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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녕대군. 드라마 <대왕세종>.
 양녕대군. 드라마 <대왕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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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은 12명의 부인에게서 12남 17녀를 낳았다. 그 12남 중에서 4남은 대군(大君)이고 8남은 그냥 군(君)이다. 여기서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가 낳은 네 아들인 양녕(讓寧)·효녕(孝寧)·충녕(忠寧)·성녕(誠寧)의 대군호(號)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막내부터 살펴보면, 성녕의 경우에는 유학적 수양의 덕목 중 하나인 성(誠)을 강조하고 있고, 효녕의 경우에는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고 있으며, 충녕의 경우에는 군주에 대한 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양녕의 경우에는 무언가를 남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인 '양'을 강조하고 있다.

나중에 임금이 되는 제3남에게 군주에 대한 충의 의미가 담긴 충녕이란 군호가 부여된 것도 흥미롭고, 한때 왕세자의 지위에 있던 장남에게 양보의 의미가 담긴 양녕이란 군호가 부여된 것 역시 흥미롭다.

전통시대에 고위층 인사들에게 부여된 각종 호칭에는 상당히 깊은 고려가 담겨 있었다. 언뜻 보면 다 좋은 말인 것처럼, 그 속에는 개인의 업적이라든가 특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양녕대군이 사망한 해인 세조 8년(1462) 9월에 그에게 부여된 시호인 강정(剛靖) 역시 상당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정부는 강정이란 시호를 제정하면서, 굳세고 강한 것을 '강'이라 하고 너그럽고 즐거워하며 제 명대로 편히 살다 죽은 것을 '정'이라 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세조실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강정이란 시호 속에는 양녕대군의 본래 기질(강)과 폐세자 이후의 인생태도(정)가 담겨 있다. 굳세고 강한 기질을 타고 났지만, 폐세자 이후에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즐겁고 편히 살았다는 의미에서 그런 시호를 부여한 것이다.

 아버지로서 군주로서 늘 고민하는 이방원. 드라마 <대왕세종>.
 아버지로서 군주로서 늘 고민하는 이방원. 드라마 <대왕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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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를 본다면, 그가 생전에 받은 양녕대군이란 칭호 속에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럼, 태종의 장남 이제(1394~1462년)는 언제부터 양녕대군이라 불리게 되었고, 왜 그렇게 불리게 된 걸까?

제1남인 이제는 11세가 되던 태종 4년(1404)에 왕세자로 봉해졌다. 그 이전에는 대군으로 봉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왕세자 시절에는 양녕대군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태종실록> 태종 18년(1418) 6월 5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폐세자 직후에 양녕대군으로 강봉되었다. 그는 그날부터 양녕이란 호칭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자 자리를 잃는 시점에서 그의 대군호에 양(讓)이란 글자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폐세자를 주도한 인물이 국왕인 이방원이었으므로, 대군호 제정에도 그의 의중이 반영되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양녕대군이란 칭호 속에 담긴 이방원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일반적으로 볼 때에, 한자 '양'에는 책망이나 겸양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양녕대군의 경우에는 책망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아들들에게 항상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태종이 안 그래도 불쌍한 장남에게 그런 치욕적인 대군호까지 부여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국왕의 책망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양녕대군이란 칭호를 부여했다면, 이후에 형제들 사이에서 양녕의 입지는 한층 더 좁아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들 간의 유혈쟁투를 극히 두려워하는 태종이 그런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책망의 의미보다는 양보의 의미, 특히 <서경> '요전'(堯典)에서 강조된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서경> '요전'의 주석에서는 "어진 이를 추천하고 착한 이를 높이는 것을 양(讓)이라 한다"고 했다. 어질고 착한 사람을 군주로 추대하는 행위를 '양'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양녕대군이란 칭호에는 '어질고 착한 사람을 군주로 밀어준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양녕의 덕행을 칭송하는 의미가 된다.

 부자 간에 서로 상처만 안겨준 태종 이방원과 세자 이제(양녕대군). 드라마 <대왕세종>.
 부자 간에 서로 상처만 안겨준 태종 이방원과 세자 이제(양녕대군). 드라마 <대왕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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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이 스스로 동생에게 자리를 넘겨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처럼 대군호에 '양'자를 넣은 것은, 장남의 위신을 고려함과 동시에 아들들의 우애를 도모하기 위한 태종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것은 훗날 장남이 혹시라도 동생의 왕위를 빼앗으려는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부터 단속하려는 뜻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세자 자리를 빼앗긴 게 아니라 훌륭한 동생에게 스스로 넘겨준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양녕대군이란 칭호 속에 깔아놓은 것이다. 일종의 '무의식적 자기암시'의 효과를 꾀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태종이 제3남에게 충녕이란 칭호를 줄 때에는 왕이 될 형에게 충성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만 해도 장남의 앞날을 위해 제3남을 단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형제의 운명이 서로 뒤바뀐 뒤에는 형에게 동생에 대한 양보를 강조했다. 이때부터는 제3남의 앞날을 위해 장남을 단속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위와 같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1418년부터 태종의 장남 이제는 양녕대군이란 호칭을 갖게 되었고, 그 속에는 '어질고 착한 동생을 위해 스스로 왕위를 양보한 형'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형제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유혈쟁투를 통해 왕위에 오른 경험이 있는 태종 이방원은, 훗날 자기 아들들이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남의 대군호 하나에도 세밀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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