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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 18대 총선이 있던 날, 둘째 딸아이가 출가 아닌 출가를 하였습니다.
 제 18대 총선이 있던 날, 둘째 딸아이가 출가 아닌 출가를 하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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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왜 그렇게 불고, 비 또한 왜 그렇게 내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18대 총선거가 치러지던 4월 9일 날씨는 그랬습니다. 둘째 딸아이가 돌아올 날을 기약하지 않은 채 출가 아닌 출가, 집을 떠나 절 생활을 시작하려 집을 떠나던 날, 바람은 불고 비는 내렸습니다.

식구들 모두와 투표소에 들러 투표를 하고 난 후 나머지 식구들과 이별 아닌 이별을 한 둘째딸을 차에 태우고 여정을 시작합니다.

절집 생활필수품으로 자명종을 사다

내일부터는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야 할 절집생활을 하러 가는 길이기에 길옆에 있는 시계포에 들러 자명종 시계를 하나 샀습니다. 시계포 주인이 보여주는 몇 가지 자명종 중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맞춰 놓은 시간이 되면 신경질적인 큰 소리로 '따르릉' 거리며 울릴 것으로 골랐습니다.

밤에는 잠자고 낮에는 활동을 하는 대개의 사람들과 달리 한나절까지 잠을 자고 밤새도록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생활을 하고 있던 딸아이기에 당장 내일 아침이 걱정되어 자명종 시계를 준비하자는데 쉽게 합의했습니다.

산사로 가는 길은 온통이 꽃대궐입니다.
 산사로 가는 길은 온통이 꽃대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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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니 동네도, 국도변의 풍경도 온통 꽃대궐입니다. 만화방창한 봄날, 아이를 절로 데려다주기 위한 부녀의 동반이 시작된 겁니다.

4개월 만에 다시 떠나는 둘째딸

2005년 3월, 고 3이 시작되던 날, 제도권 교육의 시간표에 얽매여 고3 일 년의 시간을 허비하느니 하고 싶은 글쓰기를 마음껏 하겠다며 훌쩍 집을 떠나갔던 아이가 작년 12월 9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가야 할 수밖에 없었던 소신을 한통의 편지로 구구절절하게 남기고 흔적을 감췄던 아이였기에 걱정도 많았고 분노도 했었습니다. 주변에야 아닌 척 했지만 해 질 녘만 되면 금방이라도 "아빠!"하며 돌아올 것 같아 기다려지고, 잠이라도 깨면 명치끝을 아프게 할 만큼 애물단지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부모의 생각과 걱정, 우려만으로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아이의 본심을 수그러지게 하거나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해 둘째딸이 가고자 하는 여생에 동반자가 되어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음을 먹었다고 아쉬움이 없어지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도권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받아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숨 가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로는 실력보다도 학벌이 우선인 현실에 학력이라는 최소한의 보호막조차 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나갈지에 대한 염려는 부모 처지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먼저 산 처지에서도 걱정이었습니다.   

절집 마당엔 꽃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절집 마당엔 꽃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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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의 동반자 되어주기로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열렸고, 마음이 열리니 딸아이와 이야기가 통했습니다. 장문의 메일로 대화를 하고, 간단한 통화로 소식을 묻던 어느 날, "네가 원하면 조용하게 가있을 절을 소개해주겠다"고 딸아이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 약속을 하고 한참이 지난 작년 말, 딸아이는 약속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있었고, 자라있는 아이를 보니 잘만하면 다시금 여느 아이들처럼 제도권 교육을 받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라는 핑계로 집에 머물게 하며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슬쩍, 은근슬쩍이지만 노골적인 마음으로 생각을 바꿔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해 보았지만 딸아이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점차 노골화 되어가는 설득에 딸아이가 불신의 눈빛을 보이기 시작해서 마음을 비우고 약속한 대로 집에 들어온 지 4개월 만에 절집 생활을 하러 떠나는 딸과 동행을 한 것입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준비는 묵언 같은 시간으로

의자를 뒤로 젖히고 깊숙하게 몸을 기댄 딸아이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봄 풍경을 보는 척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지만 풍경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했던 절집 생활이지만 막상 집을 떠나 낯선 생활을 시작해야 하니 새로운 환경에 대한 걱정도 생기는 모양입니다.

