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수위가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에서 큰 반발이 있었고, 특히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천막도 치지 않은 채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무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한겨울 밤샘농성을 보러가며 우린 속으로 물었다. 왜 그들은 혹한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그 곳에 있는가. 누가 그들을 그 곳으로 이끌었는가. 하지만 그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 인턴기자가 그들과 함께 밤을 새며 노숙농성의 생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편집자말]
▲ 기상풍경 일어나고 있는 활동가들
ⓒ 송주민

관련영상보기


29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 앞은 한가하다. 하지만 인권위를 지켜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가득하다. 성당 올라가는 계단 위에 박스종이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천막도 없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화를 반대하며 2월 1일까지 노숙농성에 들어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다. 한겨울에 춥지 않은가? 추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들은 답한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한겨울 맹추위에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일까?

"맨몸으로 7년 만에 다시 명동성당 들머리에 눕습니다"

2001년 1월의 모습.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에서도 명동성당 들머리 앞 노상에서의 단식농성은 계속됐다.
▲ 7년 전 겨울 2001년 1월의 모습.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에서도 명동성당 들머리 앞 노상에서의 단식농성은 계속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공희정

관련사진보기


지난 29일 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현수막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 박옥순 활동가
▲ 2008년 겨울 지난 29일 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현수막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 박옥순 활동가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이들은 7년 전 똑같은 자리에 누워있었다. 수십 년만에 찾아온 한파라며 모든 사람들이 추위에 종종 걸음을 치던 시기였다. 그 엄동설한에 15명 남짓한 활동가들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인권위원회' 건설을 외치며 현재와 같은 차림으로 13일 동안의 밤낮을 천막 없이 맨 몸으로 농성장을 지켜야 했다.

"2001년 새해 첫날을 비닐 위에 내려앉은 얼음을 깨며 시작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추워서 잠이 들면 눈을 뜨는 것이,
눈을 뜨면 그 추위에 잠을 자야하는 밤이 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근데 바로 지금, 그때 제가 느꼈던 그 두려움과 참혹함으로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누웠습니다." (유해정 활동가의 일기 중)

당시에도 정부 관료들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들의 눈물나는 노력 끝에 결국 국가인권위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갖는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꼭 7년 후인 2008년 1월, 이들은 다시 명동성당으로 왔다. 독립문에서의 기습 시위을 마친 인권활동가들 30여명은 명동성당 입구 계단에 걸터 앉아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 직속화 방침 철회'를 외치며 다음달 1일까지 유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날은 매우 춥지만 7년 전처럼 우리가 물러설 곳은 없다"며 천막도 난로도 없는 곳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오늘 하루만 나는 미친 척하며 여기서 견디면 되겠지만 매일 갈 곳이 없어 길거리 여기저기에 종이상자를 이불삼아 잠을 청하다 얼어죽는 노숙자들이 너무 많기에,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기에 그 현실을 눈감고 매일 편하게만 잠들 수 없어, 오늘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쉽습니다. 추운 겨울 칼바람을 함께 맞으며 온기를 나누어줄 인권활동가 한 사람이 춥기만 한 겨울 날씨에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유해정 활동가의 일기 중)

[29일 오후 2시] "오늘 주무신다고요? 너무 감사하죠"

명동성당을 들어서자마자 '6일째' 농성에 돌입한다는 피켓이 눈에 띄었다.
 명동성당을 들어서자마자 '6일째' 농성에 돌입한다는 피켓이 눈에 띄었다.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오후 2시경 명동성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농성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
 오후 2시경 명동성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농성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명동성당 앞에 도착했다. 노숙농성 6일째 되는 날이다. 농성장소 주변을 살피고, 사진촬영을 했다. 하루 동안 같이 지낼 사람들과 서먹함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농성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런 저런 말을 던졌다. 오늘 밤 같이 이 곳에서 잔다고 하니 몹시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그래주신다면 우리들이야 좋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할 때인데…." 

그들에게 물었다. 엄동설한에 여기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다산인권단체에서 나온 박김형준 활동가가 대답했다.

"이번 사태는 이명박 인수위의 인권축소 첫걸음이라 생각해요. 7년 전 정신을 살리고, 여기를 거점으로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기 위해 추운데도 불구하고 고생하고 있는 겁니다."

이 곳의 하루 일정은 어떨까. 아침 8시와 오후 12시, 그리고 오후 6시에는 주변에서 선전전을 하고, 매일 저녁 7시에는 촛불집회를 연다. 밤에는 11시경에 취침해서 7시경에 일어난다고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농성 현장을 지키고, 24시간 후에는 교대하는 방식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계단 뒤쪽에 매우 활발해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 중인 유해정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7년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그 때는 새해도 여기서 맞았죠. 엄청 추웠어요. 오는 사람도 없었고, 연말연시 분위기에 휴무인 상점도 많았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많이 보편화된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도 5일째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농성 끝날 땐 500여명이 모였어요. 그땐 인권의제가 담론화 되어 사회진보진영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죠."

