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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러 달째 딸아이 쿠하가 흥얼거리는 노래, '마빡이'가 불러 더 유명해진 '자전거 탄 풍경'의 <보물>을 나도 콧노래로 불러본다.

보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아침에 눈뜨면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좁은 골목길 나즈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큰 놀이터
개울에 빠져 하나뿐인 옷을 버려도
깔깔대며 서로 웃었지
어색한 표정의 단체 사진 속에는
잊지 못할 내 어린 날 그 보물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 강인봉 작사 작곡, 자전거 탄 풍경 노래.

제목만 읽어도 괜히 미안해지는 책

제목이 가슴에 콱 박힌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제목이 가슴에 콱 박힌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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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영재 만들기'류의 자녀교육서를 열심히 찾아 읽고 있을 때.

남편이 슬며시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며, 인터넷으로 '편해문'이라는 사람을 검색해 보라고 채근한다.

특이한 이름 덕에 잊지 않고 그를 검색해보니, 남편이 내게 던진 문장은 그가 쓴 책 제목이었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 한 줄짜리 제목과 같아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내내 그 말이 마음에 콱 걸린 채 떠나지 않았다.

텅 빈 놀이터는 이제 산책을 나왔다가 잠시 쉬어가는 노인들 벤치 구실을 하면 다행이다.

새 학기를 맞아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놀이터야 안녕"하는 학습지 광고를 보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이미지보다 배경음악 때문이었는데, 김광석의 목소리로 "이제 다시 시작이다"가 흘러오는 대목에서 '이 노래가 아이들을 책상머리로 불러들이는 데 사용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무리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내야 하는 광고지만 너무 심하다 싶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논란이 됐던 영어교육이나 사교육 문제를 굳이 걸고 넘어가지 않아도 이미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기 초라 더 그럴테지만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다니는 아이들에게 밖에서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 여유 따위는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학습지 하나쯤은 기본으로 달고 사는 요즘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하면, 괴짜 취급을 받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푼수 취급 받기에 딱 좋을 것이다.

폐자전거 타이어 하나로도 아이들은 신난다. 공터가 놀이터고, 넓은 하늘을 운동장 삼아 노는 아이들.
 폐자전거 타이어 하나로도 아이들은 신난다. 공터가 놀이터고, 넓은 하늘을 운동장 삼아 노는 아이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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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한 줄, 폐타이어 하나로도 즐거운 한때 보내는 아이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웃음 소리, 아이들이 어려서 놀던 힘으로 세상을 버텨나간다는 지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끔 생각나는 어린날의 기억에는 항상 동네 언니 오빠들이나, 학교와 학년이 달라도 한 패가 되어 고무줄 놀이를 했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어렸을 때 유행했던 주산 학원이나 여자아이들이 주로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공부했던 기억 따위는 애써 건져올려보려 해도 도무지 잘 생각나질 않는데 말이다. 놀면서 이웃도 알고, 놀면서 친구도 알아가던 그 시절이 없었다면 십 대의 절반은 아마 별다른 기억 없는 날들로 메워지고 말았을 거다.

지은이가 찾은 인도와 네팔, 캄보디아는 빈부격차가 심하거나 아예 빈부랄 것도 없이 국민 대다수가 가난한 나라이다. 나라가 가난하면 가장 힘든 건 노인과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온 선입견은 사진 속 아이들의 환한 웃음 앞에서 꼬리를 감추고 만다.

네팔 소녀가 실 하나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내 어린시절의 모습이 겹쳐져 책장을 오래 넘기지 못했다.
 네팔 소녀가 실 하나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내 어린시절의 모습이 겹쳐져 책장을 오래 넘기지 못했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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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파시미나를 두른 네팔 소녀가 실 한 줄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진이나 뱅골만에서 부모를 따라다니며 작은 물고기를 그물에서 떼어내는 아이들 사진은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물론 소심해서 주로 집안에서 동화책이나 읽던 내가 경험해 본 놀이들은 고무줄과 실뜨기 정도뿐이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어른들이 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아이들이 보거나 따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지금은 참 보기 어려워졌다. 왜 그럴까.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하는 부모가 적기 때문이다. 김치 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없는데, 김치를 담는 부모가 없다. 다 사다 먹으니까 말이다.

아빠가 물건을 고치거나,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큼 좋은 놀이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부모들은 집 안에서의 자연스런 노동과 멀어져 있다. 이런 좋은 놀이를 놔두고 우리는 돈과 시간을 따로 들여 아이들을 놀이방으로 보내고 복잡한 놀잇감을 아이들 품에 안긴다. 나는 정말 그런 것이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 세계에 함께 참여하는 놀이를 너무나 하고 싶어 한다. 너무나…(이 책 105-106 쪽)

마음의 휴식처에서도 놀이는 계속됐다. 인도의 불교 사원이나 오래된 힌두 사원에는 바닥에 새겨진 놀이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음의 휴식처에서도 놀이는 계속됐다. 인도의 불교 사원이나 오래된 힌두 사원에는 바닥에 새겨진 놀이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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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인간은 놀이를 통해 밝아지고,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일에 시달리거나, 공부에 압박 받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이고, 어둡기 마련이다. 어른도 그럴진대 하물며 어린 아이들야 말해 무엇하나.

폐자전거 타이어 하나로도 너른 공터를 누비는 맨발의 아이들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는 것 같다면 저자의 '따뜻한 글빨'에 취한 나의 지나친 오버일까?

힘차게 뛰놀며 바퀴살 없는 빈 고무를 굴리는 흙빛 피부의 아이들 모습이 건강한 미래로 여겨진다.

게다가 무거운 가방에 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고 비교 당하고 경쟁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에 비해 훨씬 행복해 보인다.

남보다 많이 갖고,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사회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얼마간의 하늘과 운동장을 되돌려 주었으면 한다.

한 문제 더 푸는 것보다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결국 우리 부모들 뿐이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우리 어린 시절에 하고 놀았던 놀이 하나쯤 아이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멀리 나갈 시간이 없다면 간단한 실뜨기라도 말이다. 아이의 웃음 소리가 곧 가정의 행복 지수라는 평범한 사실을 봄햇살 아래서 기억했으면 한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편해문 지음, 소나무(2007)


태그:#놀이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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