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왕세종>. 고뇌하는 태종.
 <대왕세종>. 고뇌하는 태종.
ⓒ KBS

관련사진보기


KBS 1-TV <대왕세종>에서 현재까지 가장 두각을 보이는 등장인물은 태종 이방원이다. ‘차마 칼을 빼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니 빼들 수도 없는 자의 고뇌’가 태종 이방원에게서 잘 표현되고 있다. 태종 역 김영철의 표정 연기는 이 드라마의 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정한 권력자 태종 이방원. 그래서 후세에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된 태종 이방원. 그런 그에게도 고뇌는 있었다.

인정상 차마 칼을 빼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칼을 아니 빼들 수도 없는 자의 고뇌를 그 역시 갖고 있었다. 그렇게 모진 사람을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는 그 나름대로는 ‘인간’과 ‘군왕’ 사이에서 고뇌를 하는 사람이었다.

백성 앞에서 혹독했던 군왕. 그런 그도 백성들의 고난을 알고는 있었다. 그런 그의 내면세계를 잘 반영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태종 15년(1415) 7월에 숭례문 행랑의 일부가 무너졌을 때에 태종이 어전회의에서 행한 발언으로부터 그런 고뇌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태종 15년, 숭례문의 행랑이 무너지다

음력 7월이니까, 양력으로 치면 대략 8, 9월이었을 것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다. 이따금씩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는 계절이다.

태종 15년 7월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곡식이 쓰러지고 나무가 뽑힐 정도의 태풍이 불어 닥쳤다. 그 와중에 숭례문도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 숭례문 안의 행랑 일부가 무너진 것이다.

무너진 숭례문. 태종 당시에는 숭례문 안의 행랑이 무너졌다.
 무너진 숭례문. 태종 당시에는 숭례문 안의 행랑이 무너졌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국보 1호’(물론 오늘날의 표현이긴 하지만)가 피해를 당했다는 소식에 태종은 놀랐다. 7월 17일에 어전회의를 소집한 태종은 병조판서 박신에게 호통을 쳐댔다. 이전에 그가 숭례문 행랑 공사의 감독을 맡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처음부터 잘못 지었기 때문이다. 일을 맡겼는데 (네가) 마음을 다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옳은 일이냐?”

뭐라 할 말이 없는 박신. 그저 죄송하다며 사과만 할 뿐이다.

이때 안성부원군 이숙번과 이조판서 박은이 나선다.

“나무를 가지런히 깎지 못하고 또 모나고 서로 맞지 않아서 곧 무너질 판국입니다. 새로 지어야 합니다.”

박신도 그게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숭례문 행랑을 새로 지어야 한단다. 돈도 들어가고 인력도 투입돼야 한다. 태종 이방원의 입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무엇이 걱정되어서 탄식을 한 걸까? 한숨을 내쉰 뒤에 이방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년에도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소비해서 (숭례문 행랑을) 만들었는데, 지금 이와 같으니 이것이 어찌 장기적인 대책이 되겠는가?”

본문에 인용된 태종의 발언. 줄 친 부분에 “往年勞民費財而構成, 今乃若此, 豈久遠計哉”라고 쓰여 있다. <태종실록> 태종 15년 7월 17일자 기사.
 본문에 인용된 태종의 발언. 줄 친 부분에 “往年勞民費財而構成, 今乃若此, 豈久遠計哉”라고 쓰여 있다. <태종실록> 태종 15년 7월 17일자 기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에 지은 숭례문 행랑을 또다시 지어야 하는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에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숭례문 행랑을 새로 지어야 합니다”라는 대신들의 주청에 대해 그는 선뜻 “그래 새로 지어야지!”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혹독했던 군왕이지만, 그 역시 ‘또 어찌 차마!’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백성들 성금이라도 모아서 일을 벌여야지”라고 하지 않았다. “작년에도 백성들을 힘들게 했는데 …….” 그것이 그의 첫 반응이었다.

그때만큼은 백성들에게 미안했던지, 태종은 일반 백성들로부터 요역을 충원하지 않고 군인들을 복원공사에 투입했다. 숭례문 행랑 붕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3일간 가두었다가 석방시킨 다음에 공사현장에 내보냈다. 이때 숭례문 행랑도감제조로서 복원공사를 지휘한 사람은 유명한 황희였다. 

군인들 복원공사에 투입

가혹한 철권통치자 태종 이방원. 그에게도 인간의 눈물은 있었다. 눈물이 시키는 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훗날 두고두고 욕을 먹긴 했지만, 그런 그에게도 일정 정도의 따스한 마음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너진 숭례문 행랑 앞에서 결코 ‘건설맨’으로서의 재건축 의욕을 느끼지 않았다. 일단 미안해 하는 마음부터 가졌다. 또 숭례문이 무너졌다는 명분을 내세워 백성들의 돈을 거두고 그들을 요역에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작년에도 고생했는데 ……’라는 생각에 그는 일단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백성들의 경제를 살리겠다고 떠벌리면서 백성들의 호주머니에서 성금을 꺼내려는 이중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가 천륜의 의리마저 거역한 철권 통치자라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런 그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것이다.


태그:#대왕세종, #숭례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