유씨는 정말 힘들었지만 평생에 못 잊을 보람찬 경험이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요? 정부조직 개편 안이 워낙 광범위하게 이뤄져서 이슈들이 많이 분산되어 있죠. 예를 들어 그 때는 인권문제에 여성단체 등도 나섰지만 지금은 자신들 할일이 바쁘니 우리 쪽 진영이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각 단체들이 각자의 영역에만 신경쓰다 보면 고립될 것 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그래서 이 농성을 통해 여러 단체들이 함께 모여 서로 고민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지 같이 논의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선전전] "추운 날씨에 저렇게 하는 사람 있으니 나라 발전"

6시 선전전 퍼포먼스 모습. 큰 전단에 든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6시 선전전 퍼포먼스 모습. 큰 전단에 든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저녁 선전전이 시작되었다. 홍보물을 나눠주고, 즐거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도 꽤 있었다.

올해로 63세 된다는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시민은 노숙농성에 대해 큰 호감을 나타냈다.

"아주 좋은 일 하는 거죠. 추운 날 와서 농성하는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나라가 발전하는 거예요. 나도 젊었으면 하는건데…(웃음). 인수위 하는 거 보면 도로 옛날로 회귀하는 듯해서 걱정이에요."

이 시각쯤 도착해서 촛불집회까지 함께 했던 앳된 소녀가 있었다. 그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는 혜민(20)씨는 "여기 있는 분들은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제 주위에 친구들은 이러한 것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면서 "또래들이 사회의 잘못에 대해 알아야 되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며 인권문제를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저녁 7시 촛불집회] '학생부터 노인까지 따뜻한 마음 모아'

여고생 네 명이 나란히 앉아 촛불집회에 참가한 모습
 여고생 네 명이 나란히 앉아 촛불집회에 참가한 모습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시간이 지나 어두워졌다. 어린 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농성장도 한결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촛불집회행사는 참석자들의 발언, 문예공연, 구호 외치기 등으로 이루어진다. 행사는 딱딱하거나 엄숙하지 않고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였다.

맨 앞줄에 여고생 4명이 나란히 앉아 눈길을 끌었다. 올해 17살이라는 이지은양은 "이 집회가 어떤 목적을 가지는 지 많이 알고 온 건 아니다. 단지 한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온 것"이라며 "나도 내 친구들도 인권에 대해 잘 모른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인권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참가 이유를 말했다.

뒤쪽에서 촛불집회를 지켜보던 천주교 인권위원회 조백정 활동가는 "7년 전에는 사회적 공감, 정치권의 합의가 어느 정도 있었고, 변질된 사항에 있어서 농성을 통해 바로잡았지만 지금은 당선되자마자 7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형국"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시민들 중에 싫은 소리 하는 사람보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많다"면서 "고생한다며 따뜻한 음식이라도 주고 가는 분들 있을 때, 그리고 선전물 나눠줄 때, 관심 가져주는 분들 있을 때 가장 힘이 난다"고 말했다.

촛불이 타들어갈수록 추위가 밀려왔다. 그러나 몸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경쾌한 음악이 나오자 참석자들은 노래를 흥얼거렸고,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하늘을 향해 흔들었다. 흥겨운 분위기 탓일까. 인권위가 독립된 채 우리 곁에 와있는 듯 했다.

[밤 11시 취침] '박스와 침낭에 몸을 의지하며...'

어느 덧 자정에 가까워졌고, 성당 앞은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이제 농성 현장은 취침할 준비로 분주하다. 다산인권센터에서 온 김진태 활동가는 "매일 10~15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이 곳에서 함께 취침한다"면서 "새벽 3~4시 사이에는 무지하게 춥다"고 말해 안그래도 잠자리 때문에 잔뜩 긴장한 나에게 겁을 준다.

잠잘 준비를 하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박래군씨가 보였다. 마음이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인상과 달리 박씨는 과거엔 민주화를 위해, 현재는 인권 향상을 위해 23년이라는 세월을 투사로서 헌신했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서 침낭을 덮고 앉아있는 그와 깜짝 심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취침준비는 거의 끝났다. 겹겹이 껴입은 옷에 바닥에는 스티로폼을 깔았다. 다행스럽게도 침낭은 준비되어 있었다. 침낭 위로 비닐로 두른 박스를 씌워서 조금이라도 바람을 차단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중무장(?)을 했다지만 천막도 없는 거리 한복판에서 한겨울에 잠을 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말없이 누웠다.

모두 잠든 시각. 취재에 지친 나도 옆에 누웠다. 애써 몸을 움츠려 보온을 유지해 보려 하지만 추위는 견디기 힘들다. 언제쯤이면 체온이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줄까. <한겨레. 사진기자가 자는 모습을 촬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찰칵찰칵….

[현장 인터뷰]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노숙농성장에서 박래군 씨 모습
 노숙농성장에서 박래군 씨 모습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 날씨가 꽤 쌀쌀하다. 몸 상태는 괜찮은가?
"춥긴 하지만 하루씩 돌아가며 자니까 참을 만 하다. 다행히도 오늘은 어제보다 덜 추운 듯 하다. 아직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다."

