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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는 이른 새벽 5시가 좀 넘어 장터에 도착해 불을 피운다.
 대장장이는 이른 새벽 5시가 좀 넘어 장터에 도착해 불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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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시간에 잠이 깼지만, 밖은 여전히 어두워 사진찍기가 힘들 것 같았다. 다시 한 시간 더 잠을 청한 후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구례 장날이다. 3일과 8일.

만날 사람은 구례 장터에서 대장간을 하고 있는 한 사내다. 어제부터 호남지방은 황사가 심했다. 오늘 새벽 역시 옅은 안개 같은 황사가 읍내를 장악하고 있었다. 소문보다 바람은 쌀쌀했고 폴라티를 입기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장은 북적였는데 오늘 장은 한산할 듯 하다. 바람 불고 추운 날 장은 그렇더라. 장거리 군데군데 모닥불이 피워졌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인근 면에서 첫 버스가 움직여야 부지런한 노점상들이 당도할 것이다.

그는 가마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인기척을 냈고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는 계속 불 앞에서 쇠를 매만지고 있었고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해도 좋을 듯싶었고 그것은 자연스러웠다. 밖은 여전히 어두운 편이었고 오늘은 사진이 제법 난해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사진을 찍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피사체는 부족한 광량과 협로 같은 가마의 불꽃을 따라 일렁거렸다.

그…, 인터뷰 한번 합시다

이른 새벽부터 그의 마치질은 시작된다.
 이른 새벽부터 그의 마치질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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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좀 난감했다. 지난 장날이었다. 괜히 그의 대장간 앞에서 호미와 낫자루를 집었다 들었다 하다가 아무래도 이 방법이 가장 좋겠다 싶어 바로 내질렀다.

"그…, 인터뷰 한 번 합시다."

'예?'라는 짧은 반응에 이어 뭔가 말을 하려던 그가 말을 삼키는 듯 했다. 간명한 단어의 수락과 출근 시간만 확인한 것이 28일 장날이었다.

- 성함이?
"박경종입니다."

- 수가 어떻게 되슈?
"서른 넷입니다. 칠십 오년생."

- 와! 그럼 토끼띠네요. 저하고 같네요, 띠만…. 결혼은 하셨소?
" 예."

- 아이는?
"세살입니다. 아들."

- 결혼을 언제 하셨는데?
" 2004년인가…."

- 여튼 대략 바로 아이가 생긴 거군요. 몇 년 되지도 않은 분이 벌써 가물거리면 집에서 힘들 것인데…, 구례분이슈?"
"아니요. 순천 삽니다."

대장장이 박경종. 나는 항상 그의 나이가 가장 궁금했다. 대강의 현재 이력서가 나왔다. 불 앞이지만 새벽 바람이 쌀쌀한데 그는 반팔을 입고 있었다.

서울에서 구례로 옮겨온 후 첫 장을 본 날, 나는 장터에 대장간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장은 특정한 시기가 되면 항상 나에게 또 다른 경이로움을 안겨주곤 했지만, 대장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뉴월 염천에도 대장간이었다. 그리고 그 대장간을 지키고 있는 한 젊은 사내는 항상 나의 손가락을 셔터로 가져가게 만드는 바람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간혹 장날이면 채소전과 생선전보다 두 골목 아래에 있어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발걸음을 잘 하지 않는 잡물전을 기웃거렸다. 그 사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장거리에서 그의 망치질 소리는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따깡' 또는 '빠깡' 하고 울리는 그 망치질 소리는 심지어 청명한 느낌까지 선사했다.

'따깡, 빠깡'... 당신은 왜 대장장이가 되었나

일종의 작업대가 모루에 해당한다. 잠시 망치질을 멈추었다.
 일종의 작업대가 모루에 해당한다. 잠시 망치질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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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까?
"어릴 적부터 메질하고 놀았지요."

- 메질? 아, 그 망치질을 메질이라고 합니까?

