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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구병 선생이 소개하는 변산공동체 2월 16일 오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공동체에서
ⓒ 문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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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공동체에는 고층 빌딩도 매연도 없다. 높아봤자 2층 건물이 고작이고 넓은 들판과 맑은 공기는 아직도 세상은 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사중인 대안학교 건물 2층에서 바라본 모습.
 변산 공동체에는 고층 빌딩도 매연도 없다. 높아봤자 2층 건물이 고작이고 넓은 들판과 맑은 공기는 아직도 세상은 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사중인 대안학교 건물 2층에서 바라본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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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많다고요? 어서 내려오셔야 되겠네요.(웃음)"

변산공동체의 '학교 선생님' 영재(28)씨가 나에게 한 말이다. 지방에 비해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다고 말하자 영재씨는 양쪽 눈을 찡그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덩달아 나도 웃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성별도 출신도 학력도 재산은 물론, 과거도 중요치 않다. 공동체란 바로 그런 곳이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 위치한 변산공동체는 총 20가구 50여명이 모여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도시생활에 깎이고 잔인한 세상살이에 지쳐, 혹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오밀조밀 대안을 찾으며 삶을 꾸리는 곳이다.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그리 하시게"

장장 5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고 마침내 변산공동체에서 내준 숙소에 도착한 때는 15일밤 11시였다. 차에서 내릴 땐 공기가 싸늘해 온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볼 때는 "우와!"하고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광활한 밤하늘 위에 별들이 반짝반짝 수놓아져 있었다. 별을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였던가.

그 시각 변산공동체 식구들은 마을 공동식당에 모여 올해 농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손님'들이 머무는 방 2개짜리 숙소는 식당 바로 앞에 있다. 공동체 주민들께 인사를 드리고 숙소 문을 열자, 김희정(40)씨가 방안에 앉아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김희정(40) 아저씨. 변산공동체가 초기에 세워질 무렵부터 일해왔던 분이다.
 김희정(40) 아저씨. 변산공동체가 초기에 세워질 무렵부터 일해왔던 분이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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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시게, 식사는 했어요? 보일러에 불을 지펴놔서 지금은 방이 뜨뜻한데, 새벽되면 추울 거예요. 허허… 준비는 단단히 했죠?"
변산공동체가 처음 만들어진 1995년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는 김희정(40)씨가 우리를 안내했다. 항상 밝게 웃는 김씨는 천상 농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변산공동체는 독립가구와 공동가구가 함께 모여 있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이다. 들어오는 데 어떤 제약이나 조건도 없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것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의 '자유'다.

또 이 곳에선 공동체에서 오래 살 사람이 아니면 모두 '손님'이라고 부른다. 기약 없이 잠시 머물다 가겠다고 하면 단지 "그렇게 하시게나"라고 말할 뿐이다.

통나무집·황토집... 이제 기숙사 지어질 차례

변산공동체 마을은 여느 농촌마을이 그렇듯이 한적해 보였다. 도시의 고층빌딩들 대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여느 농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개구쟁이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동체 생활을 하는 부모의 자식들이다. 산과 들, 개울과 도랑이 이 곳 아이들의 유일한 학교다. 

시원하게 펼쳐진 농촌 풍경은 전자파와 콘크리트에 갇혀버린 기자의 눈을 해방시켜 주었다. 멀리 보이는 산도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굳이 산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곳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을 만큼 사방이 뻥 뚫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궁이, 냉이 밭, 자전거, 소나무 숲
 아궁이, 냉이 밭, 자전거, 소나무 숲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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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모양도 다들 가지각색이었다. 도시의 그것처럼 모든 건물이 각져 있거나 똑같이 생기지 않았다. 어느 집은 자른 통나무를 벽돌삼아 그 사이에 황토를 넣어 올렸고, 어떤 집은 아예 황토벽돌로 벽을 만들었다. 처마에는 메주가 새끼줄에 꼬여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어느 집엔 말라 비틀어진 '곶감'이 둥글둥글 달려 있었다.

이 곳에는 유독 감나무가 많다. 지금은 겨울이라 감 농사가 끝나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감나무들 덕분에 공동체 식구들끼리 홍시도 나눠먹고 곶감도 맘 놓고 질겅였더란다. 더러 내다 팔아서 아이들 옷도 사 입히고, 공동체 식구들끼리 막걸리 잔치도 했단다.   

공동체 주민들의 일터다. 한쪽에는 마늘 밭이 있고, 한쪽에는 통나무 적재소가 있다.
 공동체 주민들의 일터다. 한쪽에는 마늘 밭이 있고, 한쪽에는 통나무 적재소가 있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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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에서 대안학교 기숙사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깍이와 돌 나르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6일 오전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에서 대안학교 기숙사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깍이와 돌 나르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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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변산공동체에서는 3월에 문을 여는 변산공동체학교 기숙사 만들기 작업이 한창이다. 많은 식구들이 기숙사 건립을 위해 주춧돌을 모으고, 통나무를 다듬고, 황토벽돌을 빚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학생 30명, 교사 10명이 생활할 수 있는 학교·도서관·식당·작업실은 이미 모두 완성돼 있는 상태다. 이 곳에서는 먹을거리는 물론, 살아가는 집과 생활공간들 모두 손수 만들고 있다.

커다란 돌을 나르는 윤구병(65) 선생.
 커다란 돌을 나르는 윤구병(65) 선생.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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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건 더불어 살기위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다. 강제는 아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도 기숙사 만드는 일에 동참했다. 우리가 주로 했던 일은 냇가와 과수원 등지에서 기숙사 주춧돌로 쓰일 돌 수집하기.

