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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6일 경기 포천 영북면의 한 한우농가를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경기 포천 영북면의 한 한우농가를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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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를) 강제 공급 받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 - 지난 4월21일, 수행기자단 조찬간담회(도쿄)에서의 이명박 대통령 발언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 지난 4월29일, 국회 통외통위에 참석한 유명환 외통부 장관의 발언

국민의 '건강권'은 기본권 중 하나이자 핵심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르면, 국민의 건강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국민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헌법 제 36조 제3항)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헌법에 나와있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산 수입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헌법이 정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의 행사이자 주권자의 행위이다.

미국 헌법엔 없고, 우리 헌법엔 있다

미국 헌법에는 경제질서조항이 없다. 우리 헌법은 경제질서조항이 있다.

미국은 헌법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의 민주화, 시장의 민주화를 위해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나라이다.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시장의 논리로만 접근하려는 극단적 시장주의자들을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헌법 제119조 2항이 있다. 과연 정부는 이런 헌법상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우리 헌법은 제124조에서 소비자보호운동을 보장한다. 헌법이 정한 그 목적은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소비자의 선택권, 소비자의 자기건강을 보호할 권리, 소비자가 쇠고기의 안전성 등을 비롯한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소비자보호운동을 벌일 수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역으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격에 앞서 안전성이다. 왜 보건당국은 대장균 조사를 이유로 음식점에 나가 시료를 채취하고 결과를 발표하는가? 왜 우리 모두는 가격이 싼 중국산 수입식품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분노하곤 하는가?

광우병 위험성이 없는 안전한 품질의 쇠고기를 먹기 위한 차원에서의 문제제기는 헌법에 근거한 기본권의 행사이고 국가는 당연히 여기에 반응할 의무가 있다. 과연 정부는 헌법상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책임성과 반응성이 결여된 정책결정 형태야말로 헌법상 대의제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정부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독단적 권력으로 해석하는 행태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적이요, 극단적 민주주의관이다. 

스위스 정부는 하고, 우리 정부는 안 한다

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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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비판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의회와 국민을 무시하면서 권한을 행사하고 여기에 단임제 대통령의 특성까지 결합되면서 국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지칭한다. 

반응성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여론보다는 역사성을 강조하게 되고, 여론의 동향에 무감각하거나 이를 아예 무시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이 그렇고, 한미FTA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 헌법의 위기를 보여준다.(필자,  2007. 6. 18 여의도통신) 

대한민국 제1조가 정한 '민주공화국'의 원리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우리 헌법의 핵심조항은 사실상 무시된다.  과연 정부는 헌법의 명령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잠시 스위스로 건너가보자. 스위스 헌법 제104조는 우리와 유사하게 농업관련 보호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가 "사회국가 원리를 수행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 달성을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다"고 결정한다. 

농업과 농민 보호에 있어서는 스위스 헌법과 우리 헌법이 실질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스위스는 GMO 관련 문제를 들어 스위스-미국 FTA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당연히 부결됐다. 그러자 스위스 정부는 미련 없이 협상을 중단했다. 우린 지금도 한미FTA야말로 우리의 살 길이라고 외치며, 한미FTA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헌법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도록 정했다. 국민의 건강권을 좀 더 확대해석한다면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회에서 동의 받아야 쇠고기 사올 수 있다

또 한 가지. 헌법 제107조 제2항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엔 대법원의 최종심사권을 인정한다.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의 고시' 형태로 공포되어 실시됐다. 

한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18일 합의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역시 농림수산식품부공고 제2008-45호를 통해 지난 22일 입법예고되었다. 하지만 이 고시는 단순한 고시가 아니라 국민의 실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처분적 성격'을 갖는다. 

사실상의 공권력의 행사로 국민의 실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대법원의 심사대상이 된다. 고시가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식품안전법제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대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법률적 논리를 확장하자면 단순히 한미 행정부 간의 '합의' 형식으로 진행해왔던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이번 기회에 철저히 뜯어고쳐놓자는 것이다. 국가 대 국가 간의 약속이 조약이다. 단지 우리 고시 개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협상과 그에 따른 고시의 개정문제는 실질적 조약의 변경에 해당한다. 그것도 국민의 건강권과 관련된 중요한 조약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에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문서의 형태로 조약으로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조약심사권을 행사하고 그런 다음 동의여부를 표결에 붙여야 한다. 과연 정부는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좀더 나아가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는 한미FTA의 실질적 전제조건이었다. 이 문제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시인한 바 있다(사실 필자는 더 이상 미국은 한미FTA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다.  왜냐하면 4대 선결과제-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출가스 강화 기준 철폐, 스크린 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 제도 철폐-를 통해 한국시장에서 얻을 만한 충분한 것들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제조건만 내주고 본 협정은 얻지 못하게 되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안 했더라면 괜찮은데 4대 선결조건은 내주고 본 협상은 얻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3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엄마가 뿔났다> 한·미 쇠고기 협상 철회를 촉구하는 엄마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 민동석 협상대표, 광우병 미국소를 밧줄로 묶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3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엄마가 뿔났다> 한·미 쇠고기 협상 철회를 촉구하는 엄마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 민동석 협상대표, 광우병 미국소를 밧줄로 묶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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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전문가들은 다 어디 갔나

2006년부터 필자는 일관되게 한미FTA협상 전체에 대한 국민투표를 주장해왔다. 캠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도 그렇다.  왜냐하면 한미FTA는 실질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 서울을 옮기는 것은 일종의 '해석개헌'이기 때문에 헌법개정절차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치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한미FTA나, 한미FTA의 전제조건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개정은 실질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논리대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민주권의 관점에서나 헌법개정의 관점에서나 당연한 논리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헌법과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이런 법리에 대해 검토해 본 적이 있을까?

지난 시절 참여정부의 이런저런 정책에 대해 이석연 현 법제처장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헌법이론가들은 끊임없이 위헌논쟁을 제기해왔다. 그 때 그 언필칭 '위헌전문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미 FTA 문제는 국민주권의 문제요, 민주주의의 문제요, 대한민국 헌법의 문제이다.  끊임없이 상충되고 이리저리 배척되는 대한민국 헌법과 한미 FTA의 갈등구조에 대해 왜 다들 애써 외면하는가? …오로지 통상이라는 지극히 좁은 단견만이 난무한다. 개방이냐, 쇄국이냐라는 이분법으로 강요한다.  국가보안법의 논리가 이 시점까지 살아남아 차용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필자의 앞선 글)


태그:#FTA, #미국산 쇠고기,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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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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