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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수

이곳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 한다. 그래서 지어진 별명이 하늘지붕이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Saumrolee Garden Guesthouse'

마당 울타리 담 벽에 장대 같은 미루나무들이 의젓이 돌아서있는데 마당 안쪽엔 키 작은 살구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아침 기지개를 켜자 주렁주렁 노랑 살구알들이 우두두 떨어진다.

붉은 다알리아의 함지박 웃음이 환하고, 분홍 코스모스가 화들짝 나비를 유혹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기 얼룩 송아지와 누런 송아지 두 마리가 깡충깡충 장난에 열중이다.

아침 햇살이 파란 하늘에 가득하고, 허공에 떠돌던 바람이 기도깃발에 내려와 흔들어대자, 깃발은 화답하듯 나부끼더니 조용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도를 올렸다. 

주렁주렁입니다.
▲ 살구나무 주렁주렁입니다.
ⓒ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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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강해선지 눈을 못뜨네요...잠시 후에 얼룩송아지가 문에서 들어옵니다.
▲ 누렁송아지 아침 햇살이 강해선지 눈을 못뜨네요...잠시 후에 얼룩송아지가 문에서 들어옵니다.
ⓒ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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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레에는 미루나무가 주종이더군요. 늘씬하고 장대한데 비해 잎들은 작은 편이라서, 바람이 불면 쉽게 팔랑거립니다.
▲ 미루나무 이곳 레에는 미루나무가 주종이더군요. 늘씬하고 장대한데 비해 잎들은 작은 편이라서, 바람이 불면 쉽게 팔랑거립니다.
ⓒ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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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초라고 하더군요. 마당에 구석에 있구요. 옆에 나무가 미루나무일겁니다.
▲ 기도깃발 카르초라고 하더군요. 마당에 구석에 있구요. 옆에 나무가 미루나무일겁니다.
ⓒ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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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

마당의 흙을 밟고 서 있다. 이곳에서는 걸음은 두 배로 느리게 걷고, 숨은 천천히 깊게 쉬어야 한단다. 지구별과는 중력이 다른 별에 첫걸음을 떼듯,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아기가 첫 걸음마를 걷듯, 생소한 걸음걸이! 발끝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아예 양말을 벗어 들고 맨발이 되었다. 따끔거리면서도 흙의 촉감이 몸 안의 신경을 일깨우면서 시원하게 전해져왔다.

카메라 앵글을 돌리듯 빙그르 빠르게 돌았다. 미루나무랑 살구나무랑 코스모스, 다알리아, 송아지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멈춰지지 않는다. 행복감에 만취해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우~드디어 히말라야의 마을까지 올라왔어! 이런 걸 두고 출세했다고 하는 거야. 난 출세했어! 하하하."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라다키의 먼 조상들은 이렇듯 하늘 높이 솟아올라온 히말라야에 까지 이동해 와서 둥지를 틀게 되었을꼬? 어떻게 이 멀고도, 고도 5000m의 산소 희박한 험준한 곳에 터를 잡고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지으며 사람 사는 마을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천년의 순정’을 지켜오며…."

작은 티벳!  ‘오래된 미래’의 주인공 라다크! 감격스러웠다.

젬마

게스트하우스는 그야말로 조용하다. 꼭 시골집 마당채 같고 주위를 둘러봐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시골농가의 한가한 전원풍경. 게다가 오늘 아침에 몇몇 인도인이 나간 후에 이 집 통틀어 게스트는 달랑 나 하나. 도대체 주인이라는 돌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침으로 라다키빵과 살구잼, 사과쥬스, 토마토 스프를 먹었다. 특히 살구잼이 맛있었는데 살구 알갱이가 씹히는 것하며 그 향기, 혀끝에 감기는 감촉이 자연에서 온 맛 그대로다. 라다키 소녀인 돌마와 젬마가 번갈아 기웃거리며 한국에서 온 게스트에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이들은 자매로 주인인 돌체의 사촌누이들인데 젬마가 이곳의 일꾼이고 돌마는 젬마가 잘 지내는지 보러 잠시 와있는 거였다.