"춘동이가 불 속에 발갛게 단 쇠를 집게로 집어내서 모루 위에 놓고 마치질을 하는데 마치질 한 번에 메질 한 번씩 쌍메가 번갈아 들었다." - 홍명희, <임꺽정>

'메질'. 듣고 보니 익숙한 표현이다. 대학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 동판 작업을 하기 위해 정으로 판을 두드릴 때에 우리도 메질이란 표현을 했다. 메질은 지루한 작업이었다.

- 그 메질을 정확하게는 언제부터 했소?
"중학교 때부터 그러고 놀았지요."

- 혹시 아버님이?
"예. 대장장이셨지요. 요 위 마을에서 대장간을 하셨지요."

그는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끄집어 내어 메질을 했다. 메질은 아주 힘차고 정교한 과정의 작업이었다. 달구어진 물체를 모루 위에서 쇠메로 삼중주 연주하는 것과 같은 리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왼손은 달구어진 괭이날을 앞뒤로 돌려가며 오른손의 쇠메로 장구를 때리듯 리듬감있게 내려치는데, 뒤에서 바라보면 그의 어깨 위에는 명백하게 가락이 놀고 있었다.

- 처음부터 이 일을 했습니까?
"그러지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밥벌이로 시작했으니 열아홉이었지요."

- 말리지 않으시던가요?
"처음에는 형들하고 같이 했습니다."

- 그럼 지금도 형제분들이 같은 일을 하십니까?
"아뇨. 형들은 다른 일을 하지요. 이 일 계속하기 힘듭니다."

그는 형제들이 대장장이가 되지 않은 것과 자신은 대장장이가 된 것을 똑같이 '당연한 일'로 인식하는 듯했다. 화로라고 해야하나 가마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대단한 열기다.

- 이건 뭡니까, 갈탄입니까?
"배탄입니다."

- 배탄요?
"그…, 이전에 왜 기차 맨 뒷 칸에 불 넣어서 가던…."

- 아, 그 석탄 때서 달리던 그 열차? 이게 센 모양이지요.
"예, 세기도 하고 오래 탑니다."

배탄. 돌아와서 검색보았다. 오래전부터 대장간에서는 그렇게 불렀던 모양인데 탄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아닌 듯 하다. '배탄(配炭)'이란 북한말인데 석탄을 때는 증기 기관차의 화실(火室)에 탄을 나누어 넣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증기기관차에서 사용하는 탄과 동일해서 그렇게 부른 듯 하다.

가마는 볏짚 넣은 황토와 벽들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든 것이다. 일년에 두 번 정도 보수한다. 워낙 고열이라 쇳물이 흘러내리고 황토와 벽돌까지 녹아내린다.

월급쟁이들 보다 속 편하다는 대장장이
 월급쟁이들 보다 속 편하다는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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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아버지의 사진을 품고 있는 대장장이

이른 아침이라 손님은 거의 없다. 손님이 없다고 그의 손까지 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쉴 새 없이 쇠를 두들겼다. 주로는 낫이다. 미리 만들어 두는 듯했다.

- 다른 직장도 다닌 적 없어요?
"광양에서 잠깐 직장을 다녔지요."

- 뭔 직장이었습니까?
"광양제철요."

또 쇠.

- 왜 그만뒀습니까?
"아이엠에프 때문이지요."

- 잘린 겁니까?
"아니요. 제가 관뒀습니다."

- 월급이 안 나왔습니까?
"50만원도 주고 55만 원도 주고 그럽디다. 버스 아니면 택시 타고 광양까지 출퇴근 해야는데 차비도 힘들더라구요. 3개월 수습하고 6개월 다녔는데 그래서는 힘들더라구요."

- 지금이 편해요?
"그렇지요. 월급쟁이들보다 속 편합니다. 이전에는 동력도 없었고 전부 손으로 작업했으니 이런 식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가 지갑을 열고 낡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하단이 찢겨 나간 아주 작은 사진이다.

- 혹시 아버님?
"예, 가운데 분입니다. 저렇게들 일을 배웠지요."

- 어느 무렵입니까?
"제가 태어나기 전입니다. 60년대 초반이나 될 겁니다."

대장장이 박경종은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함에도 이 사진을 새겨넣고 있었다. 대를 이은 천직이고 뭐고 그런 상투적인 표현보다는 그가 아버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았다.

