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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이산>.
 드라마 <이산>.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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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드라마 <이산>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세손이 과연 무사히 왕위를 계승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어차피 결론은 다 알려져 있는데도, 왠지 드라마만 보면 공연한 걱정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이산의 왕위계승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쟁점이 당시의 조선 정치를 지배했다. 그것은 바로 탕평정치의 실현 여부였다. 할아버지 영조는 탕평의 실현을 위해 온 열정을 쏟아 부었고 손자인 정조 역시 그 뜻을 이어받았다.

특히 정조가 탕평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는 그가 즉위 후에 최측근 홍국영을 숙청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조가 최측근 홍국영을, 아쉽지만 내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홍국영이 추구하는 세도정치가 자신의 탕평정치에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탕평을 위해서라면 수족도 내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그것에 강한 집념을 보인 인물이었다. 만약 다시 환생할 수만 있다면, 그는 ‘못다 이룬 꿈’ 탕평을 또다시 추구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그 이념은 여전히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정조가 만약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는 오늘날의 정치지형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 탕평이념을 구현하려 할까?

 1742년 영조가 탕평책을 알리기 위해 성균관에 세운 탕평비. 탕평비는 왼쪽 비각 안에 있고, 오른쪽 비는 탕평비가 아니라 하마비(말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쓰인 비)다.
 1742년 영조가 탕평책을 알리기 위해 성균관에 세운 탕평비. 탕평비는 왼쪽 비각 안에 있고, 오른쪽 비는 탕평비가 아니라 하마비(말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쓰인 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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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정치는 이념적으로는 붕당의 해소를 목표로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붕당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에 그쳤다. 붕당의 해소는 최선책이었고, 붕당의 조화는 차선책이었다. 영·정조의 탕평은 각 당파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함으로써 붕당의 조화를 꾀한 차선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재등용에 관한 한 영조보다 훨씬 더 탕평에 충실했던 정조는 재위기간 동안에 노론·소론·남인·북인을 골고루 등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인재등용에 있어서 당파뿐만 아니라 문벌까지도 안배하는 섬세함을 보였다.

정조, 인재등용에 당파와 문벌까지 안배

그러나 정조가 만약 환생한다면, 그는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탕평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변화된 정치지형에 맞는 현대판 탕평을 추구할 것이다.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그는 현대 정치가 삼권분립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그럼, 그는 탕평의 과녁을 행정부에 맞출까 아니면 입법부에 맞출까?

흔히 ‘현대판 탕평’ 하면 거국내각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정당정치구도 하에서 평시에 구성되는 거국내각은 도리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전시 같은 비상시라면 몰라도, 대통령은 자신과 당이 다른 국무위원을 신뢰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여러 당 소속의 국무위원들 간에 팀워크를 조성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판 탕평은 행정부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행정부에서도 탕평이 구현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자면 다른 정당 출신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본성이 더 착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판 탕평은 입법부에 필요하다는 말이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점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영·정조 시대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기로 한다.

영·정조 시대의 탕평은 각 당파에 대한 관직의 균등 배분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관직의 균등 배분을 통해 각 붕당의 목소리가 국정에 골고루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관직을 골고루 배분하는 것도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하는 것이 보다 근원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심리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한 인간이 집단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꼭 좋은 포스트를 차지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시키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관직 없이 배후조종만 하라고 하면 만족할 수 있어도, 아무 목소리도 내지 말고 높은 관직만 차지하고 있으라고 하면 만족하기 힘든 것이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영·정조 시대의 탕평 역시 각 당파의 목소리를 국정에 골고루 반영함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국왕 중심으로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영·정조 시대 탕평책의 목표는?

 위의 비각 안에 보관된 탕평비. “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라는 <예기>의 구절이 쓰여 있다.
 위의 비각 안에 보관된 탕평비. “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라는 <예기>의 구절이 쓰여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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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판 탕평은 행정부보다는 의회에서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신속과 능률이 중시되는 집행부에 여러 당파들이 골고루 참여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도리어 팀워크를 저해하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행정부보다는 입법부가 여러 당파의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대판 탕평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행정부가 특정 당파에 의해 장악된다 하여도 현대 행정은 어차피 중립적 관료기구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이 없던 영·정조 시대에는 행정부를 장악하면 모든 것을 장악하는 것이었지만, 삼권분립이 존재하는 현대에는 행정부를 장악하는 것이 일부를 장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집권 여당이 행정부를 장악하는 것이 현대판 탕평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와 달리 현대의 행정부는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곳이 아니라 원칙상 그것을 집행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판 탕평이 의사당을 겨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장(場)이 여러 세력에 의해 골고루 분점되도록 하는 것이 탕평의 취지에 부합될 것이다. 그리고 행정부는 그곳에서 결정된 국가의사를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집행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는 탕평의 이념을 구현하는 데에 일부 문제점이 있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 의회는 전체 사회세력의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두서너 개 정파가 의회를 독과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과점 정당들에만 유리한 정당법·선거법·정치자금법 등 때문에, 소수 정파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배출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배출하기 힘들다. 물론 정당투표제 도입 이후 상당 부분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한국 의회는 보다 더 많은 사회세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주로 노론의 이익을 대변한 조선 후기 조정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21세기 탕평'은 입법부를 겨냥해야

이처럼 국회가 사회 전체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제도권 바깥에 저항 역량이 서서히 축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독과점은 결국 ‘시장’의 왜곡 나아가서는 ‘시장’의 해체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수세력도 의회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위의 정치관계법을 더욱 더 과감하게 수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세력이 의회에 들어오면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염려할지 모르지만, 정작 효율성을 기해야 할 쪽은 입법부가 아니라 행정부일 것이다.

신속한 결정보다는 사려 깊은 결정이 궁극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말일 것이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대한민국 열차’에 싣고 가려면, 좀 늦게 타는 승객이 있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회 나아가 국가의 의사결정에 대한 사회적 승복을 담보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판 탕평은 국회가 가급적 많은 사회세력의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할 수 있도록 여의도로 들어가는 대교를 더욱 더 넓히는 일일 것이다. 18세기 탕평이 행정부를 겨냥했다면, 21세기 탕평은 입법부를 겨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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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