마당의 테이블 위에 웬 책과 연필이 놓여있어 다가가 보니 수학책? 복잡한 대수학으로 꽤 높은 수준의 책 같다. 대학을 나왔다는 돌체의 것인가? 다시 어슬렁거리며 마당을 몇 바퀴 돌다가 창문 곁을 지나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방안엔 한 노인이 굳은 표정으로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다. 실내인데도 낡은 털모자에 잔뜩 헤어진 오리털잠바를 입고 있는 모습이 괴이하다. 창밖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행여 시선이 부딪힐까 약간 움찔하면서 빠르게 지나쳐갔다.

돌마와 젬마의 방이 빼꼼하게 열려있네.

“들어가도 될까요?”

장기투숙 여행자 같은 간소한 살림살이. 선반에 튜브형 로션. 중간을 가위로 오렸는지 살그머니 찢겨진 채로, 위아래를 맞물려놓아 덜렁거린다. 아마 알뜰이 남아있는 로션을 쓰고 있는 중이리라. 짐짓 시치미 떼며 튜브를 흔들며 장난스런 말투로 “왓 이즈 잇(What is it)?" 하자, 두 라다키 소녀는 침대로 벌렁 누우며 자지러지듯 웃어젖힌다. 덩달아 함께 한바탕 웃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것은 이렇게 사소하지만, 잘 맞아떨어진 한 순간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까 보았던 대수학책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젬마? 이 책 너 거야? 학교 다녀?”
“아니요. 졸업했는데 좋아서 재밌어서 그냥 푸는 거예요.“
“그래? 좋아서 이리 어려운 걸 푼다는 거야? 대학 가기 위한 준비는 아니고?”
“아니에요. 그러려면 한 학기에 1만5000루피가 필요해요.”

이곳에서 받는 봉급은 한 달에 2000루피로, 일 년 중 네 달의 관광 시즌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학비를 벌기란 어려운 일이란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어요. 지금 이대로도 좋은 걸요. 뭐. 하하.”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아리송하다. 이만한 수학 지식이 그리 쓸모 있는 것이 아닌 것? 그녀에게 겨우 놀이일 뿐이라니.

왼쪽이 젬마, 오른쪽이 돌마예요. 아침인데도 햇살이 정말 쨍쨍합니다. 그림자가 아주 짙어요...
▲ 돌마와 젬마 왼쪽이 젬마, 오른쪽이 돌마예요. 아침인데도 햇살이 정말 쨍쨍합니다. 그림자가 아주 짙어요...
ⓒ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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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젬마도 돌체도 외출했는지 아무도 없다. 어디선가 독경하는 소리에 이끌려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 노인이었다. 낯선 이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는데도 흐트러짐이 없다. 무관심과 관심의 영역을 아예 떠나버린 걸까? 오히려 동요한 것은 내 쪽이었다. 한번 방에 발을 들여놓은 후 더 다가가지도, 그냥 나오기도 뭣한 행동의 부자연스러움 그 어정쩡한 상태로 그 자리에 붙어버렸다.

하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게 해준 것은 노인의 낮지도 높지도 않은 물의 수면같이 고요한 독경소리. 노인의 좌정한 차림은 자신의 숙명을 알고 편안히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는 영장류 같았다. 그의 독경소리에 맞춰 곁의 소파에 좌불하고 요가에서 배운 호흡과 명상의 상태로 잠시 젖어들었다. 향을 피우는지 향냄새가 마지막 잡념마저 태워준다.

끝나셨나보다. 그제서야 노인은 얼굴을 돌리시며 미소지어주셨다. 미소에도 깊은 삶의 골이 배어있다. 그러고는 노인은 몸짓으로만 말한다. 아침 먹었느냐고? 그는 어제 내가 이곳에 온 것과 배앓이를 한 것을 알고 있나보다.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노인이 돌체의 아버지란 걸 나중에 들어 알았다.

