계 반 20~30분 통화는 보통이다. 그래서 '식자우환'이라고 너무 아는 게 많으신 엄마 잔소리를 수시로 듣는 우리들 애로사항도 보통이 아니다.

 

엄마가 드디어 화가 나셨다

 

그런 우리 엄마가 드디어 화가 나셨다. 요즘 뉴스를 도배하는 미국산 수입 소고기 파동을 보시고 나서다. 아직도 살림에선 현역주부라 먹을거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민감한 분이신데 사람이 먹는 소고기를 수입하는데 '미친 소'가 섞여있을지도 모르는 미국산을 허락하다니.

 

"이것들이 국민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하고 단단히 역정이 나신 것이다. 어제 하루 종일 정부 관계자가 우르르 나서 온갖 학설과 통계를 들이대며 '수입 소고기 안전'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을 샅샅이 경청을 하시더니 옆에 앉은 내가 마치 정부관리라도 되듯 내 얼굴을 마주 보며 무작정 화를 내시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뭐 '미친 소'를 먹어도 사람한테 옮기질 않는다고? 그렇게 괜찮으면 어디 제 새끼들한테 미리 먹여 봐. 이것들이 백성을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지, 텔레비 보니까 병든 소들이 버르적거리며 픽픽 쓰러지던데 이런 소고기가 괜찮다고 지껄이는 저 주둥아리 좀 봐. 사람들이 소고기 먹고 병이 들어봐야 그때서야 안 되겠다고 그럴 위인들일세그려."

 

참여정부 때 FTA 반대 투쟁을 벌이던 농민들이 고속도로나 도심을 점령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이던 것을 보시고는 "농사꾼들 때문에 나라 다 망하겠다"고 걱정을 하시던 엄마였다. 수시로 도심을 마비시키는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가 도에 지나치다고 생각하셨던지 왕년에 노조간부 출신이었던 당신 딸 앞에서도 드러내놓고 시위대를 비난하셨던 노인이셨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당신이 보기엔 소 값 하락 때문에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농민들이 한 둘이 아닌데 정부관리라는 것들이 자기 나라 농부들 생각 안 하고 남의 나라 소들을 그것도 미친 소를 수입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드셨던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로서 상인들을 믿을 수가 없으시다는 것이다.

 

"미친 소고기를 먹고 싶지 않아도 한우 소고기를 믿고 살 수가 있냐? 정육점이고 갈비집이고 틀림없는 한우 고기라고 비싸게 팔지만 텔레비 보니까 수입 소고기 끼워 넣고 한우라고 속여 파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라던데 어디 가서 진짜 한우 고기 구하나?"

 

"촛불 어디서 켜누? 하나라도 가서 보태야지"

 

저녁 늦게 직장에서 퇴근한 딸아이가 '빅뉴스'를 전해줬다. 지금 포털사이트에선 미국산 수입 소고기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거의 민란 수준에 달할 만큼 거센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서명에도 수십 만 명이 참여했고 곧이어 촛불집회가 열릴 것이란 소식을 전하니까 옆에서 듣고 계시던 엄마가 즉각 말문을 여셨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어딜 함부로 미친 소를 들여와. 그런데 그 촛불은 어디서 켜누? 가까운 데서 하면 내가 구경 갈 텐데 시청에서 하면 갈 수가 있나. 자경이는 직장 때문에 힘들 것이고 에미가 가면 안 되겠니? 하나라도 보태야지."

 

팔순 할머니까지 분노케 한 미국산 수입 소고기 파동.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이 정부의 권력남용이 민심이반을 얼마나 빨리 촉진시키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현주소다. 시작부터 이러할진데 앞으로는 오죽할까?

 

정신 못 차리고 지금도 '한반도 대운하'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침몰이 걱정스럽다. 대통령이 망가지는 게 걱정이 아니라 못난 대통령 때문에 국가가 '망쪼'드는 게 무섭다는 말이다. 하긴 대통령 수준이 유권자 수준이라는 데 누굴 탓하나? 그저 대통령 복이 지지리도 없는 민초들 신세가 한심하다는 말이다.   


태그:#미친 소 수입반대, #팔순할머니의 목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