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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주최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학대문제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학대문제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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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성폭행 피해자가 의료적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의료조치를 할 의료진이 소수에 불과하고, 법적으로 보장된 '임신 중기 이후의 인공유산'도 위험 부담 때문에 기피하고 있어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보상은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산재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상을 받아도 팔이나 손가락이 잘린 채 고국으로 돌아가면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각각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과 김해성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의 지적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직접 곁에서 겪어본 뒤 느낀 현장의 문제점인 셈.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학대문제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학대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뒷받침할 의료 지원 및 보호 체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의 경우, 의료비(1인당 300만원) 지원과 경찰 수사와 의료지원을 함께 하는 '원스톱 지원센터'가 있음에도 실효성 있는 지원책으로는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인공유산이 허용되지만, 의료진이 피해자에게 "강간 사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등 피해자가 제2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또한 '불법체류'와 '산업재해'의 이중고 때문에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의료서비스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성폭행 혐의, 피해자가 직접 증명하라?"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자료 사진).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자료 사진).
ⓒ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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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소장은 "성폭행 피해자는 사건 이후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편견 때문에 더욱 힘들어한다"고 지적했다.

성폭행 피해자의 90%가 여성인 가운데 '가해자는 정신이상자', '여성들의 정숙치 못한 행동이 성폭행을 유발한다',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불가능하다'는 등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 혹은 고소 등의 공론화 과정을 이끌어가기가 힘들다는 것.

이 소장은 "이 같은 편견은 경찰의 조사 과정이나 재판 결과에 그대로 드러난다"며 "성폭력 범죄 신고는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기소율이나 가해자에 대한 실형 선고는 줄어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경찰청이 지난해 작성한 '경찰백서'에 따르면, 1992년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은 3919건이었고 2006년에는 1만5326건이었다. 성폭력특별법이 실시된 1995년에는 6093건이었고, 청소년성보호법이 시행된 200년에는 1만381건이었다.

이에 비해 친고죄에 해당하는 강간, 강제추행에 대한 기소율은 20% 내외에 그쳤다. 강간 및 준강간의 경우 2000년 385건(18.2%)에서 2005년 283건(15.1%)으로 줄었고, 강간 등 치상 또한 2000년 1712건(66.2%)에서 2005년 1196건(53.8%)으로 감소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경우 또한 2004년 1심 재판 결과 실형은 4만8948건(20.6%), 집행유예는 8만3987건(35.4%)이었다. 10명 중 2명만이 실형을 받는 셈이다. 반면 2002년의 경우 실형은 5만587건(24.1%), 집행유예는 8만5659건(40.8%)이었다.

이 소장은 "성폭행 피해자가 의료적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성폭행에 대한 인식과 적절한 의료조치를 갖춘 의료진이 소수에 불과하다"며 "특히 사건이 기소됐을 경우 의료진이 검찰이나 재판부에 출두해서 증언을 해야 하는데 심리적 부담을 느껴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나 원스톱 지원센터 운영 등은 반가운 일이지만 '효과적으로 지원되고 있는지'는 남겨진 과제"라며 "성폭행 피해로 인한 임신은 인공유산이 가능하지만 의료진들이 위험 부담을 느끼고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의료진이 피해자에게 "강간 사실을 입증하라"면서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인공유산을 연기하다가 결국 피해자가 원치 않는 출산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의료진이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인공유산을 허용하는 등 여성의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율법으로 두 번 죽는 이주노동자

김해성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3D 업종'에 많이 종사하면서도 한국말에 서툰 탓에 정확한 안전교육이나 주의사항, 작업지시 등을 모른 채 일을 시작한다"며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지만 보상 절차도 잘 알지 못해 육체적·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표는 "산업재해 보상은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되지만 '불법체류자'의 경우 보험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부당해고, 퇴직금, 연장 및 야간 근로수당 지급, 연차 유급휴가 등의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을 주장했다.

그는 또한 "산업재해로 팔이나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범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이슬람국가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법을 범죄자에게 적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일하다가 신체에 손상을 입은 노동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범죄자로 오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산업재해는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범죄행위와 같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이행과 산업재해 예방에 힘써야 한다"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재활치료와 요양을 통해 사회 복귀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대한의사협회, #학대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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