날을 벼리는 과정은 여러번 반복되었다.
 날을 벼리는 과정은 여러번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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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손님들이 들어선다. 다시 그는 그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했다.

- 언제가 젤루 힘듭니까?
"아무래도 여름이 제일 힘들지요. 여기 간이가마보다 순천 철공소의 가마는 더 뜨겁습니다."

- 장사는 겨울이 제일 못하겠지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농한기고…."

- 장을 쉬는 경우는 없습니까?
"이전에는 한번씩 쉬었는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구요. 손님이 끊어집니다. 다음 장에 물건 찾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쉴 수가 없지요."

- 구례장이 아닌 날은 순천에서만 일 합니까? 다른 장에도 또 작업장이 있습니까?
"광양장에 하나 더 있습니다. 광양장 끝나고 순천에서 이틀 정도 일하고 다시 구례장으로 오고 그렇지요."

- 광양장이 대처니까 돈벌이가 더 좋지 않습니까?
"그러지요. 하지만 이곳을 쉴 수는 없습니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 그럼 도대체 언제 쉽니까, 일요일은 쉽니까?"
"쉬는 날 없습니다. 혼자 하니까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

손님 중 태반이 수리가 목적이다. 그는 군소리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그 일을 수행했다. 날을 벼리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지난 장에 수리를 맡겼던 노인들이 어김없이 오늘 장을 찾았다. 대부분은 흡족하게, 때로는 다시 수정할 대목을 요구하고 역시 다음 장에 다시 오기로 하고는 떠났다. 그 과정에서 이의 제기나 영수증같은 종이쪼가리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있고 노인들은 다음 장이 아니면 그다음 장에 읍내로 나오면 되는 것이다.

- 그냥 그렇게 주문하고 가면 다음에 꼭 옵니까?
"그러지요. 대부분은 다음 장에 와서 찾아갑니다."

옆에서 보아하니 괭이와 낫 수리는 상태에 따라 사천원도 받고 이천원도 받는다. 간단한 것은 천원 한 장이 건네지기도 했고 그냥 수리해 주기도 했다. 그는 항상 낮은 목소리였다.

"쇠도 근본이 다릅니다"

쇠도 근본이 다릅니다.
 쇠도 근본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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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과 담금질·메질을 당한 쇠들은 마지막으로 날을 벼리는 공정을 거쳤다. 기계로 벼리다가 손숫돌로 마감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물에 담그기도 하고 황토에 담그기도 했다. 물에 담그면 순간적으로 강해지지만 쉽게 금이 가는 모양이다. 마지막 담금질은 대부분 황토였다. 쉽게 식지 않는 쇳덩이를 기다리다 지친 영감들은 재촉했다.

- 도대체 몇 번이나 가는 겁니까?
"다섯 번 갈아야 합니다. 마지막은 숫돌에 갈아야합니다. 그래야 칼날이 오래갑니다."

- 좀 전에 버터같이 생긴 것을 날에 발랐는데 그게 뭡니까?
"그…, 청산가립니다. 칼날을 강하게 만듭니다."

- 위험한 놈이네요…. 뭐가 젤루 만들기 힘듭니까?
"칼이 힘듭니다.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메질하는 것이 힘듭니다. 지금은 쉽지만 처음에는 왜 그렇게 힘든지. 철 3톤 정도로 연습했는데 절반은 날렸습니다. 칼날만 2년 정도 했습니다."

- 다시 녹여 쓸 수 없습니까?
"칼날은 다시 사용하기 힘듭니다."

- 저 같은 문외한은 쇠라는 것이 불과 물로 다루어서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쇠도 근본이 다릅니다."

쇠도 근본이 다르다. 그런 것이군. 낫이 될 놈과 도끼가 될 놈은 태생적으로 정해진 것이었군.

- 뭐가 제일 많이 나갑니까?
"호미하고 낫·괭이지요. 광양은 바닷가라 갯벌에서 조개 캐는 고리 같은 놈이 많이 나갑니다. 요즘은 한옥 일하시는 분들이 맞춤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비슷하지요."

