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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60세-주민등록상 57세). 섬진강 인근에서 40여년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산 사람.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 등의 시집을 내어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유명 시인. 한결같은 모습으로 두 가지 직업에 충실해온 그가 제자들을 이끌고 서울로 상경했다. 초등학교 2학년 꼬마 제자들의 글을 모아 출판한 <여치가 거미줄에서 탈출했다>라는 시집을 연결고리로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기 위해서다.

40여 년을 섬진강변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산 이 맑은 시인은 한편으로 사회참여도 꾸준히 해왔다. 2002년부터 전북환경운동연합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고, 용산공원의 개발을 반대하는 성명서에도 참여하는 등 환경운동에 참여해왔다. 또 ‘에다가와 조선학교-재일 민족학교’를 돕기 위한 모금회와 창조한국당 발기인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도 해왔다.

"태어났으니까 잘 살자! 만났으니까 잘 살자!"를 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 시인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가 궁금했다. 잘 살아가기에 충분한지.

<오마이뉴스> 연중기획 '저자와 한밤을 보내다' 에 참여한 김용택 시인이 독자와의 대화에 나선 모습
▲ 김용택 시인 <오마이뉴스> 연중기획 '저자와 한밤을 보내다' 에 참여한 김용택 시인이 독자와의 대화에 나선 모습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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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과 마주한 것은 2월 21일 오후 7시였다. 장소는 강화도에 위치한 오마이뉴스의 교육기관인 오마이스쿨의 세미나실. 그는 자신이 엮어낸 제자들의 시집이 ‘저자와 한밤을 보내다’라는 오마이스쿨 연중기획의 첫 번째 순서로 선정되어 저자인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이 기획의 일부로 ‘시인과의 대화’라는 코너가 오후 7시부터 1시간동안 열린 것이다.

“어떻게 질문을 받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합니까? 제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합니까?”

시인의 질문에 사회자가 우선 일방적으로 이야기해달라는 답변을 하자 웃음이 터진다. 그는 자신이 선생님을 하게 된 사연부터 시작했다.

"제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 덕치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 때 우리 반 학생들이 18명이었는데 저만 중학교를 갔어요. 굉장히 가난한 마을이었죠. 그리고 1968년 무렵에는 선생 숫자가 너무 모자랐어요. 국가에서 수급을 못하니까 고졸자한테 교사 시험을 보도록 했습니다. 4개월 동안 강습을 시켜서 선생을 내보냈고 그때 우연히 선생을 하게 된 거죠."

“그때 난 선생이란 직업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보러 갔는데, 나만 붙어버리고 친구들은 다 떨어져버렸어요. 공부를 하나도 안했는데 된 거죠. 그때부터 내 운명이 완전히 바뀐 셈이죠.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어요."

우연히 시작했다는 선생님이란 직업에 그는 40여년을 한결같이 지내왔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말이 빨라진다.

"전 거의 2학년만 가르쳤어요. 작년에는 2학년이 4명이었죠. 요 근래 계속해서 한 반에 3명, 4명이었어요. 가르칠 때는 정말 편하죠. 월급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웃음). 올해는 이상하게 아이들이 늘어나서 14명이 되었어요. 이제야 제 월급 받는 것 같죠."

간간이 농담이 곁들여진 그의 표현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왜 2학년만 주로 가르쳐왔을까?

"2학년은 일단 말을 안 듣습니다. 말 안 듣는 놈들 죄다 2학년이에요. 놀랍게도 안 듣습니다. 인간들이 세상을 살며 만들어 놓은 언어와 논리가 이들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는 거죠. "
"그러나 2학년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거예요. 우리 인간들은 세상을 살면서 가지고 싶어 하는 소유욕망 이라는 것이 있죠. 우리 어른들이 2학년 아이들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빼앗아도, 하루 종일 빈손으로 다녀도 너무 너무 재밌어 하는 것이 2학년입니다. 어쩜 그럴까요.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는가?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곧 이야기는 시를 잘 쓰는 방법으로 넘어갔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선 한 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바라볼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옮겨간다.

오마이스쿨 세미나실
▲ 시인과의 대화 현장 모습 오마이스쿨 세미나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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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가냐 마냐가 우리 국가의 교육 이념이 되어버렸어요"

“사람들이 너무 바쁩니다. 근데 왜 바쁜진 몰라요. 허허. 바쁘다보니 바라보는 것을 잊었어요. 사람에게선 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어요. 자세히 보면 나쁜 놈도 보이고, 더 자세히 보면 중요한 게 보입니다.”

“정치..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자세히 보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정치인들이 저만 자세히 봅니다.(웃음)”

이어 이야기는 사회의 비판세력에 대해서 뻗어나간다.

“신념이 있는 사람이 지성인인데, 지성인이 없어요. 대학에 교수가 없어요. 양극화, 기후변화, 국토파괴, 환경, 교육문제가 심각해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대학교수들이 썩어버렸어요. 언론도 썩어버렸어요. 다들 지성적인 삶의 태도를 버렸어요. 우리의 삶, 시대를 정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육 분야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그는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을 40여년간 몸소 가르쳐온 선생님이다. 그가 생각하는 현 교육제도의 문제는 무엇일까?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창조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혁명정신 비슷한 거죠. 지금보다 나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육인 거죠. 그러나 모든 국민들의 목표가 무조건 서울대를 가냐 마냐가 되었어요. 우리 국가의 이념이 되어 버렸어요. 또 교육의 이념이 되어 버렸어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가? 이것이 교육의 이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릴 때부터 창조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을 길러지겠냐 이겁니다. 바꿔야 돼요.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까. 어렸을 때부터 창조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시골학교 선생님으로서 농촌아이들이 도시로 떠나는 현실을 막을 방도가 없느냐는 질문에는 조금 다른 의견을 피력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막겠는데…(웃음). 도시로 떠나는 걸 막을 방도가 없죠. 근데 꼭 도시와 농촌을 구분할 필요는 없어요. 도시도 자연이 많아요. 구분하는 것은 모순이에요. 도시에서도 충분히 자연을 접할 수 있어요.“

환경운동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그에게 환경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한반도 대운하’라는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물었다. 우선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대운하는 그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대운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운하는 못하지. 그건 말도 안되지. 선거용인거 같어. 어떻게 해. (국토가) 좁은데.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좁은 땅덩이에 무슨 운하야!! 말이 안되는 소리야. 청계천 했으면 됐지. 논리와 이념 이전에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죠. 국민들이 가만히 있간디!!“

대운하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쏟아진다. 이렇게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자연환경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물었다. 

-자연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오셨는데요. 자연환경을 위해서 우리 사람들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너무 개발 위주로 가고 있어요. 개발할 것과 보존할 것을 잘 생각해서 가려내야해요. 취사선택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너무 자연을 함부로 하고 있어요.”

-자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지요.”

그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이제 퇴임을 고민하고 있다는 그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자.

"정말 이제 학교는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새로운 삶을 살 겁니다. 환갑에서 그만둔다면 지난날을 보기 보단 일흔 살 먹었을 때 뭐하고 있을까 생각해야죠. 학교는 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든, 뭘 하든 지금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암튼 절대로 학교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그는 지난 40여년간 몸담아온 학교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시는 시대정신을 부둥켜 안고 있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 시는 희망을 준다"라며 시의 의미를 해석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그가 학교를 떠나 어떤 '시대정신'을 부둥켜 안고 살아갈지 앞으로의 삶이 궁금해진다.


태그:#김용택, #섬진강, #오마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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