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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그네가 사진기를 들여다 대도 마다않고 손자까지 불러세워 모델이 되어주시네요. 꾸벅~ 고맙습니다.
▲ 야야! 저 좀 봐라! 우리 찍는다! 낯선 나그네가 사진기를 들여다 대도 마다않고 손자까지 불러세워 모델이 되어주시네요. 꾸벅~ 고맙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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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저 좀 봐라 우리 찍는다!"
"아이고 어짜꼬, 우릴 찍을라꼬? 저 좀 봐봐라!"


할머니는 어린 손자한테 얼른 우리를 보라고 손짓하면서 외치셨어요. 어디를 가든지 사람 사진을 찍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더구나 '초상권' 때문에 낯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찍을 수도 없고, 또 찍어서도 안 되지요. 그런데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는 달랐어요. 산골마을 정겨운 풍경에 반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할머니가 도리어 손자까지 불러 세워서 손수 모델이 되어주시네요. 이런 고마울 데가….
 
청도군 이서면 수야4리 마을은 참으로 깊은 산골짜기였어요. 들머리에서 할머니 서너 분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산꼭대기에서 우르르 떼를 지어 내려오는 우리를 보고 매우 놀라는 눈치였어요.

수야리 마을에는 복사꽃이 한창 피었어요. 어르신 세 분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참 정겨워 보입니다.
▲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 수야리 마을에는 복사꽃이 한창 피었어요. 어르신 세 분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참 정겨워 보입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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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어데서 오능교?"
"구미에서 왔어요."
"에헤이~ 어데? 구미라꼬?"
"네."
"구미에서 저 산을 넘어 왔능교?"


구미에서 청도 땅까지, 그것도 깊은 산골짝에 폭 파묻힌 마을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요. 대구를 거쳐 경산 산전리 임도와 우록리 임도까지 콕 찍고는, 가파른 오르막길도 마다않고 산을 몇 개를 넘어왔답니다. 온통 진분홍빛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이 보이는데 드디어 청도 땅이었어요. 오늘(20일) 동호회(금오바이크)에서 '라이딩' 이름을 짓기를 '복사꽃 투어'라고 했는데, 저마다 멋진 풍경을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산에는 아직도 벚꽃이 피어있었어요. 따사로운 봄햇살을 맞으며 산길을 오르는 자전거
▲ 산을 넘어 가파른 오르막도 즐기며 산에는 아직도 벚꽃이 피어있었어요. 따사로운 봄햇살을 맞으며 산길을 오르는 자전거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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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우리를 보고 산을 몇 개 넘어서 예까지 왔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놀라워하셨어요. 깊은 산속에 살면서 우리처럼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넘어오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네요.

"어르신, 저 안에 옛집이 뭔가요?"
"아, 거기 정잔데…. 거 가믄 억수로 시원해요. 거 가서 좀 셨다 가여."
"아, 네. 그 안에도 뭐가 또 있는 것 같던데요?"
"아아~ 거는 재실이요."


산꼭대기에서 보니,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 안쪽에 아주 오래되어 뵈는 옛집이 두어 채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한테 물었더니, 매우 살갑게 얘기하시면서 우리보고 가서 좀 쉬었다가 가라고 하시네요.

정자가 매우 멋스럽지요? 연못 가운데에 떠있는 듯한 정자랍니다.
▲ 수야4리(구일리) 정자 정자가 매우 멋스럽지요? 연못 가운데에 떠있는 듯한 정자랍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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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저기 한 번 가보지요? 마침 오늘 한빛님, 노을님도 계신데 가서 구경하고 옵시다."

금오바이크 식구 가운데 한 분이 우리 부부가 옛집 풍경을 좋아하는 걸 알고 일부러 가보자고 얘기를 했어요. 다른 이들도 모두 좋다고 하며 함께 갑니다. 어르신들이 일러준대로 들어가니, 어머나! 어쩜 이런 멋진 풍경이 또 있을까? 연못 가운데에 커다란 정자가 있고, 정자로 들어가는 길에는 나무다리를 두어 매우 멋스러웠어요.

금방이라도 갓 쓴 선비 하나가 부채를 손에 들고 나와 시조라도 한 수 구성지게 뽑을 듯했어요. '이 깊은 산골에 이렇게 멋진 곳이 다 있을까?'하며 저마다 사진기를 누르기 바빴답니다. 나무다리에 서서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이제 아까 봤던 옛집으로 가려고 모퉁이를 돌았어요. 어머나! 여긴 또 다른 세상이네요. 산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크고 예스런 집이 있는데 그 앞으로 마을 쉼터가 있고 아이들이 무척 많이 있어요. 시골 마을을 많이 다녀봐서 알지만, 이런 산골에 아이들 구경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마을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수야리에 온 기념으로 모두 서서 찰칵~!
▲ 정자 앞에서 찰칵~! 마을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수야리에 온 기념으로 모두 서서 찰칵~!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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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무척 깔끔하고 잘 보존되어 있지요?
▲ 지은 지 500년이 된 옛집 50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무척 깔끔하고 잘 보존되어 있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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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생각이 나지 않나요? 지난날에는 불때는 일이 참 싫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무척 정겹고 그리운 추억입니다.
▲ 가마솥과 땔감 어릴 적 생각이 나지 않나요? 지난날에는 불때는 일이 참 싫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무척 정겹고 그리운 추억입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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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반갑던지 다가가서 아이들과도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넸더니, 모두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알록달록한 차림으로 온 낯선 사람들인데도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참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해요. 밭일을 하기도 하고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어르신들도 우리를 보며 무척 반가워하셨답니다.