"사람들은 보기에 매끈한 것만 고릅니다."
 "사람들은 보기에 매끈한 것만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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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 인구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시골 대장장이의 미래는 그것과 연관이 많을 것이다.

- 앞으로도 이 일 계속 하실 겁니까?
"그렇지요. 이것 말고는…."

- 어두운 이야기지만 세상이 변해가는 모양이 점점 이런 대장간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갈 것은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러지요. 거의 제가(세대를 이야기하는 듯) 마지막이지 싶습니다."

- 인근에 몇 분이나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
"광양·순천·곡성·남원해서 대략 5~6분 계시지요. 대부분 노인들이지요."

- 그럼 일반 동네 철물점에서 팔고 있는 낫이나 호미는 그 분들이 만드시는 것인가요. 아니면 대형 공장이 있나요?
"90% 중국산입니다."

- 그것도 중국산입니까?
"철물점 공구는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충청도 쪽으로 큰 공장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중국으로 많이 건너갔습니다. 중국에서 인력 부려서 값싸게 만들어 옵니다. 중국산 호미가 700~800원 선에 넘어옵니다. 제가 만드는 호미가 4000원인데… 철물점에서 1500원 정도에 중국산이 나가면 제 것 수리비 정도지요. 가격 경쟁이 안 되지요."

- 농민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지요. 비싸다고 해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는데 아주 심하게 말을 하시는 어르신들한테는 간혹 이야기합니다. '어르신도 중국 농산물 때문에 피해를 입고 계시지 않느냐? 똑같은 거다. 이거 저 철물점 중국산 호미하고 같은 가격에 달라고 하시면 쇠값도 안 나옵니다' 그러지요. 제가 거의 마지막입니다. 뒤에 누가 하겠습니까. 80년대에 낫 수리하면 오백원 받았습니다. 지금은 2000원 정도 받습니다."

호미를 사러 온 아주머니가 고른 손잡이는 중국산 나무였다. 그는 자신이 간벌한 숲에서 직접 구해온 소나무 손잡이를 권했다. 그도 소나무를 구하기 힘들어 중국산 손잡이를 일부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기에 매끈한 것만 고릅니다."

"제가 거의 마지막입니다, 누가 하겠습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손으로 뭔가를 완성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가지나 남아 있을까.
 시작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손으로 뭔가를 완성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가지나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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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 시절에는 혼자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풍로가 생겼다. 두 명이면 일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동력기가 나오면서 대장장이는 혼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계화는 일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사람들을 일터에서 내 쫓기도 했다. 세 명이 둘러서서 메를 치던 시절은 이미 흘러갔다. 이제 큰 일은 기계가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손으로 뭔가를 완성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가지나 남아 있을까. 그는 여전히 폐차장에서 완충장치로 소용되었던 철을 구하고 있다. 그 이외의 고철은 양심을 가지고서는 사용할 수 없다. 기차 레일을 구한 날은 그가 아주 기분 좋은 날이다.

점심 무렵부터 노인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쌀쌀한 날씨 탓에 장터 커피 두 잔을 시켰다. 500원이었다. 커피를 시키고 돌아오니 한 노인이 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커피 아주머니는 내가 시킨 두 잔의 커피를 들고 왔다. 뜨거웠다.

그의 잔을 작업대 위에 올려 두었지만, 그는 마시지 않았다. 일을 한다고 그러려니 했는데 잠시 후 커피 아주머니가 커피 한 잔을 더 들고 왔다. 대장장이는 그 커피를 기다리고 있던 노인에게 권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그 노인은 새로이 벼린 괭이날을 신문지에 싸서 들고 갔다. 수리비는 4000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박.경.종이다.
 그의 이름은 박.경.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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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젊은 대장장이 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박경종이다. 나는 2008년 3월 3일 월요일 새벽 6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그가 일하는 중간 중간에 말을 붙였고 그는 대답했다. 말미에 내가 물었다.

- 작년에 제가 끌 하나 맞추었는데 혹시 기억해요?
"그럼요."

나는 내가 원했던 모양과 크기의 끌을 하나 가지고 있다. 다음 장날에는 묵혀 둔 나의 끌을 다시 벼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가 운영하는 www.jirisan.com 에서도 같은 내용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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