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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떡!

주머니 가벼울 때 비싼 음식을 보면 생각나는 말이다.

대학시절, 가난한 학생으로 서울살이의 고달픔에 허덕여야 했던 나는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맛있는 식당보단 싸고 양 많이 주는 식당을 즐겨 찾게 되었다. 그 시절, TV 프로그램 속 맛집의 음식들은 대부분 고가여서, 즐겨보되 즐겨먹지는 못하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때부터 내 머릿 속에 자리 잡은 맛집의 조건은 싸고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격이 싸야 주머니 가벼운 이도 망설이지 않고 찾을 수 있고, 먹는 내내 본전 생각에 과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물가폭등의 시대에 내가 정한 맛집의 기준을 충족하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5천원, 7천원, 만원…. 무슨 한 끼 식사값이 그렇게나 비싼지, 게다가 음식도 자극적이기만 하다.

그래서 어머니 친구분들의 추천을 받아 집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원정을 떠났다. 식당이름은 '남해식당'으로 부산시 금정구 회동동에 위치하고 있다. 회동동 인근은 소규모 공장과 허름한 집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변두리 동네다.

남해식당 외관. 허름한 주택이다.
 남해식당 외관. 허름한 주택이다.
ⓒ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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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남해식당으로 찾아가는 길은 외진 골목길이다. 도착한 식당은 허름한 주택이었다. 그저 입간판 하나와 메뉴를 적어 놓은 것이 식당임을 알려준다. 내부도 역시 소박하다. 주인 내외분이 거주하는 가정집에 식당을 겸업하고 있는데 기존 공간에 전혀 '돈' 들이지 않고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좋은 자리인 안방에 앉았다.

3천원짜리 보리밥 정식에 웬 음식이 이리도 많나

남해식당의 주메뉴는 3천원짜리 보리밥 정식이다. 일부에서 자장면도 5천원 하는 시대에 보리밥정식이 3천원이니 일단 가격은 별 다섯, 만점이다. 게다가 나오는 음식도 푸짐하다. 기본 나물 반찬이 8가지나 된다. 거기에 갈치구이와 된장찌개, 끝으로 양 많은 보리밥과 재첩국까지 나온다.

넉넉한 상이 후덕한 주인의 인심을 보여준다. 가만히 보니 3천원에 나오기엔 많아도 너무 많다. 왜 이렇게 싸냐는 질문에 주인 아저씨는 '아지메(친척) 떡도 싸야 사먹는다'는 경상도 속담을 답으로 내놓는다. 소탈한 웃음과 함께 '싸야 공감을 얻는다'는 말도 덧붙이신다.


나물반찬은 열무김치, 파숙회, 무채, 토란무침, 콩나물무침, 어린 배추무침, 겨울초무침, 모자반무침이다. 다들 몸에 좋은 것들이다. 게다가 아주머니께서 인근 야산에서 직접 키우신 나물을 보태 만든 음식이라 정성 듬뿍 들어간 반찬이다.

맛은 어떨까?

음식은 하나같이 짜지 않다. 일반 식당 음식은 너무 짜서 늘 먹기 불편해 하는 나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맵거나 짜거나 하는 자극적인 맛이 없다. 심심할 정도로 먹기 편한 음식이다. 그냥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 밥이다. 그것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고향 시골집 밥. 자극적인 시중 식당의 음식이 질려 어느 날 그냥 꾸밈없이 턱 하니 차려주는 엄마 밥이 생각날 때, 그 때 찾을 맛이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된장찌개다. 청국장을 섞은 된장찌개는 된장이 많이 들어가 조금 걸쭉하다. 맛은 얼큰하기보다는 구수하다. 밥을 먹지 않고 된장찌개만 연거푸 떠 먹어도 좋다. 보리밥 정식이 무어 그리 특별한 맛이 있겠느냐만은 전체적인 맛은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하고 담백하다. 그래, 남해식당은 분위기와 맛, 모두에 담백함이 배어 있다.

진짜, 매력은 무한 리필!

식사 중 너무 된장찌개만 애용했는지 금세 뚝배기가 비어버렸다. 빈 그릇이 애처로웠는지 아주머니께서 된장찌개를 한 가득 더 퍼주신다. 이야기 하지 않아도 채워주시는 마음씨. 이렇게 아름다운 식당을 봤나?