딸아이가 생활할 산사의 일부분입니다.
 딸아이가 생활할 산사의 일부분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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껑충한 키, 호리호리한 몸매라 맞는 치수의 옷이 없을 거라며 걱정하다 택배로 배달된 잿빛 개량 한복을 입어보던 날, 편해서 좋다며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던 환한 웃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멩이를 던진 후 한참이 지나 잔잔해진 호수처럼 담담한 표정입니다. 침묵이 길어지는 것 같아 옆구리를 찌르듯 툭툭 농담을 던져보지만 딸아이의 반응은 담담할 정도로 짤막합니다.  

흐릿한 하늘에서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차 유리에 부딪힌 빗방울들이 맞닥뜨리는 바람으로 산산이 흩어집니다. 흐릿해지는 유리를 닦개가 열심히 닦아내지만 빗방울도 바람도 계속됩니다.

묵언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지던 고속도로 주행을 끝내고 산사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니 주변의 산세가 달라집니다. 산하는 연록색으로 물들어 가고, 물들어 가는 연록의 산하에는 꽃들이 피었습니다. 길옆에 핀 개나리들은 노란 빛으로 띠를 매듭지었고, 산비탈에 핀 진달래들은 연분홍빛 리본처럼 피어 무르익어가는 봄날을 장식하는 무늬가 되었습니다.

산사로 가는 길은 산모롱이 돌아가는 길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는 이미 떨어진 꽃잎이 수북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집니다. 떨어진 꽃잎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아이의 시선이 모입니다.

반가사유상을 볼 때 마다 딸아이의 모습을 그렸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볼 때 마다 딸아이의 모습을 그렸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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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산길, 알록달록하게 봄꽃이 피어있는 산사로 가는 길로 들어서니 웅크린 듯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던 아이가 자세를 잡습니다. 딸아이의 생에 있어 새로이 맞게 될 절집 생활이 멀지 않았음을 마음으로 감지하고, 감지한 마음이 몸을 반응하게 한 모양입니다.

저수지에 담긴 산모롱이까지 돌고나니 가고자 하는 산사가 멀지 않았습니다. 수백 차례는 족히 다녀간 산사지만 딸아이가 출가생활을 할 곳이라는 마음으로 봐서 그런지 아름드리 소나무도, 항상 있던 바위덩이도 달리 보입니다.

아이가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이 담긴 가방을 실었기에 여느 때와는 달리 절 안까지 차를 몰고 들어갔습니다. 법당으로 오르는 비탈길에서 자라고 있는 벚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딸아이와 계단을 올라 법당에 들렀습니다.

익숙하기는커녕 절이 생소하기만 한 딸아이와 함께 법당에 들려 사방불에 참배를 올립니다. 제일 먼저 남방으로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남, 서, 북, 동 시계방향으로 돌며 서방으로 모셔진 아미타불, 북방으로 모셔진 비로자나불, 동방으로 모셔진 약사여래불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립니다.

절에 가 삼배를 올릴 때마다 무미건조할 만큼 아무런 바람 없이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의 절만을 올리겠다고 마음먹지만 어쩔 수 없는 중생이라서 그런지 딸아이가 건강하게 생활 할 수 있게 가호를 베풀어 달라는 간절함이 저절로 배어납니다.

절을 해 본 적이 없어 서툴기만 한 둘째딸도 옆으로 서서 꾸벅꾸벅 따라합니다. 절을 하고 있는 딸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대견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저림이 가슴 한 편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일전에 인사를 드린 적이 있어 딸아이를 알아보신 스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지난 일요일에야 딸아이를 스님들께 인사시켰습니다. 딸아이가 가 본 절은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불국사, 가족과 함께 여행으로 다녀온 해인사가 고작이기에 딸아이에게 절이라는 곳은 생소하기만 할 것 같은데 잘 따라 해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아이가 생활 할 방은 따끈따끈

