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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으로 가는 길

 

임실 이석용 의병장 취재는 빨리 끝났다. 이미 3년 전에 답사한 적이 있고 사전에 전화 연락으로 일정을 조율했기에 일찍 끝날 수 있었다. 나 혼자 취재를 다닐 때는 가능한 민폐를 끼치지 않고자 밥 때를 피하고 있다. 어디서나 한 끼 5,000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 기록에 보면 민폐를 끼치지 않은 의병장일수록 높이 평가했고, 그것이 바로 바른 의병정신이었다.

 

다음 인물은 임병찬 의병장이다. 여러 경로로 후손을 수소문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임 장군의 출생지인 군산시청으로, 군산문화원으로 연락하였으나 뚜렷한 유적도 없고, 모두 유족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였다. 국가보훈처 자료를 보니까 묘소가 정읍 산내리로 되어 있기에, 정읍 시청으로 연결하자 정읍 문화원 김희선 사무국장을 소개시켜 주었다. 서로 날짜를 맞춘 결과 2008년 3월 10일(월) 오전 10시 정읍문화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지도로 볼 때 임실과 정읍은 위도가 거의 같은 일직선 위에 있지만, 두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없어, 북쪽의 전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전주로 우회한다고 해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갑자기 한때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후배교사가 남편이 직장관계로 퇴직한 뒤 전주에서 산다면서 지나는 길이 있다면 꼭 들러 달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기억이 떠올라 수첩을 뒤졌다. 다행히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임실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전화번호를 누르자 반가운 음성이 나왔다. 그 후배교사는 마침 남편이 전주 한옥마을 최명희문학관장으로 있다고 하면서 오후 2시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임실에서 전주행 버스로 갈아타고서는 전주로 가면서 오래 전 전주비빔밥 원조집에서 맛있게 먹은  추억이 떠올랐다.

 

기왕이면 그 집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후배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내가 간다고 하였더니 꼭 점심을 같이 나누고 싶다면서 약속시간을 당기자고 했다는 것이다. 난 수락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남편은 내 대학 과 후배였다.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다"

 

임실을 출발한 전주 직행버스는 예상보다 빨리 전주에 이르렀다. 내가 기사에게 전주 한옥마을을 묻자, 곧장 한옥마을 들머리에서 내려주었다. 거기서 다시 택시로 가자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최명희문학관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작품 <혼불>에 당신 평생을 바친 작가 최명희. 그는 갔지만 그의 문학은, 그의 체취는, 오롯이 정갈하게 남아 있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작가 최명희가 남긴 이런 말들을 곱씹으면서, 1미터는 넘게 쌓아놓은  육필 원고지를 보고는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에 전율하고 경배하며 찬탄했다.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다'라는 말을 보고는 모국어가 천대받는 현실에 가슴 아팠다.

 

온 나라가 영어 열풍에 미치고 있다. 대통령조차도 외국에 나가 서툰 발음으로 영어로 '지껄'이고 있다. 그걸 나라 망신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기보다는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소갈머리없는 어린 백성들은 그걸 보고 더욱 영어에 춤추고 있다. 어느 외국 원수가 우리나라에 와서 국회나 기업인 앞에서 한국어로 연설한 적이 있는가.

 

잠시 후, 후배 내외의 따뜻한 환대와 맛깔스런 전주 음식을 맛본 뒤, 정읍으로 가면서 외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세추종자이거나 외세에 빌붙어 망국으로 치닫게 하는 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번 호남의병을 취재하면서 들추는 문헌에는 일본 군경보다 밀정이나 일진회원, 친일 매국노들이 더 악랄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왔다.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을 펼쳐보면 구한말 매관매직이 매우 성행하였다. 큰돈을 들여 벼슬을 산 관리들은 본전을 뽑고자 백성들에게 착취를 강요하여, 이를 참다못한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켜서 마침내 망국의 길로 치달았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더니, 이즈음 일어나는 일들이 100년 전과 비슷하다. 이런 망국 행위자들을 엄벌해야 할 일선 주무 장관조차도 준법정신이 보통사람 수준 이하다. 그런 이가 채찍을 휘두르면 소도 하품할 일이 아닌가. 누가 이 난국을 바로 잡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새 정읍에 이르렀다.

 

정읍에는 유서 깊은 내장사가 있다. 기왕이면 산사 부근에서 묵고자 내장산으로 향했다.

 


태그:#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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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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