"우리 집은 뭐든지 더 드리니 말씀만 하세요."

그러고 보니 식당에 공기밥 가격이 없다. 공짜다. 이뿐만 아니라 된장찌개, 나물, 생선반찬까지 모두 원하는 만큼 채워주신다. 추가 가격 없이 원하는 만큼 무한 리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 배고픈 청춘에겐 그저 감동의 도가니로 다가온다. 게다가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박상(경남 남해안 지방에서 뻥튀기를 부르는 말)과 커피까지 후식으로 나오니 있을 건 다 있는 식당이다.

식당 주인의 마음을 알면 식당 음식이 보인다. 어떤 마음으로 운영하실까?

"많이 부족하지만 식당은 배려로 운영해요."

이제 돈 벌 욕심을 부릴 나이는 지났다는 주인 이현만(64)씨는 그저 사람 좋은 얼굴로 말씀하신다.

"자주 오시는 아주머니분 중에 유난히 밥을 많이 드시는 분이 계세요. 별 거 아니지만 다른 분들이랑 오실 때 부끄러워 하시는 것 같아요. 여자분이시니까. 그래서 저희는 밥을 퍼담을 때 그 분 밥만 꾹꾹 눌러 담아요. 남이 보면 크기는 같지만 양이 많게요. 그런데도 그분은 그걸 다 드시고고 조금만 더 달라고 하시죠. 하하. 양이 정말 많죠?"

아들뻘이라고 아저씨는 내게 이것저것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러다 언뜻 말씀해주신 이 일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식재료비 아낀다고 양을 줄이는 것이 세상의 상식인데, 역으로 이런 따뜻한 배려를 하는 식당도 있다니.

남해식당은 아주머니들의 사랑방!

남해식당에서 50m 거리에는 예원여중고 어머니 학교가 있다. 이 곳은 배움의 시기를 놓친 아주머니들을 가르치는 2년제 중고등학교인데, 여기 학생들이 식당의 단골 손님이다.

이 식당은 그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후 1시30분이면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여 보리밥 정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아저씨는 재촉하지 않는다.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겠다고 나선 분들은 착하고 건실한 분들이라 외려 마음이 더 쓰일 뿐이라고.

그래서 때때로 식당은 밥을 파는 곳을 넘어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물품보관소가 되기도 한다. 수업을 마친 직후엔 빈 자리를 찾기도 힘들 정도인 이 곳은 아주머니들의 검증을 제대로 받은 믿을 만한 식당이라 할 수 있다.

남해식당 찾아가는 길 - 부산 버스 179번을 타고 예원여고를 지나 굴다리 밑에 내려 200m정도 걸으면 된다. 전화번호는 051-524-0706. 주말은 쉬고, 평일만 문을 연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 사는 '맛'을 느낄 만한 배려다. 이 정도면 식당주인이 '천직'이라는 아저씨 말씀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철학'으로 다가온다. 그냥 싸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들른 이 음식점에서 뜻밖의 배움을 얻는다.

아저씨 말씀에 귀기울여 듣고 있는데 점심 손님이 몰려든다. 더는 시간을 뺏을 수 없어 인사를 드리고 계산을 하려 하니 아저씨께서 식사값을 받지 않으신다.

아들 같은 사람이 싼 음식집을 멀리서  찾아와 소개하겠다는 취지가 좋다며 한사코 마다하신다. 밥은 잘 얻어 먹어 놓고, 돈은 안 내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 몇 번 더 내려 했지만, "내가 허세 부리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라는 말씀에 그만 엉거주춤 지갑을 넣었다.

그리곤 식당 앞까지 나를 배웅하시곤 다시 안으로 들어가신다. 배웅까지 받은 나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식사값을 꼭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다시 들어가서 드리면 기분 상해 하실까? 몇 분을 서성였다. 처음 와서 그저 한 시간 남짓 있었을 뿐인데….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짧은 만남'이지만 '깊은 마음'이 전해진 때문이리라. 암튼 '공짜밥' 한 그릇에 그저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글에서 본 '사람 냄새'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그 '사람냄새'가 그리워질 때 쯤 맛있는 과일이라도 들고 '남해식당 아저씨'를 찾아 뵈어야겠다. 그 때도 어김없이 맛있고 푸짐한 보리밥이 나를 맞아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동네 맛집 응모글



태그:#남해식당, #보리밥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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