- 7년 전과 같은 곳에서 같은 사안으로 집회를 열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7년전 12월, 지금처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텔레비전에서 30년만의 강추위라고 보도하기도 했으니까. 신정 휴가를 보내고 출근한 시민들은 다음날인 4일에도 명동성당 앞의 우리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촛불모임, 일일 지지단식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들머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농성 때문에 물건너갈 뻔한 인권위 독립성을 가까스로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고생도 많았지만 보람도 컸던 집회였다.

그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여당이 된 지금 오히려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 아니겠는가."

- 워낙 조직 개편이 광범위해서 활동가들이 분산되어 투쟁하고 있다. 활동이 어려워질 것 같은데?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서 이 곳에 많은 사람들이 와준 것이다. 다른 문제들도 공동으로 연대할까 논의도 했지만, 효과가 적을 것을 우려해서 자기 영역을 책임지고 싸우기로 했다."

- 이명박 정부 아래 5년 동안 더욱 바쁠 것 같다.
"여태까지도 바빴는데 더 심할 듯하 다(웃음). 인권단체의 수도 적고, 역량도 작다. 아마도 '연대 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할 것이다. 하지만 쫓아다니는 식으로 하는 운동이 아닌, 침해받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직접 권리를 찾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 지난번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 없는 집회 문화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셨다. 이번 투쟁에 시민들이 얼마만큼 호응해 줄 것인지?
"국민들이 '국가위원회' 문제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단지를 돌리며 알리고는 있으나 큰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이다. 이번 농성은 급하게 시작해서 우선은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자'고 하였다. 여러 단체를 참여하게 하여 인권위에 대한 의견의 편차를 좁히려고 한다. 이후의 토의를 거쳐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절차도 필요하고,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방법 또한 고민해 볼 것이다. 이번 농성은 MB와 싸우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 이번 농성,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나?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후에도 인권위를 끊임없이 흔들려고 할 것이다. 이번 운동을 단지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키는데 국한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인권위를 탄생시킨 것도, 따끔한 충고를 마지 않았던 곳도 우리 시민단체이다. 인권위가 부족한 부분도 물론 많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인 인권위는 그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 2월 1일 이후 활동계획은?
"설까지 재충전을 할 생각이다. 2월 19일 국회 본회의에 맞추어 농성 투쟁하려고 한다. 여론도 좋고 승리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30일 새벽 6시]  "오늘은 좀 낫네요"

일어나는 모습을 담고 싶었던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났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 조금씩 하얀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명동성당 앞은 조용하다. 가끔씩 새벽기도 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측은해 보인다고 속삭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러고 있으니 왠지 무섭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하나둘 농성하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김진태씨는 옆의 동료에게 침낭을 덮어주고 있었다. 어젯밤 춥지 않았냐는 질문에 "괜찮네요. 오늘은 좀 나은 편이네요"라고 대답한다. 박래군씨도 어젠 한 겹 더 덮었더니 조금 낫다고 말했고, 처음 이 곳에서 잠을 잤다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마토씨도 어젯밤은 크게 무리가 없었다고 했다.

지나가던 한 여성이 노숙농성 중인 우리가 추워보였는지 베지밀 10병 정도를 주며 부끄러운지 뛰어갔다. 따뜻한 베지밀을 손에 움켜잡고, 잠시나마 몸을 녹였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따스함. 이렇게 관심 쏟아주는 시민들이 있어서 추운 날씨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운 날씨에 취침 준비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
 추운 날씨에 취침 준비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아침 7시 기상 후 천막과 이불을 개고 있는 활동가들
 아침 7시 기상 후 천막과 이불을 개고 있는 활동가들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농성 7일째 날이 밝았다
 농성 7일째 날이 밝았다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30일 오전 8시 선전전]  "우리가 내미는 손이 무색하지 않도록..."

9시 교대 전 마지막 선전전이 시작되었다. 명동 성당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인권위에 대해 쉼 없이 알렸다. 추운 날씨고,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빠르게 지나가는 시민들이 많았다.

열심히 홍보물을 뿌린 다산인권센터 최성규 활동가는 "아침에 출근하시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간혹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너무 앞만 보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며 "우리가 내미는 손이 너무 무색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문제인데, 국민들이 조금씩만 더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권문제는 우리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마토씨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시민들에게 홍보물 나눠주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속으로는 좀… 농담이에요, 기자님께서 카메라를 계속 들이대시니까 사람들이 안 오시는 거잖아요!(웃음)"라고 농담 아닌 농담으로 답했다.

아침 선전전에 나서는 김진태 활동가의 모습
 아침 선전전에 나서는 김진태 활동가의 모습
ⓒ 송주민

관련사진보기


오전 9시. 그들은 교대를 했고, 나는 취재를 마쳤다. 꽁꽁 언 몸을 움츠리면서 하루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들은 말한다.

"앞으로 볼 일 많을 것 같네요. 여기가 우리 집이 될 줄도 모르거든요!(웃음)"

이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헤어지긴 싫었다. 그러나 이 현장에서 또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1월말, 입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까지 겨울이 지속되어야 하는가. 인수위는 이들이 견뎌내고 있는 추운 겨울이 보이는가.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김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인권위, #활동가, #노숙농성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