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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교생들이 생활하는 천막에 2008년에는 강의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출교생들이 생활하는 천막에 2008년에는 강의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 김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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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8시경, 출교생들이 650일째 생활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본관 앞 천막을 찾았다. ‘2008년 새해에는 반드시 강의실로 돌아간다!’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출교생들의 바람 대로 2008년에는 파란 천막이 아닌 강의실에서 그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헌 수석부장판사)는 고려대 출교생 7명이 학교를 상대로 낸 출교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출교생들은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고려대 출교징계를 무효판결했지만 학교측의 항소로 현재 사건은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천막 안에서는 여느 때보다 활기찬 소란스러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천막 안에 있던 출교생 두 명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외풍 탓에 천막 안 공기는 쌀쌀했다. 무릎에 이불을 덮고, 얼은 몸을 녹이며 강영만(컴퓨터교육학과, 27)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던 조정식(법학과, 26)학생도 간간히 이야기를 거들었다.

고려대학교 출교생 중 한 명인 조정식 학생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출교생 중 한 명인 조정식 학생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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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결정에 대한 소감이 어떤가.
"우선 기뻤다. 그리고 확실히 복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하고, 그동안 염려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 제일 먼저 부모님께 연락드렸다.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신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며 ‘빨리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 그래도 학교가 항소방침을 고집하는 한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남은과정은 무엇인가.
"오늘 임종인 의원에게 축하 전화가 왔다. 변호사 출신이라 이번 법원의 결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판결은 실천을 강제하지 않지만, 가처분은 실천을 강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내일 아침부터 발효되어 바로 고대 학생 신분을 회복할 수 있다."

이때 옆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던 조정식 학생이 들뜬 목소리로 거들었다. “바로 학생증 만들어야지. 이제 법대도서관도 갈 수 있겠다.” 강영만 학생이 이어 말했다.

"설사 2심에서 패소해도 대법원 판결 날 때까지 학생 신분 유지가 가능하다. 3월 달에 수강신청하고, 복학할 것이다. 출교 효력정지가 발효되면 빠른 시간 내에 복학을 위한 절차를 학교에 요구할 것이다. 이기수 총장이 일단 복학은 시키겠지만 항소심은 진행하겠다고 한다. 법망은 뚫린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가 또 무엇을 할지, 어떻게 빠져나갈지 몰라 걱정이다. 학교가 더 이상 꼼수부리지 말고, 복학시켜줬으면 좋겠다."

- 출교처분을 받은 이후 학내외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나.
"학내에서는 서명운동, 토론회, 주점, 모금, 대동제 부스 마련 등의 활동을 했다. 외부적으로는 교육계, 시민단체와 시민사회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삼성으로부터 억압받는 사람들, 삼성해고자복지투쟁위원회, 시사인 등과의 연대를 돈독히 했다. 학생운동단체들과의 연대도 돈독히 했다. 이러한 연대 덕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임종인 의원과 민교협에 감사한다. 또한 고대 환경미화원분들은 저희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여름에는 삼계탕, 겨울에는 불고기, 명절에는 떡과 과일을 챙겨주셨다. 최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모금에도 동참해주셨다."

- 천막농성을 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가장 컸다. 친구들은 다 졸업해 연봉 이삼천씩 받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졸업사진 찍는 모습을 천막에서 보고 있을 때의 심정이란 말로 할 수 없다. 그리고 학교측의 패륜아라는 발언과 사과 요구로 많이 힘들었다. 졸업하려면 8학점 남았었는데 8학점을 따기까지 이년이 넘게 걸릴 줄 몰랐다."

이 때 옆에 있던 조정식 학생이 재정문제에 얽힌 비화를 말해주었다.

"재정적인 문제로 과외를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해 내 이름을 댔는데 입학한 적도 없다고 해 잘린 경험도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동참해주셨다. 2006년 당시 2천만원 정도 모금 받았다."

고려대학교 출교생 중 한 명인 강영만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다.
 고려대학교 출교생 중 한 명인 강영만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다.
ⓒ 김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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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우리가 웃으며 이야기해서 그렇지 얼굴에 동상 걸리고, 허리디스크, 무릎연골파열, 피부염, 잔병치례… 7명이 그 돈으로 생활할 곳이 못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출교생들에게는 군입대와 관련된 힘든 사정도 있었다.

“영장이 계속 나왔다. 나라에서는 계속 부르는데 알다시피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무원 시험 계속 신청하면서 조금씩, 몇 개월씩 미루며 버텼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았다. 강영만 학생은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만 학교는 학생을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정식 학생은 “이번 법원의 결정은 단순히 7명과 관련된 것 아니다. 사회적 여론이 법원 판결에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이다. 학내 민주주의를 원하는 목소리가 이번 판결을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의 상식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학생 자치 활동과 학내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태그:#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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