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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날아든 문자해고 통지.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을 요구하며 6일 현재 926일째 농성중이다.
 별안간 날아든 문자해고 통지.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을 요구하며 6일 현재 926일째 농성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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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아지트. 공권력 침탈로 무너진 천막 농성장은 컨테이너 박스로 다시 지었다.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아지트. 공권력 침탈로 무너진 천막 농성장은 컨테이너 박스로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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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가까워오자 최은미(25·여)씨는 화장을 고쳤다. 볼에 붉은 색을 덧칠하고, 속눈썹도 눈썹집게로 올렸다. 빗으로 앞머리도 정리했다.

그러나 이날 패션 코드는 어쩐지 좀 어색하다. 화장이 화사한 데 비해 복장은 단조롭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색바랜 오렌지색 조끼를 걸치고, 실외 집회에 대비해 분홍색 벙어리장갑도 잊지 않았다. 곱게 빗은 머리는 하나로 묶어 천상 '여자 스타일'이지만, 등에 맨 천에는 '부당해고 조합원 직접고용/위장도급 중단/용역깡패 철수' 등 문구들이 무시무시하다.

가방 안도 마찬가지다. '20대 아가씨' 최씨의 가방은 "비정규직 해고 중단" 등 붉은 글씨가 대문짝만 하게 적힌 유인물과 언제든지 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A4 용지 두장 크기만한 등산용 깔개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기륭전자 노조 막내의 가방. 장기 농성 탓인지 가방안에는 길거리에서 언제든 깔고 앉을 수 있는 깔판과, 약봉투, 벙어리장갑, 치약 치솔 등이 들어 있다.
 기륭전자 노조 막내의 가방. 장기 농성 탓인지 가방안에는 길거리에서 언제든 깔고 앉을 수 있는 깔판과, 약봉투, 벙어리장갑, 치약 치솔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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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꾸밀 나이인 25살 은미씨. 집회 사회를 맡는 날이면 평소에 않던 눈 화장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한창 꾸밀 나이인 25살 은미씨. 집회 사회를 맡는 날이면 평소에 않던 눈 화장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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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후 1시께 점심식사를 끝낸 뒤에 화장을 했다. 하지만 집회를 준비하느라 두 시간여 동안 앰프도 옮기고 깃발과 손팻말 등을 분주하게 챙기다보니 화장도 지워지고 머리도 헝클러졌다.

최씨는 6일 오후 5시부터 금천구 구로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앞에서 열리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결의대회' 사회를 맡았다. 그는 10여명의 '언니'들과 함께 복직을 위해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알파걸(학업·운동·리더십 등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엘리트 소녀)'과 '골드미스'가 부상한다는 2008년 여성상위시대에, 여전히 80년대 서러운 '공순이'의 삶을 되풀이하고 있는 그들의 하루를 쫓아다녔다. 100주년 3.8 여성의 날을 맞아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가운데 926일째 회사를 바라보고만 있는 10명의 가방 속뿐만 아니라 답답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오전 8시] "컵라면 하나, 누가 먹었어?!"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을 포함한 10명의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불을 다리까지 덮고 모여 앉아있다. 오전 7시 20분부터 회사 앞에서 '출근투쟁'을 하고 돌아오면 다리가 뻐근하다. 곱게 화장을 한 채 하이힐을 신고 바쁘게 출근하는 또래 여성들과 대조적이다.

기륭전자 앞에서 매일 아침 '출근투쟁'을 하고 농성장에 모인 조합원들과 허기를 달랜다.
 기륭전자 앞에서 매일 아침 '출근투쟁'을 하고 농성장에 모인 조합원들과 허기를 달랜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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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천막'으로 돌아와 하루 일정을 두고 회의한다. "오후 집회에는 OO가 가라" "집회에 필요한 유인물은 ㅁㅁ가 준비해라"며 김 분회장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들이 모여앉은 곳은 기륭전자 정문 바로 옆 컨테이너 박스. 형광등도 켜고 방바닥도 뜨끈한 이 곳을 '천막'이라고 부른다. 대형트럭들이 오가는 공장 앞에서 천막은 10명을 지켜주기 쉽지 않았다. 결국 컨테이너 박스를 구했다.