어느날 함께 나선 윤구병 선생은 "돌 줍기의 진수를 보여주지"라며 괴력을 발휘했다. 젊은 사람들도 감히 들지 못할 돌을 거뜬하게 옮기는 모습에 일꾼들이 드는 평균 돌 크기는 더 커졌다.

서울내기 기자 야단맞았다... "어디서 함부로 비누를!"

공동체 식구들은 독립가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밥을 먹는다. 겨울철 식사 시간은 아침의 경우 오전 7시 30분, 점심 1시, 저녁은 6시 30분이다. 공동식당의 건물에는 큼직한 거실이 있고, 한쪽에는 거실과 연결된 주방이, 옆으로는 피아노와 기타가 있는 방이 한 개 있다.

모든 메뉴는 유기농으로 만들어진다. 화학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식사 후에는 밥 그릇을 들고 각자 설거지를 한다. 육식 등 기름진 음식은 피하기 때문에 세제 사용은 거의 없다. 간혹 닭을 잡는 등 불가피한 상황에만 빨래 비누를 쓴다. 그걸 모른 기자는 빨래 비누를 듬뿍 풀어 설거지를 하다 한 소리 듣고 말았다. 

"어디서 함부로 비눗물을 풀어요! 우리는 정말 웬만해선 비누 안 써요. 그 물이 다 어디로 가겠어요. 우린 수도꼭지 틀어서 바로 물먹는데, 그 물이 더러워지면 안되죠."

화장실이다. 문이라고 해봤자 가리개에 불과하고, 문틈으로는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인다. 문손잡이는 있지만 문 잠금쇠는 없고 '일'을 보는 동안 손잡이는 앉아서 잡기 힘들정도다.
 화장실이다. 문이라고 해봤자 가리개에 불과하고, 문틈으로는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인다. 문손잡이는 있지만 문 잠금쇠는 없고 '일'을 보는 동안 손잡이는 앉아서 잡기 힘들정도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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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공동체의 화장실은 일반 시골마을의 '푸세식'과도 다르다. 일명 '친환경 화장실'이다. 이들에게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흙'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똥'이라는 단어도 대변이니, '큰것'이니 등의 다른 말로 바꿔 쓰지 않는다.

첫날 우리에게 화장실을 안내해준 박함선(19)양은 "남자 분들 소변은 그냥 아무데서나 하시면 되고, 똥은 제 설명을 잘 들으셔야 돼요"라며 사용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첫째, 똥바가지에 똥을 싸세요. 단, 흘리지 말고 조준을 잘하세요. 둘째, 바가지를 들고 따로 모아놓는 곳에 버려 주세요. 셋째, 똥바가지에 '겨'를 골고루 뿌려주세요. 겨를 뿌리면 냄새가 전혀 안 나요, 아참! 저희 화장실은 문 잠그는 게 없어요. 누가 온다 싶으면 "으흠!" 헛기침을 내어 안에 누가 있다고 알려야 해요."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의 친환경적인 화장실 내부. 쌀겨가 깔려 있는 똥바가지에 똥을 눈 뒤 통에 모아두는 방식이다.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의 친환경적인 화장실 내부. 쌀겨가 깔려 있는 똥바가지에 똥을 눈 뒤 통에 모아두는 방식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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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붙은 사용안내문.
 화장실에 붙은 사용안내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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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의 화장실은 더럽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변산공동체에 온 첫날 우리는 화장실 사용법을 배우면서 같은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저 곳에서 일을 보지?', '그냥 2박 3일 참자' 허나 아침·점심·저녁으로 먹은 잡곡밥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의 힘'에 의해 화장실을 찾게 되었다.

칠흑같은 밤은 귀신이 나올 듯 스산했다. 달빛은 오히려 푸른 빛을 내며 더욱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화장실 근처에 있던 닭장에선 닭들이 간혹 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무서워 돌아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기자는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 근처 볏짐이 쌓인 곳으로 갔다. 소변을 보려던 찰나, 닭들과 눈이 마주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얘네들이 낳은 달걀로 변산공동체 식구들은 계란국을 먹는다. '아주' 가끔은 이 닭들이 좋은 단백질 식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얘네들이 낳은 달걀로 변산공동체 식구들은 계란국을 먹는다. '아주' 가끔은 이 닭들이 좋은 단백질 식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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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학교, 중산층 자녀는 가출했을 때만 환영"

"시골 생활이 따분하지 않냐고요? 오히려 매번 똑같은 일상의 도시생활이 지겹죠. 머릿속이 깨끗해져요, 오히려 생각도 많아지고요. 모든 게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죠. 지금 부는 이 바람이 너무 시원하잖아요."

변산공동체학교 선생 윤영재(28)씨는 지그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오는 3월이면 변산공동체는 부산해질 것이다. 중1부터 고3까지 각 학년 당 5명씩 학생을 선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윤구병 선생은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만 뽑아서 무상으로 교육시키고 함께 생활할 예정"이라며 "단 중산층 이상은 가출한 자녀만 환영"이라고 신이 난 듯 말했다.

학생들이 들어오면 변산공동체는 더 바빠질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은 바뀌지 않더라도 규모가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공동체 식구들의 표정은 다소 기대에 차 보였다. 변산공동체는 1995년 처음 시작했을 당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멈추지 않는 도전을 하는 중이다.

한밤 중의 초가집.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살금살금 다가가 귀을 대보고 싶다.
 한밤 중의 초가집.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살금살금 다가가 귀을 대보고 싶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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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구자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변산공동체, #백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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