멀리 구미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 한 분이 냉큼 재실 문을 따준다고 하시네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시골마을마다 있는 재실에는 거의 문을 잠가놓아서 재실 안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여까지 왔는데, 내가 재실 문을 따줄게요. 구경 함 해보소!"
"아이구 어르신 고맙습니다."
"여기가 누구네 재실인가요?"
"밀양 박씨네 재실이요. 이 안에 있는 집은 지은 지 500년도 넘었어요."


재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너른 마당 앞에 기와집 한 채가 있는데 지은 지 500백년도 더 넘었다니 참 놀라웠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었는데도 그다지 낡아 보이지 않았어요. 아마도 관리를 잘 한 듯싶었답니다. 마당 한쪽 곁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있고 땔감도 있어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누구나 한 번쯤 가마솥에 불을 때본 적이 있지요? 오랜만에 보는 물건들이라 퍽 정겹습니다.

500년 된 옛집에서 저마다 그 옛날 선비도 되었다가 대감도 되었다가... 마당쇠도 되어 봤답니다. 마루를 보니 오랜 세월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 마루와 댓돌 500년 된 옛집에서 저마다 그 옛날 선비도 되었다가 대감도 되었다가... 마당쇠도 되어 봤답니다. 마루를 보니 오랜 세월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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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이 꽤 컸어요. 너른 마당, 뒤꼍까지 정겨운 풍경에 저마다 이집 대감님이라도 된 듯했답니다.
▲ 밀양 박씨 재실 재실이 꽤 컸어요. 너른 마당, 뒤꼍까지 정겨운 풍경에 저마다 이집 대감님이라도 된 듯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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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문 너머로 밀양박씨 재실이 보여요.
▲ 쪽문 쪽문 너머로 밀양박씨 재실이 보여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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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이리 오너라!"

마당 한쪽 구석으로 난 쪽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기와집이 또 한 채 있어요. 이게 바로 '밀양박씨 재실'이었어요. 함께 간 식구 가운데 하나가 냅다 뛰어가서 대청마루에 걸터앉더니 있지도 않는 수염을 쓰다듬는 시늉을 하며 큰 소리로 외칩니다. 마치 그 옛날 대감님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 한 번씩 그 자리에 가서 앉아보네요.

"여기 정말 시원하네요."
"그러게요. 한여름에 여기 앉아 있으면 더운 줄도 모르겠네요."
"근데 이런 데 앉아 있으면 글이 저절로 읽힐 거 같지 않나요?"
"하하하! 이거 시라도 한 수 써야 되겠는 걸요? 하하하."


재실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뒤꼍까지 돌아가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어요. 우리 뿐 아니라 함께 간 식구들도 사진을 찍느라고 매우 바쁘네요. 모두 자전거를 워낙 잘 타는 사람들이라서 우리처럼 이런 건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힘든 산길을 오르내리며 자전거를 타면서도 이런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매우 남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했어요.

마을 풍경이 참 예뻤어요. 모두 밭농사 논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곳인데, 봄이 무르익어 정자와 무척 어울리네요.
▲ 재실 뒤꼍에서 본 정자 마을 풍경이 참 예뻤어요. 모두 밭농사 논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곳인데, 봄이 무르익어 정자와 무척 어울리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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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야리 마을에는 뜻밖에 아이들이 많았어요. 맑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모습이 참 예뻤답니다.
▲ 해맑게 웃는 아이들 수야리 마을에는 뜻밖에 아이들이 많았어요. 맑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모습이 참 예뻤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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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하매 갈라고 저 가서 좀 셨다 가라카이?"
"네.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어르신들 덕분에 아주 좋은 구경 했네요. 그런데 여기가 무슨 마을인가요?"

"수야리! 옛날에는 구일리라고도 하고…."
"구일리? 내 이름 거꾸로 하면 되네요?"

함께 간 식구 가운데 '김일구'씨가 크게 웃으면서 얘기합니다. 우리도 함께 "거 말 되네." 하면서 따라 웃었지요.

"어르신들 안녕히 계세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네. 잘가요. 난중에 또 놀러 와요."

재실 구경까지 하고 마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는 떠날 채비를 하는 우리를 보고 어르신들이 무척 서운해 하셨어요. 나중에 또 놀러 오라시며 고개인사를 합니다. 수야4리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한결같이 매우 살가운 분들이셨어요. 말투만 들어도 정겨움이 넘쳐납니다. 산골에서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이 마을에 올해에도 풍년이 들기를 바라며 또 다시 길을 떠납니다.    



태그:#수야리, #구일리, #복사꽃, #금오바이크,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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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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