매일 독경하십니다. 평생 사용하셨는지 책이 한장 한장 낱장으로 떨어져나가 버렸어요. 향을 피우고 염주를 돌리는 일, 마니차를 돌리는 것도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 돌체의 아버지 매일 독경하십니다. 평생 사용하셨는지 책이 한장 한장 낱장으로 떨어져나가 버렸어요. 향을 피우고 염주를 돌리는 일, 마니차를 돌리는 것도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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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

마당에서 시끌한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이웃 아낙과 꼬마 여자아이가 두 마리의 암소에게서 젖을 짜려나 보다. 한 마리는 젖소이고 다른 한 마리는 그냥 누런 암소였다. 아마도 송아지들의 어미인 거 같다.

그런데 젖 짜는 방식이 특이하다. 아낙이 여물통을 누런 암소 주둥이에 바짝 대주니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젖먹이 어미소니 오죽하랴. 헌데 어미의 젖 근처에서 필사적으로 젖에서 떨어지지 않고 젖을 빨려는 누렁 송아지를 꼬마 여자아이가 온몸으로 저지하며 붙잡고 있었다.

아낙은 그 사이 마치 송아지가 젖을 빨고 있는 듯 속임수로 어미를 안심시킨 다음 그 틈을 타서 민첩하고 솜씨 좋게 젖을 우유통에 쭉쭉 짜내는 것이었다. 송아지는 한 뼘 거리에서 꿀 같은 젖이 흘러내리는 데 받아먹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절절했던지, 눈 흰자 위에 떠있는 눈동자가 튕겨 나올 듯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동자처럼 처절해지고 있었다.

“….”
“이곳에서 우유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죠. 자연의 이치를 이용하여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요한 방편으로 삼지만 함부로 자연을 약탈하거나 동물의 본능을 억압하지는 않아요. 소는 우리에게 가족과 다름없어요. 그는 우리에게 우유를 주고요, 송아지에게는 대신 부족한 부분만큼 보리 뜬 물과 풀을 섞은 여물을 주는 거예요.” 

아낙이 누렁 소의 젖을 다 짰는지 여물통을 거두고 다음 차례인 얼룩송아지를 데려오게 한 후 젖소에게로 옮겨 같은 방식으로 젖을 짜려 했을 때였다.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는 순간은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오는 거였다.

얼룩송아지가 여자아이의 품에서 빠져나와 젖소엄마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엄마소가 여물통에서 고개를 빼내고 아기송아지에게로 몸을 돌리느라 여물통이 엎어지고 만다. 아낙은 뒤로 엉덩방아. 놀란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송아지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이미 두 마리의 연대가 호락할 리 없었다. 갑자기 쫓고 쫓기는 형국으로 졸지에 조용하던 마당을 투우장으로 고스란히 바꿔놓았다.

“하하하. 저런, 저런! 하하.” 

구경거리 만난 구경꾼들은 너무 재밌어 죽겠다 한다. “아이고! 저 놈의 녀석들이 또 성질을 돋우네!” 아낙은 나를 쳐다보며 애매한 웃음을 띠곤 끌끌 혀를 찼다. 난리통을 평정하려 했지만 엎지러진 물 주워 담기! 여자아이는 놓친 송아지의 뒤를 쫓아 이리저리 뛰느라 어지간히 힘깨나 들었을 터인데도, 아이의 모습이란, 흡사 두 마리의 소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장난끼 그득한 보통의 아이답게 아이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송아지와 엄마소는 나란히 떨어질 줄 몰랐다.

이 일상이 주는 아름다운 진풍경! 한바탕 소동을 바라보던 아낙도 비로소 성실한 구경꾼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허허 웃으며 아직 김이 채 빠져나가지 않은 따끈한 우유가 가득 담긴 우유통을 내게 보여주며 흡족해했다. 이런 아침의 소동은 당연 내게 활력을 주었다.

