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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39)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927일(3월 7일 기준)째 회사를 향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싸움을 이끌고 있다.

 

김 분회장은 지난 2002년 입사해 2005년 9월말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3년여간 일하면서 '내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벼락같은 '해고통지'를 받은 것이다. 전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IMF 외환위기를 맞아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기륭전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김 분회장은 "회사의 처사가 해도 너무했다"며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햇수로 4년째 회사를 향한 싸움을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긴 했지만 2년 넘게 일하면서 그는 사측의 '계약해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부·노동위원회 등을 찾아다녔고 대법원까지 가서 해고무효소송을 냈지만 끝내 "회사의 해고는 타당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그는 "이번 판결이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쉬워지는 빌미가 됐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6일 김 분회장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사내커플에 대한 다른 처우, 그 때부터 우린 시작했다"

 

- 장기 투쟁 사업장에 대해 '다른 곳에 가서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시선도 있다.

"대부분 조합원들이 일한 기간보다 투쟁 기간이 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어디를 가도 기륭전자에서 받았던 설움, 인간취급을 받지 못한 상황이 극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는 노예나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다. 생계를 위해 투쟁에서 떠난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또 해고를 당했다'며 연락을 한다. '분하고 억울해서 못 나간다'는 것도 있고, 동지들간의 의리 때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면 많은 동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배경은.

"2005년 사내 커플이 있었다. 두 명 다 계약직이었는데, (회사가 두 사람의 연애 사실을 안 뒤) 여성과의 계약기간을 3개월로 줄였다. 반면 남성은 1년 계약했다. 그 때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도 여성의 출산휴가가 문제가 되자 아이 낳을 걱정이 없는 40~50대 여성들은 계약기간 1년, 미혼 여성은 6개월, 갓 결혼한 여성은 3개월로 정하는 등 부당함이 있었다. 파견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회사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문제들이 불거졌다."

 

- 노동조합 설립 당시 어려움은.

"2005년 7월 5일 결성보고대회를 했다. 3개월간 30명이 보안을 철저히 하면서 준비했다. 그나마 오래 일하고 생산라인 조장인 내가 10명을 우선 조직했다. 단 한 사람도 '싫다'고 한 사람이 없었다. 2주 사이에 30명으로 늘어났고, 결선보고대회 때는 휴식시간 10분 동안 150명이 가입했다. 회사 몰래 하느라, 150명을 가입시키는 30분이 30년 같았다. 추가로 180명까지 늘어났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회사는 비정규직이 노조를 결성할 것이라는 걸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한 조합원은 노조 결성 전에 해고됐지만, 노조를 결성해 보호한 덕에 해고를 면했다. 노조를 설립하고 한달 동안 회사는 노동 여건을 많이 개선했다. 교섭도 열리는 등 다행이었다. 하지만 7월 31일부터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해고장이 돌았다."

 

-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에 대해 회사의 이익을 외면한 이기주의라는 지적이 있다.

"우리도 회사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 우리도 회사의 이익을 빌지만, 회사가 잘 되면 되레 고용 불안정이 생긴다.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한국 인건비가 높다'고 하지만 기륭전자의 경우 최저임금(64만 1840원)보다 10원 많은 임금을 받고 살았다. 생활할 수가 없으니 특근 100시간, 매일 잔업 2~3시간, 주말도 없이 철야근무를 해야 한다.

 

2005년 파견직 노동자 기본급이 64만 1850원이었고, 세금 떼고 나면 60만원 조금 더 가져갔다. 특근을 해서 90만원 정도 벌었다. 파견직은 상여금이 아예 없었고 계약직은 400%, 정규직은 700% 받았다. 기륭전자는 결코 규모가 작은 기업이 아니다. 충분히 지불 능력이 되는데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안 주고 있다."

 

"우리도 회사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

 

- 장기간 싸움인데 이랜드·뉴코아 등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없나. 

"많은 사람들이 '이랜드·뉴코아에 기륭전자가 묻혔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아니었다. 기륭전자가 워낙 오래 하다보니까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지는데, 이랜드·뉴코아를 통해서 투쟁이 전국화됐다. 그들처럼 각 매장마다 타격투쟁을 하지는 못했지만, 비정규직이 사회적 문제로 폭발하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문제도 동반 상승하게 됐다.

 

다만 상급단체가 투쟁을 '더 크게, 더 넓게, 더 깊게' 만들어야 하는데, 사업장이 많이 묶이게 되면 간부들이 해결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지난해 4개 사업장 여성 비정규직의 투쟁에 총연맹이 참여하려고 했지만, 다른 사업장의 문제제기가 들어와서 아쉬움이 있다.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생계비를 책임지겠다'는 발언 또한 되레 비정규직들의 기대치만 올려놓고 실현되지 않아서 실망감만 줬다. 오랫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데 말만 쉽게 나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투쟁으로 인한 어려움은 승리에 대한 낙관이 있어야만 돌파할 수 있다."

 

- 회사와 법원 재판이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

"부당 해고에 대해 얼마 전 대법에서 판결이 났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등에서는 이겼는데, 대법원은 기륭전자가 나와의 계약 관계가 일정치 않았기 때문에 '계속 고용'을 내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계약에 동의했고, 회사의 흑자폭이 줄었기 때문에 계약 해지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고 당시 사내에서는 노조를 조직한 나를 해고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자료를 많이 제출했지만 재판에 반영되지 않았다. 법원마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등을 돌린거다. 2002년 입사해 2005년 9월 해고됐다. 2년 계속 고용이면 사실상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하는데, 법원 판결이 이것을 뒤집었다. 이번 판결은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이라도 언제든지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태그:#김소연 , #기륭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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