햇수로 4년째를 맞는 싸움인 탓에 컨테이너 안은 자취방 같다. 이불·옷걸이, 쌀과 라면 등 비상식량·신발장·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살림 노하우의 결정판이다. 이인섭(41)씨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들이고, 10명 정도가 2인 1조로 돌아가면서 천막에서 1박을 한다. 

이날은 지난 한달간 쓴 돈을 정산하느라 각자가 간이영수증 뭉치가 오갔다. 모두 계산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조용했다. 대부분 교통카드로 나간 교통비로, 다른 사업장의 집회나 대표이사 혹은 최대 주주의 집 앞을 방문하느라 쓴 돈이다.

다 합쳐 이들이 한달에 쓰는 비용은 300만원 정도. 싸움을 시작하고 1년 6개월간은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상급단체의 지원을 받아 교통비나 식비 정도를 지원받는다. 그래도 빠듯한 살림 탓에 부당해고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에 드는 비용은 엄두도 못 낸다. 변호사 수임료 2억원은 외상을 지고 있다.

결국 김 분회장이 컵라면 한 개까지 꼼꼼히 챙긴다. 군기반장 역할을 하는 김 분회장의 별명은 '버럭소연'. 식사 때는 되도록 다같이 밥을 해먹으며 비용을 아끼고, 상급단체 회의가 있을 때는 한 끼 정도 신세를 지고 돌아온다.  

김 분회장은 조합원들의 출결도 꼼꼼히 챙긴다. 독감으로 콜록거리는 사람이 대다수인데도 천막을 지키며 아픈 게 낫다. 10명뿐인지라 빈자리가 생기면 워낙 크게 느껴져 약을 나눠 먹는 것으로 감기를 달랜다. 윤종희(39)씨는 아침도 거르고 자리에 누웠다.

[오전 9시 45분] "우리 아직도 투쟁해야 해?"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을 맡고 있는 김소연씨. 회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900일을 넘겼으니 기륭전자에서 일했던 시간보다 회사와 싸운 시간이 더 길다.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을 맡고 있는 김소연씨. 회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900일을 넘겼으니 기륭전자에서 일했던 시간보다 회사와 싸운 시간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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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서울남부노동무료상단센터로 이동했다. 오후 집회에 필요한 결의문을 출력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부엌도 빌릴 수 있는 곳이다.

김 분회장과 이미영(29)씨의 결의문 문구 수정이 한창이다. 미영씨는 "노동자들이 꼭 주먹을 불끈 쥐고 어둠을 쳐야 하느냐" "'투쟁'이라는 문구를 빼면 안 되느냐"고 컴퓨터 앞에 앉은 김 분회장을 다그친다. '우린 아직도 투쟁을 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미영씨는 "우울하다"며 뒤돌아섰다.

화제는 곧 미영씨의 결혼으로 넘어간다. 그는 15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신혼여행까지, 천막을 오래 비워야 하는 탓에 마음이 편치 않다. 숙식을 제공할테니 천막으로 신혼여행을 오라는 농담도 오간다.

싸움이 길어지자 그 사이 조합원들의 결혼·출산도 많았다. 벌써 4쌍이 결혼했고, 한 커플은 아이의 돌까지 맞았다. 오석순(43)씨 또한 작년 3월 결혼했다. 하필 한미FTA 반대 집회가 잡혀 있었던 날이라, 집회의 사전 행사격으로 결혼식이 열렸다. 정장에 화장을 곱게 하고 광화문 앞 집회에 참석하는 웃지 못한 사건도 있었다. 

오랜 싸움 탓에 천막에서의 생활은 낯설 것이 없다. 오히려 10명의 손발이 착착 맞는다. 내복은 필수, 화장실은 근처 대형 아울렛매장의 공동 화장실을 이용한다.

하지만 긴 싸움을 반기는 사람은 없다. 컨테이너 문 옆에 'OOO일째 투쟁중'이라는 팻말을 매일 교체하는 미영씨는 "안 붙여 놓으면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서 귀찮다, 붙이고 싶지 않지만 덜 귀찮으려고 붙여 놓는다"며 "날짜 세는 게 제일 싫다"고 토로했다.

