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견기업에 다니는 40대 초반의 김 부장은 요즘 자녀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자주 느낀다. 자신은 중학교 1학년부터 처음 영어를 배웠는데 최근 초등학교 3학년짜리 첫째 아이가 여름방학 때 해외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초등학교 1학년 둘째는 핸드폰을 사 달라 졸라댄다. 그는 어렸을 때 TV가 있는 옆집에 놀러 가 만화영화를 보곤 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40인치 벽걸이 TV를 통해 최신 영화 DVD를 감상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어릴 적 단칸방에서 방 2개인 집으로 이사 갔을 때 비록 형제들과 함께 쓰지만 내 방이 생겼다고 기뻐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30평대 아파트도 좁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외제차를 샀다는 옆 팀 이 부장 이야기에 고민이 된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어린 시절이,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오히려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더 많이 행복했던 순간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저 나이 들어 생기는 향수병 정도라고 치부해 버린다. 예전보다 더 살기 좋아졌고, 더 많이 돈을 쓰고 사는 지금이 당연히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런데 간혹 "정말 그런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경기도 분당의 한 판교 견본주택 전시장에서 판교 신도시 중소형 아파트 당첨자 일가족이 자신들이 살게될 아파트의 구조도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한 판교 견본주택 전시장에서 판교 신도시 중소형 아파트 당첨자 일가족이 자신들이 살게될 아파트의 구조도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관련사진보기


상대적 빈곤이 우리를 불행하게 해!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어린 시절은 삶의 질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훨씬 궁핍한 시절이었다.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으로 가난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부모가 의사, 선생님, 대기업 직원이라 잘 사는 친구들도 몇 명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부잣집 아이들도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는 한 겉모습만으로 이질감까지 주는 차이는 없었다. 상대적으로 더 좋은 옷을 입어봤자 그 시절의 선택이란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가 비슷한 수준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소비의 격차가 부모가 부자라고 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시절은 이제 과거지사가 되어 버렸다. 물질의 풍요가 넘쳐나다 보니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남들과 다른 소비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겉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사람의 경제적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해외명품 아동복과 한 달에 백만원씩 들어가는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는 그렇지 못한 친구들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 명품 옷과 최신 노트북, 핸드폰을 들고 자가용으로 등교 하는 대학생들 겉모습 너머로 부모의 경제력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겉으로 풍기는 물질의 풍요는 보통 사람들을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하고 당연히 쫓아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물질만능주의 시대이다 보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이미지, 되고 싶은 부자 이미지라는 것들은 온통 돈을 쓰는 것에만 한정되어 있다. 50층 이상 전망 좋은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 2-3대 굴리고 기분 내키면 언제든지 훌쩍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심심하면 백화점 명품관에 들러 가격표 따위에 구애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능력, 우리는 은연중에 이런 것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며 산다.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돈 많은 부자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은 우리를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한다. 그러다 보니 당장 밥을 굶는 것이 아니어도 끝도 없이 입에서 돈에 대해 투덜거리는 일상을 살게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가끔씩 사례의 김 부장처럼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과연 돈을 쓴 만큼 우리는 행복한가?' 그 의문은 행복을 위해 자신에게 던져 봐야 할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그저 향수병 혹은 열등감 등으로 치부해버리며 지나치지 말고 그 의문에 멈추어 봐야 한다. 그리고 나서 좀 더 깊은 질문을 던져 봐야 할 때이다.

'혹시 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밑 빠진 독은 아닐까?'

삶의 질 향상이 과연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여기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어린 시절을 다시 회상해 보자. 그들에게 어린 시절 전화, 냉장고, 세탁기를 모두 갖추고 방 2개짜리 집에 사는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차를 소유하고 있는 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여행이라면 그저 방학 때 시골 외갓집에 가는 수준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 200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 모습은 그럼 어떠한가? 20대는 20평, 30대는 30평, 40대는 40평에 사는 것이 정상적 기준으로 인식되고 좀 유명한 해외여행지는 한국인으로 북적거린다. 어릴 적 신문지로 해결했던 화장실 볼일은 이제 가정에서나 회사에서는 비데로 해결하고 초등학생부터 핸드폰은 가지고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돈과 행복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존재한다

경제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소득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이와 함께 소비의 규모나 내용도 엄청나게 커지고 다양해졌다. 물론 소비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늘어가는 소비와 함께 욕망의 크기도 점점 커져만 가지만 우리가 느끼는 만족감은 앞서 김 부장의 사례처럼 점점 떨어지고 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유는 우리가 같은 자극에 항상 같은 크기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같은 행복감을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30분 걸리는 무궁화호를 타다가 4시간 30분 걸리는 새마을호로 바꿔 타고 이제는 2시간 30분 걸리는 KTX를 타는 것과 같은 심리일 것이다. 무궁화호를 타다 맨 처음 새마을호를 타면 느끼는 행복은 매우 크다. 그러나 이 만족감은 점점 더 둔해지고 심지어 더 빠른 것은 원한다. 그러다 KTX를 처음 탔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안에 가기를 원한다.

결국 돈과 행복 사이에는 처음 돈을 쓸 때는 행복의 크기가 가장 크고 점점 이 행복감은 점점 체감한다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돈을 쓴 만큼 행복해 진다고 하면 과거 30년 동안 우리의 행복 크기는 소비의 규모만큼 커졌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자극에 금방 둔감해져서 더 강하고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항상 과거보다 더 많이 쓰고 있음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소비 욕망에 휘둘린다.

많이 쓰는 것보다 계획적으로 쓰는 것이 더 행복하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렇게 끝없는 욕망을 채울 만큼의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없다. 아니 충분하기는 고사하고 항상 돈은 모자랄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더 많이 쓰고 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언제나 모자라기만 한 돈을 쏟아 붓는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껏 느꼈던 불만족은 결국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늘 모자랄 수밖에 없는 돈을 어떻게 현명하게 잘 배분해서 쓰느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효용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돈의 배분에 있어 욕망과 필요를 반드시 구분해야만 한다.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반드시 필요한 항목에 강제적으로 먼저 돈을 배분하는 스스로의 원칙을 가져야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위한 소비를 막을 수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을 쓰는 것보다 돈 쓰기를 계획하는 것을 먼저 해야만 한다. 돈 쓰기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욕망은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그 시절은 비록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상대적 빈곤감이나 불필요한 욕망은 크지 않았기에 그 부족함만을 조금만 채워도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필요에 의한 소비, 계획된 소비, 욕망이 아니라 부족함을 채우는 소비를 한다면 돈을 쓸수록 행복이 줄어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아닌, 쓴 만큼 행복한 한계효용체증의 법칙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태그:#돈, #행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