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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로 집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반지하도 아니고 3층에 사는데 말입니다. 이사 온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 속이 상합니다. 아니 저보다, 같이 사는 우리 형의 속이 더 '물난리' 났습니다. 저는 고향인 김해에서 서울 형 집으로 와 얹혀살게 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달간의 이야기와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고시원·월세방 뒤로 하고 4년 만에 9평 전셋집으로

4년 전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서울에 처음 둥지를 튼 건 우리 형이었습니다. 김해에서 신림동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긴 우리 형은 키가 184cm나 되는 거구입니다. 우리 형은 너비 1미터짜리 싱글침대에서 주말이면 시체처럼 부동자세로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옆방에 살던 취객과 매일 밤 상대해야 했으며, 고시원 실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들이닥친 '양상군자' 때문에 벌벌 떤 적도 있다고 합니다. 차라리 회사에 남아있는 게 더 편해 일부러 야근을 한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지난 6월, 거의 4년 만에 서울에서 전세 6000만 원짜리 단칸방을 얻은 우리 형 집에 무임승차했습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괴물 도시' 서울에 아예 오래 있을 작정으로 온 것입니다. 형은 고향에서 올라온 동생과 함께 살려고, 더 넓고 편리한(?) 위치에 있는 단칸방을 구해야 했습니다.

창문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화사하게 집을 밝힌다.
▲ 비오기 전 평화로운 우리 집 창문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화사하게 집을 밝힌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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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많아 좋았던 전셋집, 방충망은 어디에?

그런데 그 전셋집이 알고 보니 골칫덩어리였습니다. 9평짜리 단칸방에 창문이 5개나 되어서 좋아했는데, 하나 같이 방충망이 없었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져 갔습니다. 주인 허락 없이 벽에 구멍을 뚫어 에어컨을 설치하지도 못할 판이었고, 워낙 몸에 열이 많았던 우리 형제는 밤엔 선풍기 없이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창문을 반드시 열어야 했습니다.

물론 창문을 열면 시원했습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노라면 '휘센' 부럽지 않았죠. 허나 바람과 함께 굴러들어온 모기랑 하루살이 녀석들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창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모기들은 피를 갈구했고, 목표물은 지방에서 온 형제의 핏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기향과 스프레이로 저항하던 우리들은 끝내 무릎을 꿇고 창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창문이 5개나 되는데, 단 하나의 창문도 열지 못했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무용지물인 창문들이 야속해 보였습니다. 창문마다 블라인드를 설치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사생활을 지키는 것보다 더 급한 건, 피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주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동산에다 호소했죠.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습니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샤시로 방충망을 설치하지 마시고, 철물점에서 파는 걸로 사서 다시고 청구해 주세요. 그럼 그 금액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에어컨은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깍쟁이들'

속으로 이랬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인지 모르지만, 세입자가 별 수 있겠습니까. 모기장은 사서 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 놈들이 알고 보니 더 큰일이었습니다. 하루살이 녀석들은 특히나 번식력이 강했습니다. 습하고 음침한 곳이면 어김없이 녀석들의 좁쌀만 한 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의 알은 마치 프라이팬에 잘 구운 '깨'같이 생겨서 더 기분이 나빴습니다. 하루살이 알과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입니다. 이제는 밥을 비벼 먹을 때도 깨를 넣지 않습니다.

긴급사태! 장마가 천장에 구멍을 내다

그러던 중,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마로 인해 우리 집에 닥칠 비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3층이었고,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이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다니는 스쿨의 조별 과제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편하게 토론하기 위해 집으로 조원들을 초대했습니다. 회의의 성과도 나오고 약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때 고향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아들아, 서울에 비가 많이 온다던데, 너희 집 괜찮으냐?"
"예 저희 집 3층이잖아요. 반지하도 아니고 괜찮아요."
"저번에 보니 천장에 얼룩이 몇 군데 졌던데, 물 새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럼요, 괜찮습니다. 걱정마세요."

바로 그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거대한 물 풍선처럼 천장이 부풀어 올라 밑으로 축 처져 있는 게 보였습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손으로 살짝 눌러보니 정말 안에는 물이 차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엄마, 잠깐만요."
"으악~!!!"

일은 순식간에 터졌다.
▲ 구멍난 천장 일은 순식간에 터졌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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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풍선은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져버렸습니다. 물은 침대 매트리스며 선풍기 위에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저보다 같이 집에 있던 조원들이 더 놀라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잠깐 저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천장에서 물이 터지다니. 순간 더 걱정된 것은,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틀림없이 크게 걱정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필 엄마랑 전화할 때 이 일이 터져가지고.'

집에서 비오는 날, 형과 소주 한 잔 먹다

사태는 다행히도 빠르게 수습되었습니다. 조원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편으로 형에게 이 사실을 서둘러 알려야 했습니다. 야근을 하던 형은 화가 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은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노발대발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전에 살던 사람도 집주인이나 부동산 직원들도, 비와 관련된 단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저도 속상했지만, 형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고시원 석 달, 월세 원룸 3년을 살다가 겨우 창문 5개나 달린 전셋집으로 이사 왔는데,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물난리가 났으니, 얼마나 속이 탈까요. 전세이긴 하지만, 이제 "내 집이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기쁜 마음으로 왔는데 말이죠. 저는 형이 이사 온 날 짐을 다 정리하고 난 후 그 표정을 기억합니다.

"아,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

형은 끝내 소주 한 잔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젖은 매트리스를 안쪽으로 젖혀두고, 좁은 공간에 2인용 상을 폈습니다. 둘이서 통닭과 소주를 먹었습니다. "똑! 똑! 똑!" 비는 여전히 잔혹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물이 새는 곳에 놓아둔 바가지에는 물방울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장관을 본 형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제 형 집에 무임승차하는 몫으로, 불평 없이 집안일을 좀 더 해야겠습니다.

처참해진 우리 집 풍경
▲ 장마후 처참해진 우리 집 풍경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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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취, #장마, #방충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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