어느새 기륭전자에 다녔던 기간보다 싸우는 기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석순씨는 2005년 2월 입사해 4월 30일 계약해지 문자를 통보받았다. 2개월 일하고 햇수로 4년째 싸우고 있는 것이다. 강화숙(39)씨는 3년, 인섭씨는 2월 6개월 일하고 일자리를 잃었다. 인섭씨는 "얼마 안 가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 버티다가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6년 10월, 광주 5·18 정신을 담은 '들불상'을 받았고 같은해 '박영진 열사상'도 받았다. 오랜 싸움에 대한 보상이지만,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정규직 보장이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낮 12시 10분] "파란색 정문을 돌려달라"

뜨끈한 밥을 들고 천막으로 돌아왔다. 찬바람에 밥이 식어가지만 이들은 또 다른 집회를 준비한다. 점심식사 시간을 이용한 짧은 '점심집회'다.

굳게 잠긴 기륭전자 정문에 오늘도 피켓을 붙이는 것으로 집회를 시작한다. "뼈빠지게 일했는데 정리해고 웬말이냐"
 굳게 잠긴 기륭전자 정문에 오늘도 피켓을 붙이는 것으로 집회를 시작한다. "뼈빠지게 일했는데 정리해고 웬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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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서 구멍난 꽹과리와 은색 스텐 밥그릇이 나온다. 앰프를 꺼내고 미영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점심시간임에도 회사의 파란색 철문을 굳게 닫혀있다. 간간히 이들 앞을 지나는 젊은 여성 직원들이 보였다. 10명의 시선이 이들에게 꽂혔다.

김 분회장은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저 여성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회사에서 해고될텐데, 안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순씨는 "애초 안이 훤히 보였던 정문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굳게 닫힌 철문을 꼬집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만큼이나 회사도 변했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정문이 바뀌고, 유리문이었던 관리실도 막혔다. 담장 위에는 가시 박힌 철창이 설치됐다.

외형뿐만 아니라 구로 공단의 내부도 점차 바뀌었다. 김 분회장은 "공단 내 공장들이 '소사장제'를 둬서 생산 라인을 하나씩 회사 밖으로 떼어내고 관리는 회사가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그러면서 3개월·6개월짜리 비정규직들은 늘어나고 있다, 어느 회사를 가도 5~6년씩 일하는 노동자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여성 비정규직으로서의 삶은 출구없는 미로를 계속 헤매느냐, 아니면 벽을 뚫어서 출구를 만드느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점차 늘어나는 남성 비정규직에게도 해당되는 고민이다.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이 커피전문점만큼 흔해지면서 이제 '투쟁 기간 100일' 정도 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우스개가 돌 정도다.

[오후 2시 30분] 부지런한 '집회 품앗이'

900일을 넘기고 있는 기륭전자 노조의 '밥그릇 투쟁'
 900일을 넘기고 있는 기륭전자 노조의 '밥그릇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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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섭씨와 미영씨, 이현주(28)씨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2001아울렛 철산점으로 이동했다. 이랜드 일반노조의 집회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이들을 포함해 50여명이 철산점 앞 정문에서 이랜드 상품 불매운동 등 집회를 열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다른 사업장의 집회나 시위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기자회견이나 집회에서든 그들의 오렌지색 조끼는 자주 눈에 띈다. 종희씨는 "다른 사업장에 연대를 다니다 보면 내부 결속에도 좋다, 장기 투쟁의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품앗이' 개념이 아니라 서로 힘이 되고, 그러면서 노동자라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보다 더 긴 싸움을 하고 있는 화학섬유연맹 산하 코오롱 노조와는 가족같은 관계라고 한다.

종희씨는 "코오롱 노조쪽에서 '이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기륭전자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두지 못한다고 하더라.(웃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희씨는 "단식·1인시위·연대투쟁 등 안 해 본 게 없다. KTX 등과 연대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대는 오래 가지도, 복직 성과도 내지 못했다. 싸움을 해야 하는데 기술에서 서툴렀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14일 기륭전자 노조는 싸움 2주년을 맞아 KTX·새마을호, 이랜드·뉴코아, 르네상스호텔 조합원들과 함께 여성 비정규직 연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김 분회장은 "계속 이어가려고 했는데, '왜 여성만 부각시키느냐'는 일부의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 비정규직만 살자'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비정규직 공동행동'으로 이어졌고, 사업장 단위를 넘어선 연대가 강조됐다.