아이가 붙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 소동 아이가 붙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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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이 젖짜는 모습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 지 물었더니, "오케이!" 웃어주시네요!
▲ 소동 아낙이 젖짜는 모습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 지 물었더니, "오케이!" 웃어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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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다음 일을 예측하지 못했죠.
▲ 소동 이때까지만 해도 다음 일을 예측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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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체
드디어 얼룩송아지 엄마 품에 달려듭니다.
▲ 소동 드디어 얼룩송아지 엄마 품에 달려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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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집 주변을 거닐고 싶었다. 돌마가 동행해 준단다. 막 대문고리를 열고 나가려는데 돌체와 마주쳤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미혼의 30대 초반으로 차돌 같은 인상에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분주해 보이는 라다키 남자다. 왠지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바람 같은. 그는 내가 괜찮은지를 '틱' 하니 묻고는, 몇 걸음 못가서 다시 멈춰 어디 가는지를 묻고는 '휭' 하니 그대로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곳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그리 관심 있는 것 같지 않다. 마치 돌체 자신도 이곳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인 듯이.

아는 것이란

아침 산책길. 동네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지하수에서 물을 긷는 모습을 보니 아직 상수도가 안정되어있지 않나보다. 가이드북에 이곳 연평균 강수량이 84mm밖에 안된다고 쓰여 있었다. 집 근처에 보리밭도 보인다. 보리가 마치 잡초처럼 자라는 구획 정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밭이었지만, 보리알이 제법 싱그럽고 탐스럽다. 초록빛 잎을 달고 있어 아직 수확기가 되려면 한참 남은 거 같다.

“돌마도 젬마처럼 이곳에서 일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아니예요. 저는 엄마, 아빠랑 고향에서 사는 게 좋아요.”

“외진 곳보다는 사람들도 많고 새로운 것도 많고 변화랄까? 그런 것을 즐기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새롭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았어요. 전 내일 돌아가요. 젬마를 걱정하시는 엄마를 대신해서 잠시 들른 거거든요.”

“으음…그래…그런데, 돌마는 라다키 사람으로 인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너무 달라요. 제가 인도사람이란 생각, 별로 하지 않아요.”

“그래? 마하트마 간디알아?”
“몰라요. 하하.”

“그럼. 네루? 타고르는?”
“몰라요. 하하.”

“좀 이해가 안돼네. 왜 모르지?”
“그건, 간단해요. 만나보지 못했으니까요..”

“앵?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럼,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들어본 거야?”
“물론이지요.”

“하하. 그렇구나. 너무 재밌어. 그래. 돌마 말이 맞아. 그래 안다는 것은 최소한 그런 거겠지. 나. 뭔가 돌마에게 배운 느낌이야. 하하.”

‘아는 것’이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몸으로 아는 것인 모양이구나. 그를 직접 만나 서로 마주할 때 시작되는 거겠구나. 그럼, 아는 건 모두 실제인 거로구나. 그렇게 몸소 겪어 아는 것은 얼마나 분명하고 진실할까? 아는 것이란 어렵지 않은 것이리라. 얼마나 쉬운 것일까?

“그럼, 하나 더. 돌마는 나를 알아?”
“그럼요. 라다크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죠?”
“하하하. 맞아. 알고 싶어. 하하.”

뜻밖의 대답이 신선하다. 외국인여자, 게스트, 직업 뭐 이런 걸 말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날 알아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는 것이란 알아주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그’라는 실체가 있어야 했다. 내가 그를 알고 그에게 알고 있음을 전해주어야 하니까. 그는 그 마음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이해받고 있음을 안다. 이해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그럼 그는 자신을 더 잘 알도록 기꺼이 펼쳐 보여주리라.

두 사람은 이제 서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애틋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란 그런 것이었다. 놀라웠다. 이렇게 쉬운 것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돌마의 눈빛이 가깝게 느껴지고 그녀의 호흡이 또한 멀지 않았다.

“돌마는 영어를 참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
“돌체가 가르쳐줬어요. 돌체는 여행시즌이 끝나면 영어교습소를 열어서 무료로 라다키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왔어요.”

