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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에 시작해 14년 동안 영화팬들 사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EBS <시네마 천국>이 '장수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벌써 횟수로 689회를 맞이하는 <시네마 천국>은 떠들썩한 시청률 수치는 없지만 시나브로 입소문을 타며 마니아들로 하여금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게 만들게 한다.

 

이들의 힘은 무엇일까. '당신이 영화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한 것들'이라는 <시네마 천국>의 한 꼭지의 이름처럼 3인 3색 김태용, 변영주, 이해영 감독들이 영화에 대해 풀어놓는 색깔 있는 '수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감독,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은 남다른 시선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의 기호를 모두 획득한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주목 받는 3인의 감독들이다. 2007년 봄 개편을 통해 조용히 등장한 3명의 감독들이 여느 버라이어티쇼에서처럼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치고받는 언어의 난타전을 보는 것은 의외로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무한도전>의 박명수 캐릭터를 벤치마킹한다"는 변영주 감독의 말처럼 각 영화에 대한 평을 쏟아내는 다른 두 감독들의 의견을 '박명수'처럼 표독스럽게 받아치는가 하면, "내 안에 여배우 있다"며 여배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이해영 감독은 수많은 영화 안에서 구축되는 여배우의 이미지에 관해 자신만의 시선과 언어로 풀어낸다. 

 

이런 말의 향연을 점잖게 정리하는 '맑은 눈'을 가진 김태용 감독이 행여 말로 웃겨 보려다 못 웃기기라도 하면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처럼 두 감독이 "웃기시려거든 확신을 가지고 하세요"라며 거칠게 태클이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네마 천국>의 진정한 백미는 이들이 주제를 갖고 소개하는 영화에 대한 진지하고도 짚고 넘어가볼만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는 데 있다. 영화의 문법과 사조에 대한 담론이 다소 고루하고 현학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을 이들은 '수다'라고 하는 가벼운 형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잘난 체' 하지 않으면서 먹기 좋게 요리해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전문지 같은 성격을 띠는 <시네마 천국>이 영화 홍보와 스포일러성이 강한 기존 영화 프로그램과 차별화하며 14년간 프로그램을 견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방송'이라는 EBS의 채널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사시킨 여러 정통 영화프로그램들 속에 꿋꿋이 자신의 위치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교육'이라는 EBS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에 있기 때문이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에 대해 손쉽게 배설하는 TV와 인터넷의 공세 속에 영화를 생산하는 주체인 영화감독 3명이 나와 감독이라는 생산자가 아닌 관객이라는 소비자로서 영화를 관조하며 만드는 담론에 그 매력이 있다. <시네마 천국>이 고집스레 고수해왔던 '영화를 통한 세상보기'가 앞으로도 긴 항해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태그:#시네마천국, #김태용, #변영주, #이해영,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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