법당 참배를 마치고 벚나무 아래 세워 놓은 차에서 당장 입을 옷가지 몇 벌과 책 몇 권, 노트북과 스탠드가 전부인 가방을 꺼내 아이가 생활 할 방으로 옮깁니다. 널찍하고 깔끔한 방바닥엔 이불이 깔려있었고, 이불이 깔려있는 방바닥은 따끈따근할 정도로 따뜻합니다. 절집 생활을 막 시작하는 아이를 위해 스님들께서 쓰신 마음이 포근한 분위기와 따뜻함으로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모든 것 훌훌 벗어버리고 오롯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 훌훌 벗어버리고 오롯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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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옮기고 나니 점심시간이 됩니다. 산모롱이를 돌며 식사를 하고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처음인 딸아이에게 처음으로 대하는 절밥만이라도 아빠와 함께해 조금이라도 덜 어색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냥 절로 간 것입니다. 스님께서 '공양' 말씀하시니 '공양이 뭐냐'고 물을 정도로 절에서의 예의범절은 물론 통용되는 용어들조차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딸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연실 "안녕하세요"를 반복합니다. 자리를 잡고 식사를 마친 딸아이와 산사 경내를 걸었습니다. 방긋방긋 피어오르고 있는 한 송이 꽃, 풀잎 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잠잠해졌던 하늘에선 바람이 다시 불고, 뜸해졌던 처마 끝에선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걸어 올라갔던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올라가고, 내려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가며 몇 바퀴를 돌았지만 비도 바람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고 있는 사이 스님께서 딸아이에게 우산을 가져다 건네주십니다. 오후 기도를 들어가시다 비가 내리니 챙겨주신 겁니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동영상 '둘째딸이 출가하던 날'

'둘째딸이 출가 하던 날'이라는 제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새로 준비한 캠코더를 꺼내 동영상을 만들어 볼 거라 시도해 보지만 익숙하지 않은 손길이 캠코더에 낯가림을 하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비까지 내리니 머릿속의 상상도, 꺼내들었던 캠코더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들에서 자라는 쑥처럼 건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들에서 자라는 쑥처럼 건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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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구경시켜준다고, 동영상을 찍어보겠다며,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만들어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봤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얼마 안 되는 짐이지만 정리 해준다는 핑계로 조금은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짐까지 정리해 주고나면 두고 가야하는 발걸음이 더 무거워 질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쩍 떠났습니다.

달리는 차창으로 바라본 딸아이는 단호하지만 왠지 외롭게 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친 것은 아니지만 눈길도 마음도 한참이나 딸아이에게 멈췄습니다.

얼마 동안 절 생활을 할지, 절 생활을 하다 구도의 삶을 선택해 수행자가 될지 아니할지는 온전히 딸아이의 몫이며 선택이지만 여느 아이들과 같지 않게 일찌감치부터 혼자 기를 고집하고 있기에 걱정도 하였고 가슴이 시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젠 걱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속세를 떠나 청정한 삶을 살고 계시는 스님들 그늘로 들어갔으니 딸아이 스스로 본래 면목을 볼 수 있는 오롯한 세월이 되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바위틈에서도 자라는 바위단풍에서도 뭔가를 배우는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위틈에서도 자라는 바위단풍에서도 뭔가를 배우는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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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딸아이의 절집생활이 좋은 경험으로 끝나든, 속세를 떠나는 출가의 인연으로 이어지든, 딸아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이라면 고통을 되뇔지언정 딸아이의 인생에 여정의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란 것을 알기에 다시 한 번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동안 맺었던 이런저런 모든 인연조차 끊고 오롯하게 글공부를 해보겠다며 휴대전화까지 취소하며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선택한 둘째달의 생활이지만 아비 된 마음에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의 모습은 안쓰러움이며 알 수 없는 아픔입니다. 

딸아이만 겪어야 하는 아픔인지, 구도자의 삶을 선택하기 위한 통과의례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꺼풀 훌훌 벗고 가고자 하는 길이 지혜로운 선택이자 행복의 디딤돌이 되기만을 기원할 뿐입니다.

스님들께 딸아이를 맡기고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는 아비의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며, 지식의 자양분이 되고 지혜의 등불로 딸아이가 살아가는 데 사표가 되어 주실 거라 확신하기에 걱정마음도 근심하는 부정(父情)도 모두 모두 거두겠습니다.


태그:#출가, #만화방창,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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