처음엔 '여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비웃음도 있었다. '반찬값 정도 벌러 온 여자들이 힘들면 그만두겠지'하는 주변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덩치가 좋은 용역 직원들이 들이닥칠 때는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기륭전자처럼 끈질기게 버티면서 "남자들보다 더 질기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오후 3시 30분] "회사와도 싸우지만, 남편과도 싸운다"

동료들이 외부 행사에 다 나간 사이 은미씨는 5시 집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손바닥만한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24시간 사람이 있는 천막이 택배받기는 좋다"며 반갑게 택배 물건을 뜯는다.

큰 맘 먹고 인터넷에서 주문한 화장품이다. 노동운동에 잔뼈가 굵은 언니들이야 화장품에 관심도 없지만 20대 은미씨는 외모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그는 딸 다섯 중 막내딸로, 아들을 바라던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충돌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기도 한 보수 성향 부모님은 은미씨의 싸움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독산동에 작은 방을 구했다. 자연히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매일 '내일은 나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다음날 나오게 된다"면서 아르바이트를 위해 대형 할인매장의 계산원으로 원서를 낸 적이 있다.

회사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면접날 "기륭전자를 다녔다"는 은미씨의 말에 회사는 그를 고용하지 않았다. 은미씨는 "요즘도 블랙리스트가 있는 줄 몰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언니들은 "왜 기륭 출신이라는 말을 했느냐"며 다그쳤다.

그나마 비혼인 은미씨는 나은 편이다. 가족을 부양해서 하는 이들의 속내는 타들어간다. 두 아들을 둔 종희씨는 "남편과 많이 싸운다"고 토로했다. 종희씨는 "투쟁이 길어지면서 좁은 전셋집으로 옮겼다, 달세를 낼 형편이 안 됐다"며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우리 가족 연봉이 63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아이 둘 교육은 물론 먹고 사는 것도 힘들어서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며 "남편만큼 버는데도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노동은 보조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기륭전자는 여성 가장이 많다"고 강조했다.

형편이 어려운 그가 장기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종희씨는 "전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부당하게 해고됐다. 바로 위 관리자가 추가 업무, 주말 근무로 혹사를 시켜서 문제제기를 몇 번 했더니 '근무 중 잡담'을 이유로 잘렸다"며 "앞으로 어디에서 일하든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람좋은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석순씨. 3년여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야 할 일터가 있기에 '좌절은 금지'다.
 사람좋은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석순씨. 3년여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야 할 일터가 있기에 '좌절은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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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과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면서도 고이 간직한 작업복. 기륭전자 노조원들이 작업복을 입고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기를 기대해본다.
 비정규직 차별과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면서도 고이 간직한 작업복. 기륭전자 노조원들이 작업복을 입고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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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시간은 가도 변함없는 그들의 집회

조합원 10명이 부지런히 준비한 집회가 열렸다. 각 사업장에서 모여 80여명이 기륭전자 정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은미씨는 사회자 마이크를 잡았고, 인섭씨 등은 바닥 깔개를 부지런히 공수했다. 상급단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도 자리를 잡았다.

한두번 해본 집회가 아니니 역시 손발이 척척 맞다. 앉은 모양새가 지난해 8월 여성비정규직 연대투쟁을 밝혔던 집회와 비슷하다.

천막 앞에는 미영씨가 준비해둔 투쟁 일자 팻말이 951일까지 있다. 이면지 개수만큼 적다보니 951일까지 됐다. 그 날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이들의 싸움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 노동운동도 변했다. 은미씨처럼 곱게 화장을 하고 집회에 나오는 여성들도 많아졌고, 남동생 학비를 벌던 20대 여성들은 아이들의 사교육 비용을 벌기 위한 중년 여성들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80년대와 다름없는 구로공단 여성의 노동환경은 언제쯤 변할 수 있을까.


태그:#여성의 날 , #기륭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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