“그래? 보기보다 돌체가 생각이 깊은 갑네?”
“하하. 보기에는 어떤데요?“

“하하. 좀 껄렁껄렁한 껄렁패같잖아?”
“하하.”

  
살구 따는 날

오후나절에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 가운데 나무벤치 옆에 서서 빙그르 돌아본다.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진 10여그루 넘는 살구나무들의 뻗은 가지마다에 주렁주렁 살구 알들이 햇살을 받아 홍조를 띠면서 반짝인다. 삶은 달걀 노른 자위를 빼닮은 모양이어서 푸웃 웃었다. 잘 익은 살구의 달콤한 향이 코를 간지른다.

고개를 들어 미루나무 꼭대기 초록잎 사이로 바람이 이는지 잎들이 찰랑찰랑 빛 장난을 한다. 장미 넝쿨 끝에 붉은 장미 한 송이가 기품이 있는 자태로 꼿꼿이 하늘을 향해 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일컬어 주리라. 탐스러운 다알리아 꽃송이에 얼굴을 묻고 부비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오늘은 살구 수확하는 날. 이웃집 사람들이 모두 나와 여기 마당의 살구를 딴단다. 살구의 품종은 두 가지. 알이 비교적 작은 것은 익을수록 아주 빨갛게 되고 단맛이 매우 진하다. 알이 비교적 큰 것은 노랗게 익어가는데 약간 신맛과 버무려져 시원하고 물이 많았다. 이곳에서 아무 때나 주워 먹은 살구는 얼마나 내게 힘을 주었던지.

기꺼이 한몫 거들기로 했다.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사다리가 동원되고 푸대와 종이박스가 등장하고. 아저씨 한 분이 사다리 위에 올라 살구가 매달려있는 나뭇가지를 잡아 손이 닿도록 늘어뜨려 주시면 똑똑 땡글땡글한 살구를 따는 것이다. 머리위로 살구가 하나 툭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노란 살구가 파란 하늘 아래 반질거리고 초록 잎들 사이로 오후 햇살 그 순해진 빛들이 마구 쏟아진다. 눈물이 났다. 눈이 부신 탓이리라.

살구나무 위에 올라가 보고 싶어졌다. 조심스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한결 날아갈 거 같다. 내려다 보니 한여름에 때이른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모두들 표정이 싱글벙글 밝다. 담박에 빈 푸대가 차례대로 살구알로 가득 찼다. 이것들은 내일 아침이면 시장에 내다 팔려질 것이다.

무공해 살구 1kg이 단돈 600원! 그리고 땅에 떨어져 쩍 하고 금이 가는 녀석들은 모두 잼이나 쥬스로 되살아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전에 오늘 수확의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먼저 떨어진 살구 알을 주워 실컷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흐물흐물하지 않고 싱싱한 살구 알이 함초롬히 벌어지면 우리들 입도 함초롬히 벌어지고 어느새 입가에는 입안에 들어간 살구에서 나온 달초롬한 단물이 뚝뚝 묻어났다. 하늘은 여전히 눈부시게 파랬다. 
저 사다리에 올라가서 맘껏 땄습니다.
▲ 살구 수확용 사다리 저 사다리에 올라가서 맘껏 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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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가 촘촘합니다. 이곳 라다크는 햇볕이 넉넉해선지 살구의 맛이 진하고 강했어요. 정말 제 생애 이렇게 맛있는 살구를 실컷먹어보긴 첨이었습니다. 입맛잃었을 때 살구 몇알로 한 끼가 해결되곤 했습니다.
▲ 살구나무 살구가 촘촘합니다. 이곳 라다크는 햇볕이 넉넉해선지 살구의 맛이 진하고 강했어요. 정말 제 생애 이렇게 맛있는 살구를 실컷먹어보긴 첨이었습니다. 입맛잃었을 때 살구 몇알로 한 끼가 해결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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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도, #라다크 , #인도여행,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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